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간 - 필름 카메라로 쓴 시 , 연작 8
글 : 원주희 (캘거리 문협, 캘거리 사진작가모임)
한때 이곳은 계절의 심장이었다
황금의 숨결이 들고 나던 통로,
곡식의 무게로 시간은 천천히 익어 갔다.
그러나 세월은 알곡보다 먼저 스며들어
나무의 결을 따라 조용히 비워 갔고,
비는 지붕의 기억을 씻어
존재의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나는 채움이 아니라
비워짐으로 서 있는 몸,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내 안의 공허가 소리를 배운다.
눈이 내리면 나는 무게를 배운다.
견딤은 버팀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으려는 마지막 의지의 다른 이름임을.
문은 닫히지 않고,
창은 막히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지키지 않고
그저 통과시키는 존재가 되었다.
지나온 계절들이 기둥에 기대어
낡은 그림자처럼 서성일 때,
나는 묻는다.
가득 찼던 날들이 나였는지
비어 있는 지금이 나인지.
멀리서 보면
내 안으로 하늘이 보인다 한다.
허물어진 틈이
빛의 통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쓰러지지 않는다.
존재란 무너지지 않음이 아니라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하늘을 향해 서 있는 자세이므로.
내가 지키는 것은 더 이상 곡식이 아니다.
내가 지키는 것은
비어 있음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의 마지막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