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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필 원 고_유인형 컬럼_23
만년필에 잉크를 찍어 원고지를 쓴다. 원고지도 이곳에서 프린트하여 쓰는 큼직한 것이다. 컴퓨터화된 인쇄에 육필(肉筆) 원고를 다시 식자해야 한다는 것부터 번거롭다. 인건비가 더 들어야 한다. 그만큼 이 시대에 뒤떨어진 글쓰기가 되었다.
왜 글쓰기에 그토록 열병을 앓는가? 글쓰기란 고독한 신열(身熱)이 있다. 무엇인가 온몸을 짓누르는 것 같은 고통이 있다. 자기자신과 대결하는 세계이다. 쉽게 쓰고, 더 쉽게 고치면 얼마나 좋을까? 영감(靈感)의 글은 그렇지 않다. 쓰다가 구겨서 던지고 다시 시작하다보면 버리는 원고매수가 훨씬 더 많다. 시간낭비는 또 어떻구…
글을 쓴다는 건 경제학적으로 보면 감내하기 힘든 빚이다. 미친 짓이다. 손해만 난다. 그래도 글을 쓴다. 잉크냄새속에 옛 선비들의 체취가 풍겨난다. 줄기찬 사색이 있다. 한없이 행복한 희열이 있다. 열병 같은게 더 클수록 하얀원고지 앞에는 자유가 있다.
글이 잘 풀려 물흐르듯이 되면 수필의 맛을 낸다. 통속적인 잡(雜)글은 손쉽게 쓰여진다. 흥미위주의 글은 재미가 없다. 컴퓨터로 글을 쓴다면 가볍게 읽을 수 있겠으나, 잉크를 찍어 한자한자씩 속마음을 풀어내는 글쓰기란 몹시 어렵다.
잔잔한 감동이 오래가는 글이란 진솔한 문장이어야 한다. 두뇌로 쓴 문장과 가슴으로 쓴 문장은 그 맛이 다르다. 단순하고 신선한 느낌이란 그렇게 쉽지 않다. 창조(創造)엔 아픔이 따른다.
수필이란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쓰듯이 자연스럽게 써야 한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네모가 반듯한 원고지 칸이 험난한 산맥같다. 체험한 삶의 편린들이 진실로 살아나야 하니까 창작의 고통을 거치지 않고선 소박한 향기가 나지 않는다. 글이란 하나의 산실(産室)같다.
초기 이민시절엔 어떻게 정착할 것인가가 전부였다. 고달프고 화나는 일의 연속이었다. “나는 무엇인가. 이 낯선 곳에서 뭘하고 있는가?” 이런 원초적인 질문에 시달렸다. 그러다가 하얀원고지 앞에 앉아보니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먹고 사는 일에만 골똘하다가 글을 써 본다는 건 깜짝 놀랄 희열이었다.
쫓기듯이 바쁘고 각박한게 이민 삶이다. 글 쓸 시간과 장소가 따로 없다. 그저 토막시간이면 정차한 운전대에서 쓴다. 휴일날엔 산책로의 바위에 앉아 쓴다. 무엇을 쓴다는게 그토록 행복한 것이다.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한밤중엔 식구들이 잠든 후에 홀로 일어나 쓴다. 좋은 글을 쓰려면 문장수련뿐 아니라 마음을 닦는 게 더 어렵다. 글이 곧 그 사람 이란 표현도 있다. 창작의욕은 불규칙하게 찾아온다. 갈등과 목마름이 심할수록 글쓰는 샘물로 간다.
참신한 글이란 만나기가 지극히 어렵다. 피 대신 잉크를 찍어 한자 또 한자씩 쓴다.

“피로 써라!”

괴테의 충언이다. 우리 문단의 선배들도 매끄러운 글보다는 투박스러우나 허욕을 부리지 말라고 한다. 인간이 되지 않고선 문장도 성장할 수가 없다. 이제야 <글짓기>의 뜻을 조금 알게 되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신열(身熱)이 날 때면 육필원고를 쓴다. 마음을 깍아서 텅 비워내지 않고선 글이 되지 않는다. 누에가 고치를 짓듯이 편안하게 풀어 나가야 한다. 욕심을 부리면 글이 안된다. 고통을 피해선 더욱 안된다. 산고의 고통까지도 받아 드려야 한다. 글은 희열이고 행복이지만 반드시 피 말리는 고통을 겪게 되어있다. 재능이 좋아서 두뇌로 쓰는 것 보다는 가슴이 따뜻한 손으로 써야 한다.
조용하게 혼(魂)을 바라본다. 정처없이 구름처럼 사라질 운명이다. 하지만, 창작의 혼이 불타는 육필원고를 쓰고있다. 몸에 신열이 나듯이 만년필을 들고픈 강한 충동은 예술적인 병(病)이 되었다. 컴퓨터의 매끈한 기계활자화 보다는 예술병을 치료 하는데엔 안성맞춤이다. 육필원고의 향기를 사랑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글쓰기지만…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4 7/2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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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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