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람

카니 자유당, 월요일 과반 확보 유력…소수정부 족쇄 벗고 ‘단..

관심글

관심글


명지국민학교._글 : 전재민 (캘거리 문협 명예회원)

 
내가 다녔던 명지국민학교(초등학교)는 서울의 명지국민학교가 아니고 제천의 강제동 소재 초등학교다. 우리가 다니던 시절엔 공부보다 일을 많이 한 것 같다. 학교에서도 신설학교라 운동장이 물이 빠지지 않아 수렁이 되어 앞산에 흙을 퍼서 운동장을 매꾸었다.
지금 학교들은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을 이용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고사리같은 어린 초등학교 학생들이 검정고무신을 신고 여학생은 조그만 세수대야같은 곳에 담아서 머리위에 이고 운동장으로 나르고 남학생들은 산을 절개할만큼 날마다 삽으로 퍼냈다.
빈땅이 있으면 잔듸를 심는 것이 아니고 아주까리를 심고 고구마를 심었다. 달걀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의 근원지인 옥외 변소에서 인분을 퍼다가 고구마에 아주까리에 뿌렸다. 고구마는 인분을 먹고 자라 애들 머리만하게 자랐고 선생님은 그 수확물을 교무실에 자랑처럼 놓고 화제를 만들었다.

산곡1구인 우리 동네와 산곡2구 학생들은 툭하면 패싸움도하고 쪽수가 부족한 우리는 늘 도망다니기 바빴다. 방학이면 퇴비로 쓸 산풀과 들기름을 박카스병에 가지고 가야했다.퇴비풀은 인분과 섞어 퇴비로 들기름은 골마루 닦는데 썼다.
나는 키가 크다는 이유로 유리창을 닦았는데 신문지나 천조가리로 청소를 하면 더 더럽혀지기 일쑤였다. 지금처럼 온갖 약품으로 청소하던 시절이 아니니 요즘 사용하는 세제는 당연히 없었다.

입학식은 운동장이 질척해 엄마등에 업혀 들어가서 옥상에서 했다. 전무후무하게 우리 학년은 3개반이었고 한 반에 80명이 넘었다. 눈을 감으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눈을 감고 프라스틱 잔을 가방에 매달고 다니다가 책상에 놓으면 빵과 따뜻한 우유 한 잔씩 배급됐는데 학교 가기전에 먹어보지 못해서 얼마나 맛있던지... 3학년때 담임선생님인 대머리 김일수 선생님이 구구단을 못외우면 집에 가지 못한다고 하고 외우는 애들만 집에 보냈다.

외운 아이들은 다들 가고 몇명 남지 않은 어두워진 교실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국민교육헌장도 애국가 4절까지도 그렇게 외웠다. 민방위 훈련사이렌이 울리면 운동장으로 나가 엎드려 눈과 귀를 막고 입을 벌렸다.
운동회가 되면 골뱅이, 쫀득이등을 먹고 보재미로 박을 터트리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란 글자가 휘날렸다.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육상부, 씨름부등을 했지만 승부욕이 없어 있으나마나한 존재였다. 그럼에도 덤블링에선 인간탑 가장 아래서 버텨야했고 차전놀이에서 가장앞서 싸워야했다. 기마전에선 말이 되어 기수보다 더 처절히 싸웠다. 4학년 담임은 내가 짝사랑한 첫 담임으로 젊고 고왔다.

6학년이되어 이장댁에 일요일 일찍가서 마이크를 켜고 회원들 뿐만 아닌 동네사람을 깨웠다. 신작로가정자리 코스모스 심고 가꾸기, 마을길 쓸기, 어른들이 해야할 하수청소일을 새마을노래에 맞추어 했다.

학교 입학전 우리집엔 전기가 들어 오지 않아 호롱불을 켜고 공부했다. 국민학교 다닐 때도 전기없는 친구네 집에서 전과와 수련장을 보고 반대말과 비슷한말을 쓰는 숙제를 호롱불 아래 바닥에 엎드려 했다. 검정 고무신을 싫어 했지만 늘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다 학교 끝나면 냇가에서 물놀이 하면서 집에 가고 학교앞 매점에도 동네가게에도 막걸리는 있어도 과자는 자야와 라면땅밖에 없고 TV가 동네 한 대밖에 없어 구박 받으며 라시찬 주연의 드라마 “전우”를 보며 자라고, 홍길동전입체영화에 신기해 했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못해서 수도꼭지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냉장고가 없어 상한밥을 찬물에 씻어 김치를 쭉쭉 찢어 올려 먹던 시절 화로불에 된장찌개만으로도 온가족이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작가 약력
밴쿠버 거주/캐나다디카시회원/한카문협회원/ 캘거리한인문협회명예회원/불교닷컴칼럼리스트/
강건문화뉴스 기자/밴쿠버 중앙일보, 조선일보 작가,
교육신문 칼럼리스트/충청문화예술초대 사진작가/시집 밴쿠버 연가


기사 등록일: 2026-03-28


나도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