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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숲에서 여름나기(1) _ 김주안 (캐나다 여류문협)
 
캐나다 1번 하이웨이에서 화이트 우드로 들어오는 길이 여럿 있는데 콰펠 스트리트도 그 중 하나다. 콰펠 스트리트를 들어설 때마다 마을로 가지 않고 곧장 가면 무엇이 나올까 하는 낯선 설렘이 생겨났다. 하루는 자동차를 몰고 그 낯선 설렘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이곳에 온 지 달을 넘기고 있으니 지리는 웬만큼 익숙해져 마을을 벗어난 길이 궁금해지던 참이다.
흙먼지를 뽀얗게 달고는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샛노란 물감을 온통 부어놓은 듯하던 카놀라밭에는 어느새 노란색이 지쳤는지 초록빛이 다시 밀려들고 있었다. 이모작이 가능한 곳도 있다니 서둘러 꽃잎을 접고는 씨방을 차리는가 보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있는 밀밭에는 이삭들이 피어 바람 따라 물결치며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눈앞에 바라보이는 지평선은 금방 닿을 것 같은데 자동차로 며칠을 가도 끝나지 않는 곳이 중부 캐나다 프레리 들판이다. 이 광대한 들판은 어디를 가도 밀밭과 카놀라밭 일색이다. 이맘 때 쯤이면 노란 밭은 카놀라이고 초록 물결은 밀밭이다. 때론 스카이 블루색을 만나는데 프락스(Flax)를 재배하는 밭이다. 프락스의 씨로 기름을 짜내어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아마씨유를 만들어낸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으로 난 길을 앞으로 더 나가보기로 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텅 빈 들판뿐이다. 한 트럭이 지나가다가 무슨 문제가 생겼냐며 관심을 잠시 보이곤 없다고 하자 이내 사라졌다. 다시 온 들판에 정적이 내려앉았고 여름 햇살에 따갑게 달구어진 도로만이 눈부셨다. 느린 속도로 다시 자동차를 천천히 움직였다.
여기저기 빈 밭에 놓여진 건초더미들도 보였고 시선이 끝날 것 같지 않은 목초지도 나타났다. 화이트 포플러라는 나무들이 있어서 화이트 우드라는 마을이름이 생겼다고 하며 들판 중간중간에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양나무라고 하기도 하는데 나무줄기가 하얀색에다 줄지어 늘어선 풍경이 특이했다. 이곳 캐나다는 한대지방이라 잎이 넓은 활엽수는 보기 드물고 침엽수나 이런 화이트 포플러가 대부분이었다.
한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자주색 물결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엇이 저리도 들판을 자주색으로 물들였을까 하는 생각에 자동차를 멈췄다. 자세히 보니 개자리꽃들이 자주색, 노랑, 하양, 베이지 등 가지각색으로 피어나 초록잎 사이사이로 콕콕 박혀 있었다. 다른 색은 그리 눈에 덜 띄는 편인데 유독 자주색에서 묻어나는 색감이 생경했다.
개자리는 우리나라에서도 귀화식물이 되어 여름이 되면 들판에 만발하는 꽃이다. 이 커다란 풍경들을 카메라에 잡아보고자 여러 번 렌즈를 갖다 대어도 찍히는 것은 한계가 있어 마음만 안타까울 뿐이었다. 꽃송이도 작아서 렌즈를 바짝 붙여야 겨우 그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향기 또한 진해서 코끝을 갖다 대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잠시 후각을 아찔하게 만드는 이런 향기도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개자리꽃이 이렇듯 군락을 이루며 이방인의 오감을 여지없이 묶어놓고 있었다.
잔대꽃을 닮은 캄파눌라(Campanula)가 다른 잡초들과 뒤엉켜 보랏빛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길게 솟아올라온 꽃대에 무수한 종모양의 보랏빛 꽃송이들을 달고는 비포장 도로가에서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 꽃색과 생김새는 야생화라고 하기엔 무척 곱고 아름다웠다. 그리스 신화에 캄파눌라가 황금 사과 과수원을 지키는 예쁜 소녀였다고 하는데 종모양을 한 꽃 모양새가 꼭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레 몇 가지를 꺾어 들었더니 온몸이 보랏빛 꽃색으로 물드는 느낌이었다.
이 끝없는 들판에서 이렇듯 처연한 꽃색의 야생화를 만나다니 무슨 횡재라도 얻은 듯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 꽃색을 바라보며 지냈던 하얀 숲에서의 여름은 두고두고 생각해도 가슴 뛰는 일이었다.
편견에 기대어 하찮은 잡초로만 여겼던 엉겅퀴도 무리져 피어나 분홍빛을 토하며 여름 향연에 한몫을 하고 있었다. 들국화 종류인 옥스 아이 데이지(Ox eye daisy) 무리를 만났을 때도 청초한 모습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발길을 멈추어야 했다. 서양조밥꽃이라는 샛노란 꽃잎이 도로가에 키를 세우고 줄지어 선 모습을 보니 무슨 환영식에서 사열을 받고 있는 기분이 들어 황홀하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자연은 온몸을 풀어헤치며 여름 축제를 이 들판에서 성대하게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축제에 초대되어 낯선 설렘과 무방비한 황홀함을 맛보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행운이 어디 있을까. 이곳 생활에 조금은 무료해질 무렵 카놀라가 피어나 그 노란 물결로 말을 걸어주더니, 오늘은 이렇듯 대평원에 어우러진 갖가지 야생화들이 온몸을 달뜨게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짧다보니 씨를 퍼뜨리기 위한 시간도 그리 넉넉지 않아서 그런지 꽃들이 대부분 화려했다. 정원에 옮겨다 심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크기도 클뿐더러 꽃색도 대담했다. 그러한 야생화들이 어우러진 온 들판은 자연이 꾸며놓은 거대한 화원이었다. 그 화원에 여름의 향연이 아우성치며 펼쳐지고 있었다. 일제히 피어나 저마다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자연의 순리대로 사명을 다하는 모습에서 한편 거룩함이 느껴졌다. 나도 자연이 만들어 놓은 걸작품 속에 무작정 동화되어 사스캐츠완 대평원의 위대한 여름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 거룩한 모습을 보며 깊숙이 찬양하고 있었다. (다음호에서 2편 계속)


기사 등록일: 2021-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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