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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독수리 _ 신금재(캘거리 문협 회원)
 
모처럼 찾아온 휴가
창가 햇살 아래에서 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귀절을 읽게 되었다.
늙은 독수리의 처절한 자기 혁신 이야기였다.
독수리는 인간처럼 70여년 사는데 40년이 지나면 부리가 닳아져 휘어지면서 가슴을 찌르게 되고
깃털도 무거워져 먹이 사냥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때 그대로 죽어가는 독수리들이 있고 처절한 자기 혁신을 통하여 남은 30년을 더 사는 독수리들이 있다고한다.

부리가 길어져 자기 가슴을 찌를 때에 처절한 각오로 절벽 바위에 올라가 부리를 깨어내고 무거워진 깃털이 새로 나오도록
오 개월 정도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것이다.
새로운 변화를 위한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면 그 독수리는 남은 30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늙은 독수리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민살이하는 자신을 돌아본다.

--40년 쯤 살고나면--

우리가 이민오던 그해 2001년, 우리는 사십 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동생들은 왜 그 나이에 이민가려고 하느냐 하면서 이제 안정되게 살만도 한데 다시 또 고생을 사서 하려느냐, 하면서 말렸었다.
말리면서도 동생은 사소한 심부름이나 이삿짐 싸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삿짐에 넣을 것, 버릴 것 그리고 남에게 주어도 될 것 등.
그런데 짐을 정리하다가 면장갑 뭉치가 나왔다.
그 면장갑은 알록달록 무지개 색으로 물들인 것이었다.
유치원에서는 한 해를 마감하는 겨울 방학에 앞서 작품 전시회를 하곤 하였다.
말이 전시회지 학부형들 초대하여 다음 해 원아모집을 하는 행사였다.
여기 사람들이 잘하는 오픈 하우스(open house)인 셈이었다.
그 해에는 면장갑에 물을 들이고 색실로 머리카락 장식을 하여 인형을 만들었는데 남은 면장갑 뭉치가 창고 속에서 다른 짐들과 함께 나온 것이었다.
누나, 이 면장갑은 모야.
어, 그게 거기에 있었네. 혹시 모르니 짐 한귀퉁이에 넣어봐. 누나가 거기 가서 노가다를 할 수 도 있고 세차장에서 일 할 지도 몰라.

나는 엊그제 캐나다에 먼저 가서 세차장 일을 하며 안정을 찾았다는 이웃집과 통화한 생각이 떠올라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말해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대성통곡하며 우는 것이었다.
그럴거면 모하러 가는거야.
그냥 여기서 살지.

들어보니 동생말이 맞았다.
우리는 이제 인생 중반이 되어 왜 물설고 낯설은 캐나다로 가려는걸까.
짐을 싸다말고 마루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내 모습을 바라보니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친정어머니는 그래도 얘네가 설마 갈까, 설마 떠날까 미심쩍어 하다가 캐나다로 이삿짐을 부쳤다는 말에 전화기 너머에서 소리도 들리지않는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난 참으로 몹쓸 딸이며 누나였다.
늙은 독수리를 읽으면서 외로운 독수리의 모습 위로 그때의 내 모습이 겹쳐진다.
유치원이라는 직장에서 아줌마인 내가 참으로 오래 버텨내었다.
늙은 독수리처럼 이제 나도 부리가 꺽여 내가슴을 찌르고 깃털도 바래고 발톱도 빠져가는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못이기는 척 남편의 캐나다 이민 권유를 받아들이던 그때 나의 심정은 인생 중반에 새로운 인생을 찾아보려는 내마음 안의 굳은 의지도 한 몫 하였다.

--절벽에 올라가 둥지를 짓고--

우리가 처음으로 둥지를 튼 그 동네 이름은 달하우지였다.
동네 이름에서 왠지 시골길에 달구지가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런 느낌이 드는 곳이지만 전철역과 가까워서 다운타운 나가기가 쉬웠다.
한달에 팔백불 정도 주고 빌린 렌트 하우스, 우리처럼 아직 정착하지못한 중국인들이 많았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너무 어두워서 여러 번 넘어졌고 카페트 청소를 하지않아 여름에 맨발로 걸으면 찐득거리는 느낌이 발바닥에 전해져 온 몸이 더 더워지면서 땀이 나던 곳.
그곳에서 첫 직장을 얻었고 버스를 타고 역으로 나가 전철을 타고 보우강을 건너 영어를 배우러 다녔다.
영어 클라스는 중간 정도에 배치받아 들어갔지만 발음이 서로 다른 각국의 사람들 말을 알아듣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매일 밤마다 숙제로 저널을 썼다.
저널을 쓰는 일은 그야말로 혼자 절벽에 올라가 혼자의 둥지에 외로히 떨어진 느낌이었다.
그해 오 월부터 십이 월까지 영어 학교를 다녔다.
직장 잡았으면 ESL 필요없다고 주변에서 말렸는데 돌이켜보면 그때 영어를 제대로 배웠지 싶다.
ESL 절벽에 올라가 영어라는 둥지를 틀고서.

--부리와 발톱이 생기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렇게 십년 넘게 다운타운 데이케어로 출근하였다.
영어라는 부리는 하루하루 자라나 이제 제법 의사표현이 되어가고 늘 웅크리면서 숨겼던 발톱도 자라나 그들의 부당함에 불쑥 불쑥 양말을 뜷고 나오기도 하였다.
그때가 되었는지 생각지도 않았던 일로 직장을 떠나게 되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가 준비하고 아이들을 보살피는 데이홈.
촬리라는 남자아이 하나로 시작한 데이홈은 이제 찾아오는 아이들을 다 받을 수 없어 웨이팅 리스트(waiting list)에 올리며 자리가 날 때마다 받아주고 있다.

캘거리에 내렸던 폭설이 지나고 시눅바람이 찾아와 마치 봄이 온 듯 바람이 분다.
며칠 동안 바깥놀이에 나가지 못한 아이들은 눈싸움 놀이를 하며 눈천사를 그리고있다.

어디선가 늙은 독수리 한 마리 하늘 위로 지나가며 먹잇감을 찾는 듯 두리번 거리고있다.

기사 등록일: 202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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