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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채 사람
본 내용은 CN드림신문 3/7일자(14호)에 실렸던 내용입니다. 한무명씨의 잡담 한마디_네번째> 행랑채 사람 본국으로 돌아가는 미군들 틈에 끼어 앉아 진땀 흘리며 태평양을 건너 종착 한 곳이 토론토 였습니다. 내겐 영어라는 장벽이 태평양 만큼이나 어마어마했고, 비행기 여행이 생전 처음이어서 마음을 차분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일본에서 기체고장으로 깜깜한 자리에 앉아 한참을 기다릴 때는 이거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여 애가 탓습니다. 전후의 고통으로 신음하던 당시 서울에선, 검정물 들인 군작업복이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복이었고, 밤만 되면 통행금지가 시민들의 발에 족쇄를 걸던 시절이었으니, 무엇이던 흔하고, 꺼릴 일 하나 없는 북미 대륙은 내게 아주 야릇한 해방감을 주었습니다. 서울에서였으면 어림도 없을 새벽 2시의 불뤄 스트릿을 걸으며 문 닫친 상점안을 기웃거리는 나의 호기심은 누가 보아도 수상적었을 것입니다. 슬금슬금 거리를 두고 뒤따라오던 순찰차는 그런 나를 끝내 내버려 두었고, 걸핏하면 검문 받던 당시 한국 사정에 겁먹고 있던 내겐 그것이 오히려 이상 하였습니다. 서양에서의 첫날밤은 나와 자유와의 상면 이었습니다. 종로로 해서 광화문으로 휩쓸던 젊음의 고함소리, 거창한 사회 정의로서의 자유라기보다는, 하찮은 한 사람의 해방이었습니다. 그리곤 난 이곳에 오기를 참 잘한 것이라고 자신하였습니다. 목총들고 군사훈련을 받거나 혹은 반공궐기대회로 동원되던 중고등학생시절, 불확실한 장래, 이 모두가 '나'는 빠지고 단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자식, 학교와 군조직의 일원, 그리곤 직장이나 사회라는 더 큰 구조속의 부품일 뿐이었습니다. 1900년대 초, 증기선을 타고 제물포를 떠난 최초이민 100여명의 하와이행이 어떤 처지였을까? 그 전에도 이미, 일본의 통치에서 망명하여 소련, 중국, 또는 미국으로 간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명분은 정치적 이었고, 하와이의 농장이나 나의 캐나다 식당은 찌들고 답답한 형편에서 도망치는 것이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자유란 찾아 떠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나도 한 몫을 거들어 이룩 하는 것이어야 하는데...그러면 자유라는 것을 들먹거려도 되는지, 내 속내는 그리 떳떳하지 만은 않습니다. 자유의 나라, 이곳에서도 어느새 홀가분한 나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밥 벌이다 영어다 하는 기막힌 현실이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족쇄란 그리 쉽게 풀리는 것은 아닌 것 이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써먹을 기술하나 없고 그렇다고 무엇이고 대들어 볼 용기도 없이, 더구나 두세살 짜리 수준밖에 안 되는 영어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마다하는 허드렛 일이 고작이었습니다. 한밤의 청소나, 먹고 난 설거지를 하면서 그들이 그들을 위해 이룬 세상의 여가리를 빙빙 겉돌며 그 속에 성큼 뛰어 들지 못하고, 행랑채 신세만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결국 자유다 뭐다 하는 것도 생존 보다는 큰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복합문화의 캐나다라 하더라도, 말과 현실에의 적응을 전제로 하고 심지어는 인종적 합류까지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민을 접목에 비유한다면, 추상적인 자유니 뭐니 하는 것보다 먼저 간절한 것이 구체적인 말이나 생활이 아닌가 합니다. 귀가 트이고 혀가 풀리기까지 시간이 한참 모자라고 주머니가 빈 나 같은1세들의 문간방 신세의 부족함이나 소외감은 어쩔 수 없는 과정쯤으로 여기었습니다. 밴쿠버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이렇게 나뉘고 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까지의 제1차 이민을 이세이, 그들에게서 태어난 후손을 니세이, 그리고 산세이는 1950 년대와 60 년 대에 태어난 니세이의 자식들입니다. 