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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아이들, 최우일 칼럼
본 내용은 CN드림신문 3/4일자(16호)에 실렸던 내용입니다.

제목 : 도시의 아이들

이젠 좀 한가한 나이가 되어서 그런가, 불쑥불쑥드는 여린 마음을 주체못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가을색이 지천으로 깔린 보우네스를 산책하다가도 옛집 뒤울 안골 붉은감이 떠오르면 내 마음은 서둘러 한 시절을 거슬러 다름질칩니다.
값싼 감상이라고들 말합니다. 달콤하고 아릿하기만하여 현실성없이 아무때고 흔해빠진 것이란 뜻이겠지만, 하지만 이처럼 마음 흠씬 어루만져주는 것이 어디 또 있을까 싶습니다. '핸썸'이가 내집에 와서 십수년이 된 여태까지 난 그 녀석이 낙엽진 숲을 걷는다던가 들꽃을 보며 꼴값하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개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꼴값은 사람만이 합니다. 그런데 정작 꼴값 좀 하려들어도, 머리만 잔뜩 커져 분수없이 나대는 사람들, 모든 생물이 공유하여야 할 자연을 저들만 맘대로 하려는 탓에 질식부터 할것같습니다. 아무도 눈길 하나 주지않는 낙엽이나 들꽃도, 도심의 한가운데서 숨죽이고 있는 공원도, 저 멀리 지평선에 버려진 산도, 두리번거릴 여유없이 앞으로만 치닫는 '지금' 세상을 느긋이 좀 살라고 합니다.
불과 이삼백년 전 사람들만 하더라도 깊은 숲이나 산은 도적떼나 나오고, 힘들게 넘어야 할 장애물쯤으로 밖에는 여기지 않았는데, 지금은 등산을 명성이 보장된 직업인양 지나치게 전문화하여 있습니다. 그런 등산'전문가'에게는 감상따위에 마음을 쓸 여유가 허락되지 않습니다. 더는, 산이 거기 있어 불편함이 아니고, 산이 거기 있어 오르는 것도 아니며, 에베레스트는 산소통을 메고 온갖 기재를 써서라도 기어코 달성해야 할 과학입니다. 거기에는 짜릿한 감상이란 하나 없고 굽힐 수 없는 의지와 도달해야 할 목표만이 있을 뿐입니다
가슴은 자꾸만 졸아들고, 반면 머리만 부풀어 좀처럼 고개 쳐들고 살기 어려운 지금이긴 하지만, 이왕 꼴값하는 김에 밤하늘도 한번 올려다 보았으면 합니다. 경황없이 밝기만한 도시의 불빛에 가려서 요새는 별도 그 모습을 쉽게 들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촛불 켜고 살던 때, 낯은 낯이고 밤은 그저 밤일 뿐인, 낮 시간을 연장할 필요성이 절실하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어찌해 보겠다는 엄두도 내지않고 살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 밤이 없어진 휘황한 도시에서는 문명의 불빛이 밝혀야 할 것을 오히려 흐리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어린시절에는, 뒷뜰이나 야산에나 어디에고 명아주풀이 있었습니다. 생물체가 본래 그렇듯이, 명아주는 하루의 일광량에 맞추어 사는 시계같은 풀입니다. 자연법을 따라 성장하고 꽃피우며 철을 알아서 열매 맺고 겨울 잠을 준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싸구려 전기가 자연의 시간을 인위적 스물네시간으로 뒤죽박죽 엉망으로 해놓고부터 생물들이 그들만의 생체시간을 잃어 버리고 몹시 아파하고 있습니다. 이건 모두다, 번영의 불투명한 미래를 미리 점검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우둔한 탓으로 돌려야 합니다.
로마인들은 불빛을, 어릴적 누나들이 아껴쓰던 럭스비누와 같은 말인, 럭스(lux)라 하여 사치품 럭서리(luxury)와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엔 불 밝히는 일이 이만큼 귀한 사치이었는데, 위성사진을 보면 도시로 점철된 도시집중지역은 인공의 빛으로 밝힌 하나의 불덩이로 나타납니다.
지금 도시의 불빛에 별이 그 모습은 숨기고, 이기생활 이면에서는 세제에 찌든 시내가 병들고, 도시의 더러운 숨길에 가을잎이 제 색깔을 못내며, 정원의 제초제에 쫓겨난 잡초가 살 땅을 잃고, 그리고 또, 또...
나 혼자 만의 안타까운 마음이 아니 였으면 합니다.
'마음'하니 말인데, 18세기 합리주의의 '머리' 에 맞서, 자연에의 회귀(回歸)로 삶의 질을 찾아 낭만을 즐기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머리로만 말고 가슴으로 살아야 한다는게 이들의 주장이었고, 지금도, 이성과 합리의 극성속에서 멋대로의 기계문명에 회의를 갖는 것은 단지 몇몇 사람만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과학의 성취와 편리의 한편에선 왠지 께름직하고 무엇인가 아쉬운듯 우리 마음 깊숙히 도사리고 있는 것을 모른척하며 사는 삶이 제발 아니었으면 합니다.
한번 만이라도 생각해 보십시요. 온통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뒤덮인 도시의 아파트나 회사건물도, 또 자동차도 고치속 같이 통제된 환경에서 녹슬어 가는 도심(都心)에는, 벌레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은지가 꽤 된 것을 알고 계십니까?
잡풀이 자라고 나무가 커서 가랑잎이 떨려 깔리는 이 땅의 흙이, 백과사전에서나 나오는 지식이 되고 말면 도시의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인간으로 커갈 것입니까? 주말에 피자 시키듯, 가끔 생각날때면 전화걸어 상품화된 '자연'을 주문하는 우리의 아이들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댄 깁슨의 새-물-바람을 담은 소리를 틀며, 지하실 벽을 숲속 사진으로 뒤발라 놓고 꼴값 떨어 본 사람이면 무슨 말인지 눈치챌 것이라 믿습니다.
꼴값하는 것은, 사방을 분별없이 치닫다가도 잠시 주위를 흘낏거려보는 일 입니다. 꼴값하는 이는, 잡초로 버림받고 도시의 정원에서 쫓겨난 이름없는 꽃을 찾아 숲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가을이 오면 익어 넘치는 원시(原始)에 맘껏 취(醉)해 흔들려 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꼴값은 자연하고 하는 것입니다. '자연과 여가와 가슴입니다. 이건 '도시의 바쁨과 머리'에 맞선 도전 입니다.
보우네스 산책 후의 내 일기에는 황금찬 씨의 "5월이 오면"을 이렇게 인용해 적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창 앞에 새가 와서 노래하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深山 숲내 풍기...."는 5월이 머지 않은 지금, 잃어 버리고 있는 것이 어디 이것하나 일까만, 사그러져가는 도시인의 시정(詩情)이 안스러워 이렇게 넋두리를 하고 있습니다.

발행일: 200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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