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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땅에 뿌리를 내리며 (다섯번째)
1973년 7 월

누나가 카나다에 이민을 온지 석달이 지났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카나다가 만만한 곳이 아니니까, 맘 단단히 먹고 와!”
귀에 목이 박히도록 이야기를 했는데, 귓등으로 듣은 모양이었다. 막말로 기압이 쏙 빠져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뭐 좋은 수가 없을까? 어떻게 하면 카나다의 현실을 가장 쉽게, 빨리, 정확하게 보여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래~, 그게 좋겠네!”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누나 내일 뭘할꺼야?”
“얘~, 뭘하긴~ 업자가 할게 뭐 있냐?” 목소리에 아직 기가 살아 있었다.
“ 돈벌러 갈래?”
“뭔데~?”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저녁에 하는 일인데, 할만하대.”
”뭔데~~?”
“와 보면 알아. 밤참을 싸가지고 한인타운으로 저녁 5시까지 나와.”
“뭔지 가르쳐 주면 안되니?”
“글쎄~ 와 보면 안대두~. 그리고 일하기 편한 작업복을 입고 와.”

Bloor 한인타운에 가니, 일하러 갈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조금 있다가 누나가 나타났다. 와~~! 작업복을 입고 오라고 했는데, 소풍가는 복장이었다. 일하러 같이 갈 고참들의 눈길이 일제히 누나에게 쏠렸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 되겠지!’
“얘~ 어디 가는거니?”
“지렁이 잡으러 갈꺼야!”
“어머머~ 미쳤니~?
“…….”
“얘~ 지렁이를 어떻게 잡니?”
“한번 해봐. 토론토에서 지렁이 잡아서 차사고 가계산 사람들 많데~.”
“얘, 그래도 난 못해! 나 집에 갈래.”
“에~헤~~ 내 이래서 누나가 기압이 빠졌다는거야!”
“…….”
“이왕 나왔으니까, 한번 가봐. 카나다가 어떤데인지도 배우고…”

누나가 집에 가겠다고 할만도 했다. 매형은 행정고시를 합격해서 농림부에서 잘나가던 사람이었고 누나는 집에서 아이들을 기르며 분위기 잡으며 살던 싸모님이였으니… 지렁이 잡으러 가자고 한 내가 좀 너무했나? 그래도 더 버티지 않고 가만있는게 신통했다.

한 15분 기다리니까, 지렁이 트럭이 나타났다. 누르티티한 밴 트럭이었다. 트럭은 뒷 좌석은 하나도 없고, 네모난 상자와 깡통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상자를 트럭 벽쪽으로 쭉~ 쌓아서 간이의자로 쓰고 있었다. 고참들은 잽싸게 트럭에 올라가서 일등석을 차지했다. 일등석은 운전석 바로 뒤였다. 방석을 상자위에 깔고 그 위에 앉았다. 누나와 나는 우물우물하다가 뒷문 바로 옆에 있는 상자에 쭈그리고 앉았다.

지렁이 트럭이 시내를 벗어나서 달리기 시작했다. 고참들은 몇 시간 후에 있을 전투(?)에 대비해서 눈을 붙이고 자기 시작했다. 나도 자볼까 하고 눈을 감았지만, 딱딱한 지렁이 상자에 엉덩이가 백여서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어떻게 앉아도 백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힐끗 쳐다보니 누나도 무지하게 힘드는 모양이였다. ‘조 자식 때문에 내가 이 고생하네!’ 하는 것 같았다. 모르는 척했다. 유리 창문도 없는 트럭이라, 밖깥 경치를 볼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한 두 시간을 족히 달린 것 같았다.

트럭이 섰다. 시외에 있는 골프장이였다. 그러나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계속 눈을 감고 자고 있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고참들이 하나씩 내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챙겼는지 밭데리와 머리에 붙이는 전등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고참들이 잽쌔게 좋은 것을 골라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암암리에 자기가 찍어 논 것을 계속해서 쓰는 것 같았다.

상자바닥에 남아있는 것을 두개 집어서, 누나에게 하나 주었다. 밭데리는 허리에 차고 고무줄이 달린 전등을 머리에 썼다. 고참들이 하는 걸 보면서 눈치껏 깡통을 두개 가져다가 고무줄로 발목에 하나씩 맸다. 오른 쪽 깡통에는 톱밥이 들어 있었다. 지렁이가 미끄러우니까, 톱밥을 손에 묻혀서 지렁이를 잡는다고 했다. 왼쪽 깡통은 지렁이를 넣는 통이였다. 완전 무장한 싸모님의 모습이 가관이였다.
‘사진기가 있어야 하는데… 정말 아쉽다. 저걸 하나 찍어 놓아야 하는데…’
‘격어 봐라. 오늘 기압이 좀 들어 갈거다!’
‘카나다가 요런 곳인줄 몰랐을 거다!’

