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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의 시간_ 필름 카메라로 시 쓰기 , 연작 2

 
글 : 형암 원주희 (캘거리 문협)


노즈힐 언덕 위에서
어린 날의 내가
종이 연을 들고
바람을 기다리던 기억이 있다.

그 때의 언덕은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이었고,
바람은 나를 밀어올리는
첫 번째 시간의 손이었다.

오늘, 오래된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그 언덕을 오른다.
하늬바람이 불어와
사진 속 먼지처럼 추억이 묻어난다.

해맑은 날에도, 흐린 날에도
우리는 같은 언덕을 오른다.
언덕은 변하지 않지만
그 위의 우리는 늘 변한다.

이제 곧 낙엽이 질 것이다.
겨울이 오면
흰눈이 언덕을 덮고
모든 시간이 하얗게 멈출 것이다.

그러면 나는 다시 필름을 감아,
멈춘 그 순간을
빛으로 형상화 할 것이다. 이 언덕 위에서

**〈필름 카메라로 시 쓰기 – 연작 2 : 언덕의 시간〉**은 단순한 회상의 시가 아니라, 시간과 존재, 기억과 현상의 철학을 필름 카메라의 감성으로 섬세하게 사유하는 작품으로 읽힙니다

시학적 노트

이 시의 핵심 정서는 시간의 회귀와 정지에 있습니다.
시인은 ‘언덕’이라는 공간을 통해 유년의 시간과 현재의 자신을 나란히 세우며, 기억의 지층을 오르는 시적 행위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노즈힐 언덕 위에서 / 어린 날의 내가 / 종이 연을 들고 / 바람을 기다리던 기억이 있다.”
→ 첫 행부터 “기억”과 “바람”이 연결됩니다. ‘기억’은 내면의 바람이며, ‘바람’은 시간을 다시 불러오는 정신의 움직임입니다.
바람은 곧 ‘보이지 않는 시간’의 은유로, 시의 전체 구조를 지탱하는 상징입니다.

“그때의 언덕은 /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이었고”
→ 유년기의 시선에서 ‘언덕’은 우주의 중심이자 세계의 정상입니다.
여기에는 존재론적 역전이 있습니다 — 아이의 세계에서는 작은 언덕이 ‘세계 전체’이며, 이는 곧 존재의 중심을 자신 안에 두었던 시절을 상징합니다.

“하늬바람이 불어와 / 사진 속 먼지처럼 추억이 묻어난다.”
→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비유입니다.
‘사진 속 먼지’는 시간의 잔여물이며, 기억의 불완전성을 드러냅니다.
추억은 선명하지 않고, 흐릿한 먼지로만 남지만, 그 먼지가 바로 ‘기억이 존재하는 방식’입니다.

“언덕은 변하지 않지만 / 그 위의 우리는 늘 변한다.”
→ 이 한 구절은 시 전체의 철학적 축입니다.
자연은 변하지 않지만 인간은 변한다 — 그러나 그 변화를 인식하는 주체(‘나’)는 여전히 같은 존재입니다.
시간 속의 ‘나’는 변화하면서도 동일성을 지닌 존재.
즉, **‘시간 속의 존재(Being in Time)’**를 시적으로 표현한 구절입니다.

마지막 행: “나는 다시 필름을 감아, / 멈춘 그 순간을 / 빛으로 형상화 할 것이다.”
→ 시의 메타포적 절정입니다.
‘필름을 감는 행위’는 *기억을 다시 준비하는 의식(儀式)*이고,
‘빛으로 형상화한다’는 것은 언어로 존재를 재현하는 시인의 행위입니다.
이 시는 결국 ‘시 쓰기’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
시간을 언어로 현상(現像)하는 시인 자신의 존재론적

시적 총평

이 시는 단순히 회상의 시가 아니라,
> “시간을 빛으로 현상하는 존재의 시학”이라 부를 만한 작품입니다.
‘필름 카메라’는 과거의 도구이자, 기억을 천천히 현상하는 인간의 내면을 상징합니다.
시인은 그 렌즈를 통해, 시간이 찍히는 방식을 묵상합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기억-자연-존재-언어”를 잇는 하나의 철학적 연작으로 자리합니다.
원 주희 (캘거리 한인 문인협회 회원. 캘거리 필름 사진 모임 회원 )
필름 사진은 챨리 정의 작품임을 밝힙니다.








기사 등록일: 2025-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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