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막걸리 _ 김숙경(캐나다 여류문협 시인)
막걸리 한 사발에
해장국 말아 드시고
근심을 씻어내던 아버지
취해 집에 오시는 날이면
양손에 과자봉지
잠든 아이를 깨워
풀어놓던 웃음
노래하면 과자 쥐여주며
'좋아라' 하시던 아버지
나라 잃은 설움을 겪으시고
역사의 고리에 걸린 세월을
묵묵히 지나오신 분
격동의 나라에서
칠남매를 키우시느라
손끝이 닳고
손톱에 피멍이 들어도
불평 한 마디 없던 분
아버지는
자신보다 나라를 사랑했고,
내일을 안고 살아갈 자식들을
걱정하셨지요
어떤 말이 나라를 흔들고
어떤 마음이 사람을 무너뜨리는지
아버지는 이미 알고 계셨지요
이제야
내가 아버지 나이를 지나
그 말들의 무게를
가슴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늘에서도 막걸리 한 잔
하고 계신가요
둘째 딸이
아버지께 막걸리 한 잔
따라 드리고 싶습니다
늦게 철든 딸자식이
오늘에서야
아버지 마음을
한 모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무척 그립고
보고픈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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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아버지의 막걸리는 술이 아니라 하루를 견디는 방식이었다.
해장국을 말아 드시며 삼키던 것은 술이 아니라 세월이었고, 양손에 들고 오시던 과자봉지에는 말로 다 못한 사랑이 들어 있었다.
나는 이제야 아버지의 나이를 지나 그 마음을 한 모금씩 배우고 있다
막걸리에 비치는 그리운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