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경 검문 강화…캘거리 한인, 공항서 입국 거부 당해 - 국경서 체포∙구금∙추방 급증…휴대폰에 전신 검사까지
ESTA 있어도 안심 못해…유럽, 자국민에 미국 여행 자제 권고
미국 세관 및 국경보호국(U.S. Customs and Border Protection)
(안영민 기자) 캘거리에 거주하는 한인 A는 20일 자녀와 함께 미국으로 여행을 가려다 캘거리 공항의 미국 심사장에서 입국을 거절당했다.
미국 입국심사관은 10여년 전 A씨가 대한민국 영주권자 신분으로 미국 비자를 신청할 때 거부당한 적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A씨의 입국을 막았다.
A씨는 수 년 전 영주권자일 때도 여러 차례 미국을 방문했고 이후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한 뒤에도 미국 방문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전하며 갑자기 미국이 이런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입국을 금지하는 것은 전혀 상식 밖이라며 황당해 했다.
A씨는 이날 초등학생인 자녀 두 명과 뉴욕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A씨는 본지에 이런 사연을 제보하면서, 이미 지불한 항공료와 여행지 숙박비가 아깝기는 하지만 해외여행을 가게 돼 들떠 있던 아이들이 실망한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속상하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국경 검문이 강화돼 일반 관광객이나 비자 소비자들이 예상치 못한 이유로 입국이 거부되거나 체포 또는 구금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 방문을 앞둔 캐나다 여행객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21일 CBC와 AP통신, 뉴욕타임스 등 다수의 외신에 따르면, 미국이 최근 이민법 집행을 강화하면서 깐깐하게 외국 관광객들을 검문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는 개인 휴대폰과 소지품 검사는 물론 전신 검색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경에서 체포되는 이유는 표면상 이민법 위반이지만 정치적인 이유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 휴대폰 검사와 전신 검색도… 벤치에 수갑 채워 묶기도
CBC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경 요원은 최근 미국 시민인 레넌 타일러에게 수갑을 채워 그녀를 벤치에 묶었고, 그녀의 약혼자 루카스 지엘라프를 90일 미국 관광 허가 규칙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했다.
타일러의 약혼자는 미 세관원으로부터 공격적으로 심문을 받았고 영어로 대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당시 지엘라프는 전신 수색과 함께 휴대전화와 소지품을 조사받았으며 구금 시설에 이틀 동안 수감된 뒤 수갑과 족쇄가 채워진 채 샌디에이고의 Otay Mesa 구금 센터로 이송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2일 만에 풀려났다.
미국 이민 및 세관 집행국(ICE)은 이에 대해 지엘라프와 제시카 브뢰셰(또 다른 독일인으로, 별도의 사건으로 45일 동안 구금됨)가 세관 및 국경 보호국(CBP)에 의해 ‘불허가’로 간주됐다면서 "법률이나 비자 조건을 위반한 여행객은 구금 및 추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민자 보호 단체의 한 관계자는 “20여년을 국경에서 일했지만, 오랜 미국의 동맹국인 서유럽 여행객을 요즘처럼 마구잡이로 구금한 것을 본 적이 없다”며 "이렇게 하는 유일한 이유는 트럼프가 조장한 반이민 분위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CBP에 따르면 미국 국경 요원은 휴대전화, 노트북, 카메라 등 여행객의 전자 기기를 수색할 권한이 있다. CBP 웹사이트에 따르면 전자 기기 수색은 테러 활동, 아동 포르노, 마약 밀수를 파악하고 퇴치하기 위해 사용된다.
CBP는 2024년에 국경을 통과하는 국제 여행객의 0.01% 미만이 입국 항구에서 전자 기기 수색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국경을 넘는 여행객 4억여만 명 중 47,000명에 해당한다.
∎ 정치적 이유로 입국 거부…캐나다인은 안전한가?
