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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구나
어머니께선 사랑이란 말 대신 미안하다라고 표현하셨다. 학교는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신 분이다. 옛날 시골 어머니답게 엄청 부지런하시다. 짬짬이 물래를 돌리고 손수 베틀위에 앉으셨다. 무명옷감으로 칠남매 옷을 짜입히셨다. 투박스럽고 볼품이 없는 무명옷이 창피해 떼를 쓰곤했다. 그래도 추석무렵에 열리는 운동회날엔 흰 운동화를 사주셨다. 검은 고무신만 신다가 흰 운동화란 일년에 한번뿐인 선물이었다. 돼지를 키워 목돈을 마련하시느라고 얼마나 애쓰셨을까? 돼지장사가 철 따라 찾아왔다. 돼지발을 한곳으로 묶고 자전거뒤에 싣고 떠날 때 울어대는 꿀꿀이 소리에도 '미안하다'라고 하셨다. [집으로.]란 비디오로 된 영화를 보다가 상우할머니와 시골어머니 모습이 연달아 살아난다. 옛 기억의 풍경이다. 철없는 상우란 소년이 바로 나 자신이나 다름이 없다. 어머니에겐 자랑스런 기념식수가 있다. 아들을 낳으면 밤나무나 대추나무를 심고 딸을 낳으면 흰 목련 같은 꽃나무를 심으셨다. 토종 무궁화도 그때 심었다. 70년대 초에 이 알버타주는 토목,광산,관광을 위한 건설붐이 불었다. 측량사로 이민을 떠났다. 그때엔 태평양을 건너가면 영영 이별인줄로 알았다. 공항에서 나이롱 치마와 저고리를 입으신 어머니께선 '미안 하구나!' 하며 울먹이셨다. 4인가족의 이민정착금이란게 $200이었다. 나뿐이 아니라 대부분이 며칠밤 호텔비가 전부였던 때이다. 이민이란 거부반응 대상이었다. 조국을 배신하는 사람인양 비판한 적이었다. 어쩌다 추석이나 구정이 오면 전화통 옆으로 몰려 목소리를 돌려 듣는게 고작이었다. “어서 끊어유. 다들 잘있슈우!" 전화료 때문에 재빨리 끊어야 했다. 보고픈 그리움이야 두말할게 어디 있는가. 가끔 김장철이 오면 인편으로 고추가루가 건너왔다. 그때만 해도 누가 한국을 방문하면 가장 큰 부러움이었다. 서로 작은선물을 전해주던 시절이었다. 뉘집 아들이 어느 학교에서 전교수석이 되거나, 뉘집딸이 바이올린 경연대회에 입상하면 바로 내자식처럼 즐거워들했다. 연합교회가 겨우 생겨난 때이고 성당도 없었다. 한국인은 모두가 한가정처럼 반가웠다. 이번엔 아내가 구순의 어머니를 찾아갔다. 이십년이 훨씬 지나 찾아간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10시간쯤 되면 고국땅인데도 그렇게 힘이든다. 이민생활에는 여기대로 바쁜 나날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너무 변해 버렸다. 시골이 사라졌다. 사람물결, 차량홍수, 아파트숲인 산업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도 변하지 않으신 시골어머니의 사고방식은 그대로 남아있다. "죽으면 다 썩는걸 무얼 아껴유?" 평범한 말씀이시다. 손과발을 움직이며 깻잎을 따 된장독에 묶히셨다. 고구마줄기도 말리셨다. 그런걸 비닐봉지에 잘 싸서 가지고 돌아왔다. 손자,손녀가 좋아하는 곶감도 따라왔다. 구순이 되셔서 허리가 굽으신 어머니... <집으로>란 영화속의 타박타박 지팡이로 걸으시는 상우 할머니를 바라보며 깻잎을 먹자니 눈물이 쏟아진다. 이 깻잎엔 무슨 영양가가 들어 있길래 이토록 눈물을 펑펑 쏟게 하는걸까? 뒷뜰로 나가, '아__ 미안 합니다!' 하고 가슴언저리를 문지른다. 목이 메인다. 이제 어머니께선 이 지구를 떠나 조상님들이 사시는 곳으로 가셨다. 그곳은 사랑을 미안하다라고 표현하는 침묵일 것이다. 아니, 평화자체인 우주일 터이다. 상우할머니 같은 손길로 가슴언저리를 문지르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떨리는 듯한 시골어머니 목소리도 들려온다. [미안 하구나!] Copyright 2003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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