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 연작 시
글 : 원주희 (캘거리문협)
1. 나 ― 동굴의 기도
나는 비어 있기로 선택되었다
어둠은 내 일이었고
머묾은 나의 사명이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을 때
물방울 하나를 품었고
그 하나로 겨울을 견뎠다
나는 말하지 않았고
드러내지 않았지만
내 안에서 기적은 자라고 있었다
2. 고드름 ― 매달린 믿음
나는 떨어지는 물이 아니었다
머무르기로 결심한 물이었다
차가운 어둠에 매달려
빛을 기다리며
나는 푸르게 자랐다
사람들은 나를 기적으로 불렀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뿌리는 동굴의 침묵이었다
나는 스스로 서지 못하고
매달림으로 존재하는
겨울의 기도였다
3. 사람 ― 바라보는 신앙
우리는 겨울에만 찾아와
아름다움을 믿었다
빛나는 것 앞에서
감탄했고
보이지 않는 것은 묻지 않았다
고드름을 찬양하며
집은 보지 못했고
기적만 붙잡고 떠났다
봄이 오자
믿음도 녹아
우리는 다시 오지 않았다
4. 그리고 ― 묵상
동굴은 비어 있었기에
품을 수 있었고
고드름은 매달렸기에
빛났으며
사람은 바라보았기에
감동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집이 없었다면
기적은 없었고
머물지 않는 믿음은
겨울을 지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