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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땅에 뿌리를 내리며 (20번째, 마지막)
글 : 어진이

1977년 6월

황박사와 함께 일을 한지도 벌써 일년이 넘었다. 생각해 보면 D박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채용해서 기초를 딱아 준 사람이였고 황박사는 나를 잘 자라게 키워준 사람이였다. 황박사는 나보다 10살이 위였다. 같은 동양 사람이였기에 어떤 때는 형님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중국 사람답게 느긋한 사람이였다. 어떤 때는 너무 느리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황박사를 재촉할 때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성격을 가졌지만 잘 조화를 이루는 짝이였다. 황박사가 느긋하면서도 치밀한 장기적인 계획을 일단 세워 놓으면, 난 한국 사람 특유의 조직성과 근면성으로 일을 추진해 나갔다. 지겹게 투덜거렸던 군대생활의 경험이 나의 이민 생활에 알게 모르게 참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는 공군에서 군생활을 했기 때문에 원래는 36개월을 했어야 했는데 김신조 덕분(?)에 6개월이 연장돼서 42개월의 군생활을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연구소에서 황박사와 나의 위치는 점점 탄탄해져 갔다. 황박사의 해박한 지식과 나의 열심(?)의 combination은 주위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황박사는 나를 친동생처럼 대해 주었고 자기가 아는 것을 아낌없이 가르쳐 주었다. Organic Chemistry(유기화학)과 Polymer Chemistry(고분자화학)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많이 달랐다. 나는 D박사에게서 배운 유기화학의 기초 위에 황박사로 부터 고분자화학의 지식을 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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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이와 결혼을 하고 가족계획을 세웠다.
“아이들은 딸 아들 가리지 않고 둘만 낳을 것”
“가능하면 빨리 낳고 길러서 빨리 끝낼 것”이였다.
그런데 일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남들은 잘도 아이들을 갖던데…… 우리는 노력(?)을 해도 아이가 생기질 않았다.

‘그러다 생기겠지… 남들 다 만드는 아이를 우리가 왜 못 만들어’
처음엔 자신만만 했는데, 시간이 일년정도 지나니까 응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둘중에 하나가 잘못 된거 아냐?’
말씀은 안 하셨지만 부모님들도‘어떻게 된거야?’하시는 눈치셨다.
‘거~ 참 이상하네!’
‘큰 처형도 결혼하고 2년 후에 임신을 했다더니, 내력인가?’
순진이도 초조해 하는 것 같았다.

직장에서 돌아 온 나에게 순진이가 말했다.
“여보~ 나……”
“뭔데?”
“나 말야……”
“오늘따라 왜 이래?”
“나~ 이번에 걸렀어요.”
“뭘~?”
“그거……”
“그래~? 정말이야?”
“응~”
“전번에도 그런 적이 있었잖아?”
“이번엔 진짜 같애. 지난번에 그런 일이 있어서……”
“……”
“이번엔 더 오래 기다리면서 말 안했어요.”
“……”
“그러니까 이번엔 두번이나 거른거야……”
“그래~? 정말이야?”

이틀 후에 Family Doctor를 찾아갔다. 진료실에서 나오는 순진이에게 물었다.
“뭐래?”
“…… 임신이래요.” 순진이는 고개를 숙이고 수집게 웃었다.
“우리 아이가 생긴거야?”
“엉~”
‘요 뱃속에 우리 아이가 있단 말이지?!’
신기했다! 결혼하면 누구나 가지는 아이를 우리도 가지게 됐는데, 그게 너무나 신기했다.

임신의 소식을 들었는데 이상하게 지나간 6년간의 이민생활이 주마등처럼 머리 속을 스쳐갔다.

어리둥절하면서 비행기에서 내리던 일
오돌오돌 떨면서 직장을 찾아 다나던 일
공장에서 노동하던 일
영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학교다나던 일
직장을 못 잡아서 절망에 빠졌던 일
D박사의 얼굴
Director 사무실에서 마음 졸이던 일
순진이와의 신혼여행
형님같은 황박사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젠 제가 남의 땅에서 뿌리를 내린겁니까? 이제 첫 아이가 생겼습니다. 남의 땅에서 맺은 첫 열매입니다. 건강하게 낳아서 잘 기르게 해주십시요. 하나님께로 부터 칭찬받고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키우게 해 주십시요.”
갑자기 순진이의 얼굴이 흐맀하게 보였다. 순진이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쳐 있었다.
순진이의 손을 잡고 병원문을 나섰다.

푸르른 나뭇닢 위로 6월의 밝은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꼬리글:
20회를 마지막으로 “남의 땅에 뿌리를 내리며”를 끝냅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시고, 공감해 주시고, 격려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보람찬 이민의 삶을 살아가시길 빕니다.

어진이 드림

기사 등록일: 200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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