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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워진 길 '캘거리 이민' (2)
담임 선생님은 곧바로 나에게 전화하면서 카톨릭학교의 교육방침과 배치되니 아이들에게 그런 어드바이스를 주면 안 된다고 하니, 이곳의 사려 깊은 교육환경에 보다 적응해야 함을 절감했다 .
초기 이민시절에 겪었던 황당한 일 또한가지!
우리 명절의 때때옷처럼 청바지와 카우보이 모자가 온통 거리를 채우는 여름축제, 캘거리 스탬피드 기간의 주일날이었다. 여기 풍습대로 집근처 성당에서 일요미사후 팬케잌을 나누어 먹고 옆 쇼핑몰에서도 볼거리를 즐기고 난 뒤였다. 성당주차장으로 오니 세워 두었던 차가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이민 온 지 3개월만에 차도둑을 맞다니! 어쩌면 이미 차를 분해해서 멕시코쪽으로 실어가고 있는게 아닌지? 별 생각속에 경찰과 보험사에 짧은 영어로 통사정을 하면서도 얼마나 막막 하던지…
다음날 아침이 되자 렌트카를 빌리러 가는도중 다행스럽게도 RCMP가BC주의 Revelstock(캘거리로부터 500km거리)에서 차를 발견, 견인과 함께 보험사, 수리소, 렌트카업체와의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며 나의 Welcome to Calgary가 시작되었으니 실수나 경험만큼 든든한 이민가이드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했다.
대부분 한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그렇듯이, 우리도 타운하우스(연립주택)에 자리를 잡았었다. 개를 풀어놓아도 되는 곳이라 아이들 덩치보다도 큰 개들때문에 자주 놀라기도 하면서 개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받는 비용으로 관리소에선 도대체 무엇을 할까라는 의구심을 가져보기도 했다.
학교영어가 실생활 영어랑 다르다 보니 실제로 산영어를 배우게 되는 경우는 스쿨버스 기다리며 동네 아줌마들하고도 수다(주로 날씨 얘기지만)를 나누고…
한번은 전기료가 1000Kwh가 넘게 나와 공급회사에 Claim Letter를 주고 받으며, 조금 어렵지만 마케팅회사에서 걸려 온 전화설문에 응답하며 등등 내가 돈을 지불하며 배우는 영어보다는 발품을 팔며 돌아다니는 만큼 영양가 있는 경험을 얻게 되었다.
지금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도 직접 돌아다니며 그집을 내놓은 부동산중개업자를 직접 연락하여 가격을 조정하다보니 우리에겐 좋은 조건으로 집을 장만 할 수 있었다.
2002년 여름, 아내는 Stampede 에서 인턴쉽을 마치고 나는 지금의 직장인 Hotel에서 6주 실습이 시작되던 때였다. 장인어른의 갑작스런 암발병을 연락받게 되었다. 이민자로서 가장 힘들지만 겪어야만 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모든것을 끊고 떠났다지만 여기 가정을 꾸리면서도 한국의 일도 챙겨야 하는 것이다. 주변에선 처가에 보내주어야 후한(?)이 없다라던가, 간병인을 구해준다던가,
여기 상황을 주로 해야지 암은 어쩔 수 가 없지 않는냐 등등 이민선배들의 많은 의견과 본인들이 겪은 어려움을 나누어 듣게 되었고 결국 아내는 간병을 위해 2개월간 서울의 병실에서 쉬지못하며 지새고 나는 아이들을 Child Care시설에 의존, Practicum실습하며 여름을 보내야 했다.
그나마 나에게 다행스러운 일은 실습을 마치자 Chef가 계속 남아 일을 해 줄 것을 원했고 3개월 뒤 Full time으로 일하게 되었다.
캘거리에서 90년 이상되고 400여 객실의 호텔 주방은 학교에서 배우던 주방과 공기부터 달랐다. 모든것이 Speed/Cost였고 모두들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다.
Chef도 손을 걷어부치고 직접 썰고 불을 다루고 뛰어다닐 정도니. 날마다 Function 설명은 전투영화에서 조종사들을 모아 놓고 브리핑하듯 철저했다.
8시간 내내 일어서서 해야하다 보니 몸이 힘들고 잘때는 물론 무의식중에도 항상 손아귀를 쥐는 일종의 직업병이 생기기도 했다.
재밌는건 여기 직원들이 한국음식을 엄청 좋아한다는 점이다. 그곳에 있는 재료를 사용해 즉석에서 한식 요리를 해주니 사죽을 못 쓴다. 그리고 스테이크에만 길들여져있다가 얇게 썰어 양념에 절인 불고기를 상추에 싸먹는 것도 신기해 한다.
아울러 시중에서 파는 김치보다는 덜 맵게 만든걸 선보인게 주효하여 Oriental Buffet나 사원송년파티음식에 채택, Home made Kimchi로 비싼 가격에 납품을 하게 되었다.
어느 캐너디언 관광마케팅 모임에선 소고기와 닭고기 불고기 메뉴 요청이 와서 불고기양념의 소고기 산적과 조금은 맵겠지만 춘천식 닭갈비로 서빙3분만에 품절되었다. 이후 나의 닉네임은 Mr. Bul-Go-Ki!!
2004년 여름은 장인어른의 임종을 앞두고 우리 가족이 한국을 모두 다녀오게 되었다. 이민법규 변동과 여행비용등을 모두 감안해서 다녀올 수 있었다라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아내에게는 그동안 정착을 위해서 공부를 해오던 걸 중단해야만 하는 손실도 겪어야만 했다.
2005년, 어느덧 이민 온 지 4년이 넘었고 시민권도 신청해두었고, 이제 엄마의 손을 덜 필요로 하는 아이들 덕분에 아내는 본인의 할 일을 찾기위해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전업주부로 지냈기에 이렇다 할 직장경력이 없었고, 이곳에서 1년동안 직업학교 다닌 경력과 4개월간의 인턴쉽만으로 단 한명 뽑는 회사에 서류전형 통과되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느껴졌다.
(다음호에 계속)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5년 12/2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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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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