90%나 되는 많은 산세이들이 자기들 교민사회 밖에서 결혼하였는데 이들을 욘세이라고 하고 이들중에는 혼혈도 꽤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인의 캐나다 이민이 6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면 우리의 제1세대는 일본인의 산세이시기에 온 것이 됩니다. 니세이들이 제2차 대전을 치루는 동안 자기네 모국의 적국에 살며 자유를 빼았기고 얼마나 힘들었는가는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들에 비하면 우리의 1세는 여기와서 그런 정치적 고초를 겪지 않아도 되었고, 또 60년대의 우리는 빈주먹이었지만 그 후에 온 이들은 넉넉하여서 교민사회의 판도가 아주 달라졌습니다. 가진 사람과 많지 않은 사람, 또 시기적으로는 60년대에서 지금까지의 긴 시간을 두고 1세대의 물결은 여전히 끊기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세대차이나 경제요인 등도 혹시 한인 사회의 동질성 부족과 가치기준의 차이의 원인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하간, 이러한 우리들의 독특한 형편에서, 자유를 찾아 왔다고 서투른 변명을 대는 것이나, 재산이나 자식을 핑계로 하여 이곳에 온 것의 의미를 가름하는 것이나, 이 모두가 우리 처지를 반듯하게 변명해낼 수 없다고 봅니다. 그것들이 꼭 이곳이 아니라도 어디서나 이룰 수 있는 것 들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얻어야 할 것은 물질 속에 묻혀서나 우리에 갇혀 살면서는 어려운 것, 둥지를 떠나서 거리와 높이를 두어야 모습이 확실해지고, 비로서 의미가 새롭고 절실해지는 그 무엇입니다. 마치 저 높이 쏘아 올린 우주선에서라야만 내가 선 이 땅덩이가 송두리채 들어 나는 것과 같은 이치 입니다. 그 속에 있을 때 는 알 수 없었던 의미, 어느 우주인은 우주로 나가 파란 한 점의 지구가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던지 창조주의 섭리에 숙연해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이 땅에선 그리도 광대하게만 생각되던 인간의 하찮음을 깨닫기도 합니다. 이제 수 많은 이 들이 수십년이라는 시간을 뒤에 하고 있으니, 이쯤이면 '내'가 보여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일깨우고 싶습니다. 우리는 과연 '잘사는 나라'에 찾아든 것은 헛되지 않았다 자부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타협이었다는 꾸지람을 각오하고 있습니까, 잘 살려면 힘들여야 하고 힘든 일 하려면 더욱 잘 먹고 살아야 하는 쳇 바퀴 삶에 지치고 짜증나 정작 중요한 나는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저 어쩔 수 없이 헐값에 넘긴 삶을 이문 많이 남겼다고 우기며 사는 것은 아닙니까? 잘 산다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돈이라면 쓸어 담아 버릴 만큼은 있다.' 하는 분이라고 해도 그것만으로 잘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밖으로 나타난 모양새와 실태의 이율배반, 신문기사의 제목 뒤에는 어떤 현실이 있는가, 실제보다 커보이는 명함 속에는 과연 어떤 이가 숨겨있는가, 한번 쯤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리차드 코리 씨'라는, 이. 에이. 로빈슨의 시 한편을 여기 소개하며, 그 뜻은 읽는 사람에게 맡겨 두겠습니다. 리쳐드. 코리 씨 리쳐드 코리 씨 시내 행차 하시는 날이면 거리의 우리네 그분 우러러 뵙지요. 머리에서 발끝까지 쪽 뺀 신사여서 깔끔하니 제왕처럼 위풍당당 했어요. 늘 점잖이 차리시고 그 말씀 인정 어렸지요. 하지만 그분 우리보고 인사할 때면 가슴 마구 두군대고, 그 걸어 가시는 걸음 찬란했어요. 그 분은 부유했어요. 그래요. 어느 임금님 보다도 부자였어요. 그리고 예절도 잘 배워 훌륭하시고, 요컨대, 그분의 처지가 됐으면....하고 바랄 만큼 완전 무결한 그런 분 이었어요. 우린 쉬지않고 일하며 그 분 처럼 호사할 날 기다렸지만, 사실, 허구헌 날 양식 떨어 지기만 했어요. 그런데 리쳐드 코리 씨는 어느 한 조용한 여름 밤 집에 가자 머리에 대고 총을 쏘아 버렸다는 군요, 글쎄! Copyright 2000-2003 CNDreams.co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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