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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풍경 _ 김 주 안 (캐나다 여류문협)
에밀리 카 작품 
유학하고 있던 아들이 잠시 귀국하면서 에밀리 카와 그룹 오브 세븐의 화보집 두 권을 가지고 왔다.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알게 된 화가들이었는데 이들의 화보집을 꼭 갖고 싶었던 터라 무척 반가웠다.
십여 년 전에 문우들과 캐나다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밴쿠버에서 캘거리로 이동하는 도중 비행기 시간이 남아서 밴쿠버 미술관을 들르게 되었다. 여정에 없었지만 우연히 관람한 이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에밀리 카라는 빅토리아 출신의 화가를 만났다.
3층에 마련된 에밀리 카의 전시실에서 받았던 감흥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화폭에 담겨진 숲과 나무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역동적이었고 자유로우면서도 힘차 보였다. 또한 원주민들의 생활과 문화를 소재로 한 많은 토템폴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에밀리 카만의 독특한 개성 그대로였다. 그후 어디를 가도 에밀리 카의 그림을 알아보는데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예술에는 저만의 독특한 개성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지금까지 내가 써온 글들을 더듬어 본 적도 있었다.
그룹 오브 세븐은 에밀리 카와도 친밀한 교제를 나눴던 화가들의 모임이다. 미술관들을 관람하면서 이들에 대한 명성이 대단하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되었다. 이들은 토론토를 중심으로 1920년부터 일곱 명의 화가들이 모여 캐나다의 대자연을 화폭에 옮기면서 최초로 자국적인 예술 활동을 하였다. 당시 유럽풍의 그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때라 캐나다만의 독자적인 색채를 지닌 예술 세계를 확립한 이들에 대해 이 나라 사람들은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아들이 머물고 있던 토론토를 여행하면서 그룹 오브 세븐의 그림을 보기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몬트리올 미술관을 시작으로 오타와 내셔널 갤러리, 온타리오 아트 갤러리 등 가는 곳마다 이들의 많은 그림들이 캐나다의 한 자랑처럼 걸려 있었다. 몬트리올 미술관에서는 에밀리 카와 깊은 교제를 나눴던 로렌 해리스의 <슈페리어호의 아침>이 마음을 단단히 붙잡았다. 가슴이 시리도록 차가운 푸른빛 호수 위로 떠오르는 아침 태양이 내 안으로 여지없이 파고들었다. 보면 볼수록 신비에 가까운 독특한 색감과 웅장하고 거룩한 대자연을 거침없이 표현한 대작 앞에서 한참동안 마음이 묶여버렸다.
국내외 다양한 콜렉션을 갖추고 있는 오타와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톰 톰슨의 대표작인 <잭 파인>과 <서풍>을 감상할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톰 톰슨은 그룹 오브 세븐이 결성되기 전 이들에게 깊은 영향을 준 화가다. 고독한 잭 소나무와 강한 색상, 그리고 빛의 대조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가 하면 바람의 방향따라 나뭇가지가 일렁이는 듯한 <서풍>의 감성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토론토로 돌아와 온타리오 아트 갤러리를 무료로 입장하는 수요일에 그룹 오브 세븐을 만나기 위해 두 번을 다녀왔다. 2층에 마련된 커다란 두 개의 방에는 그림들만 전시되어 있었고 다른 하나의 방에는 토론토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기록들을 영상과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홀 중앙에서 로키의 거대한 설산과 호수를 그린 로렌 해리스의 작품들이 가장 먼저 손짓을 했다. 푸른빛이 도는 하얀 설산들과 장대하게 솟은 봉우리들이 우선 시선을 압도했다. 그의 그림은 추상에 가까운 단순한 구성이었지만 쉬우면서도 오히려 주제를 집약시켜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었다. 그때 글뿐 아니라 한 폭의 그림도 이처럼 감동을 전한다는 사실을 깊이 알게 되었다.
미술관을 다녀온 후 다시 캐나다 로키 마운틴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서스캐치완에서 꼬박 이틀을 자동차로 달리는 동안 내내 설렜다. 재스퍼 다운타운에서 바라보는 설산들은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하며 신비롭기까지 했다. 로키에서 가장 큰 담수호 멀린 레이크를 마주하니 단순하면서도 힘찬 붓놀림과 절묘한 색상의 대비를 이룬 로렌 해리스의 <멀린 레이크>가 새로운 감흥으로 다가왔다. 모레인 레이크를 둘러싸고 있는 신비의 템플산도, 밴프를 두르며 흐르는 보우강도 그림이 있어 더욱 빛나 보였다. 강과 호수 그리고 빙하와 설산 등 로키의 자연이 이들의 손에서 새로운 감동으로 다시 태어났던 것이다.
로키를 여행하는 동안, 지금은 교통이 발달되었는데도 워낙 깊고 높은 곳이라 자연의 위협이 만만찮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은 원시림과 같았을 거친 로키에서 어찌 그리 열정적인 예술혼을 태울 수 있었을까. 원주민들의 마을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영혼을 작품으로 남긴 에밀리 카도 거칠고 황량한 자연을 온몸으로 어찌 감당했을까. 이런 강한 애착과 순수한 열망이 자연의 생명력과 원주민들의 삶을 독특한 개성으로 화폭에 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에밀리 카와 그룹 오브 세븐의 그림이 있는 풍경들을 직접 눈과 가슴에 두고 그 배경들을 따라 로키 마운틴을 돌아본 후, 나는 가끔 열에 들뜨곤 한다. 아들이 사다 준 화보집을 펼쳐들 때마다 이들의 순수하고도 열정적인 예술혼을 온몸으로 느낀다. 내게도 이러한 순수한 열정과 예술혼을 내비칠 그 무엇이 있을까. 한 세기가 지나도 내 글에 감동할 그 한 사람이 있을까.
오늘, 그림이 있는 풍경들은 내게 새롭고도 충분한 도전이었다.


기사 등록일: 202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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