미국 입국 거부가 단순한 비자 문제가 아닌 정치적 이유로 추정되는 사례도 눈에 띈다. 이런 이유로 미국과 관세로 갈등을 빚고 있는 캐나다의 여행객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캐나다 기업가 재스민 무니는 10여일 동안 미국 내 여러 구금 시설을 거친 후 밴쿠버로 추방돼 돌아왔는데, CTV News는 무니가 3월 3일에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비자를 신청한 후 구금된 것은 정치적인 이유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와 관련, Green and Spiegel 로펌의 수석 어소시에이트인 Benjamin Green은 “캐나다인이 정치적 의견 때문에 심문을 받거나 구금되는 사례가 최근 특별히 증가하지는 않았지만, 국경 감시가 강화됐다는 소식 때문에 미국 여행을 앞둔 캐나다인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 변호사인 Len Saunders는 “국경에서 입국이 거부돼 체포되더라도 변호사에게 전화할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다”면서 “캐나다인은 국경에서 미국인과 동일한 보호를 받지 못하므로 가능한 미국 방문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 트럼프 비난했던 영국 밴드와 프랑스 과학자, 미 입국 못하고 추방돼
영국의 유명 펑크 록 밴드 UK Subs의 멤버들은 미국 입국이 거부돼 구금된 사실을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19일 공개했다. 베이시스트 앨빈 깁스는 밴드 동료 마크 캐리와 스테판 하우블레인과 함께 구금 후 영국으로 추방됐다고 밝혔다.
깁스는 동료들과 함께 LA 공항에 착륙했을 때 심문 대상자로 분류됐는데 세관원으로부터 그들의 비자가 잘못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깁스는 "두 명의 경찰관이 공항의 다른 구역으로 안내했는데, 그곳엔 다른 동료들이 이미 차가운 구금 시설에 구금돼 있었다.”면서 “콜롬비아, 중국, 멕시코 수감자들도 그곳에 있었고 나는 이미 짐과 휴대전화, 여권을 압수당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깁스 일행은 몇 번의 인터뷰를 거쳐 25시간 만에 풀려났다. UK Subs는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정책을 강력히 비판해 왔으며, 라이브 공연 중에도 자주 정치적인 발언을 이어 왔다. 일각에서는 이들에 대한 미 당국의 돌연한 구금 조치가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프랑스 과학자도 미국 학회에 참석차 입국하는 것을 거부당했다. AFP는 이 프랑스 우주 과학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연구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 거부당했다고 보도했다.
ICE 대변인 Tricia McLaughlin은 "문제의 프랑스 연구원은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전자 기기에 기밀 정보를 보관하고 있었다. 비공개 계약을 위반한 것으로 그는 허가 없이 정보를 가져갔고 이를 숨기려고 시도했다."고 해명했다.
∎ 유럽 여행객에 대한 더욱 엄격한 국경 통제 조치
특히 유럽인 관광객이 미국 국경에서 구금되는 사건이 자주 발생해 각국은 자국민들에게 미국 여행 시 주의를 기울일 것을 권고했다.
최근 독일 국민 3명이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구금되고 추방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독일 외무부는 미국에 대한 여행 경보를 발령하고 유효한 ESTA 또는 비자도 미국 입국을 보장하지 않는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이어 최종 결정은 전적으로 CBP 직원에게 있으며, 여행객이 입국을 거부당할 경우 법적 구제 수단이 없다고 조언했다.
영국 정부도 유사한 조치를 취했다. 영국 외무부와 영연방 개발부(FCDO)는 최근 여행 지침을 업데이트하고 “미국 여행 시 사소한 비자 위반으로 입국 거부, 구금 또는 추방될 수 있다”면서 "여행자는 유효한 ESTA 또는 체류 목적에 맞는 비자로만 미국에 입국해야 하며 비자 기간을 초과하거나 허위 정보를 제공하면 체포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은 미국 국경 관리들이 영국인에게 이민법을 엄격하게 시행하고 있으며, 과거 비자 위반, 잘못된 신고 또는 범죄 기록이 있을 경우 추가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덴마크는 성소수자들에게 미국 여행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