고참들은 열심히 손을 놀리면서 풀밭을 오리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나는 아무리 보아도 지렁이가 보이질 않았다. 어떤 놈은 구멍에서 몸을 반만 밖으로 내놓고 있는데 살짝 건드리면 잽쌔게 구멍 속으로 숨어 버렸다. 난 지렁이가 그렇게 빠른 줄 몰랐다. 용케 대가리를 움켜 쥐고 땡기면 땅속에 있던 몸뚱아리가 통통해지고 그땐 아무리 땡겨도 나오질 않았다. 그러다가 쎄게 땡기면 “툭”하고 몸뚱이가 짤라졌다. 짤라진 지렁이는 “꽝”이라고 했다. 나중에 지렁이를 왕초가 검사를 하는데, 그 많은 지렁이 중에서 정확하게 짤라진 지렁이를 골라낸다고 했다. 한 상자에 500마리씩 들어 가는데, 짤린 놈이 두개 이상이면 돈을 안 준다고 했다.
‘에이~썅! 아깝다!’

“누나 몇 마리 잡았어?”
얘~~ 난 도저이 못 만지겠어!”
“누나 요게 돈이라고 생각해!”
“미끈미끈해! 못 만지겠어!”
“누나 풀밭에서 돈을 줍는다고 생각하라니까!”
“……”
누나의 깡통을 들여다 보니, 지렁이 두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잡긴 잡았네!”

밤 12시까지 풀밭을 기었다. 군대에서 오리 걸음을 걸으면서 기압을 받던 생각이 났다. 오금이 저려오고 허리가 부러지는 것 같았다. 지렁이 트럭에 모여서 밤참을 먹었다. 그것도 일이라고 허기가 졌다. 정신없이 먹다가 누나를 쳐다보니, 도시락 뚜껑을 열고 쳐다보다가 도로 뚜껑을 덮었다.
“누나, 왜 안 먹어?”
“못 먹겠어~”
“왜~? 배 안 고파?”
“……”
“빨리 먹어.”
“…… 고사리가 지~렁이 같애~!”
누나가 싸온 반찬은 고사리였다! 희미한 불빛에 비친 고사리는 정말 지렁이 같았다! 게다가 참기름에 무친 고사리는 밤이슬을 맞은 지렁이처럼 반들반들했다!

오늘은 날씨가 신통치 않단다. 일찍 파장을 한다고 했다. 날씨가 푹푹 쪄야 하는데, 오늘은 쌀쌀하기까지 했다. 보통은 새벽 4~5시까지 잡은데 오늘은 2시에 끝낸다고 했다. 모두 상자에 지렁이를 세서 담고 있었다. 한 상자에 500마리씩 담았다. 고참들은 3-4상자를 가지고 왕초에게 가져가서 돈과 바꾸었다. 대목에는 7-8상자를 만든단다. 지렁이 한마리당 2전! 공장에서 막노동을 하면 시간당 2불50전을 받은데… 왕고참들은 하루 저녁에 100불까지 번다고 했다.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지렁이 가족(?)들은 부부에 아들 딸까지 나와서 지렁이를 잡아서 차를 사고 가계를하고 집까지 산다고 했다.

맨 마지막으로 누나랑 지렁이 상자를 들고 왕초 앞에 섰다.
“상자가 안 찼네!”
“네~… 죄송합니다.”
“몇 마리야?”
“200마리도 못 됩니다.”
“몇 마리냐니까?” 왕초의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올라갔다.
“백 오십……”
왕초가 한심한듯이 누나와 나를 번가라 쳐다봤다. 그러다가 지갑이 아닌 주머니를 뒤져서 꼬깃꼬깃한 5불짜리 하나를 내밀었다.
“150마리밖에 안되는데….”
“그냥 받어!”
“감~ 감사합니다.”

지렁이트럭은 털털거리면서 달리는데, 그 딱딱한 지렁이 상자위에 앉아서 모두들 잠을 잘도 잤다. 힐끗 누나를 쳐다보니,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잠을 못 자는 것 같았다.
‘기압이 좀 들었나?’
‘내가 좀 심했나?’
‘말로만 듣던 지렁이 잡이 정말 장난 아니네!’

새벽 5시에 한인타운에 돌아왔다.
“누나, 힘들지?”
“…….”
“자~~ 5불! 이거 받어! 누나가 카나다에 와서 번 첫 수입이야!”
“얘~ 난 열 마리도 못 잡았어…” 누나는 애써 웃을려고 했다.
“누나~, 요거 다리미로 다려서 사진틀에다 넣어 놔!”
“……” 누나는 말없이 조글조글한 5불 짜리를 받았다.
“집에 가서 한잠 자~!”
“……”
말없이 돌아서는 누나의 눈에서는 금방 눈물이 뚝~ 하고 떨어질 것 같았다.

기사 등록일: 200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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