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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흙 수저의 반란

 
소년공과 아웃사이더
(오충근 기자) 역사는 서로 다른 시공간 속에서 비슷한 종류의 인물을 탄생시킨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소년공 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이재명과 변방 코르시카의 시골 촌놈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이 그런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흙수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린 나이에 학교 대신 공장에 취직해 고사리 같은 손으로 험한 작업하며 돈을 벌어야 했던 이재명은 검정고시로 학업을 이어가며 대학을 마친 후 시장 도지사를 거쳐 마침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나폴레옹은 프랑스가 정복한 변방 코르시카 출신의 하찮은 계급 출신으로 전형적인 비주류 인생이다. 심한 사투리에 가난, 아웃사이더로서 주류 기득권의 멸시와 조롱 속에서 사관학교를 다녔다. 내성적인 그는 친구도 없이 혼자 도서관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지냈다. 가난했던 청년장교 시절 르 프로코프(Le Procope)에서 술 마시고 돈이 없어 모자를 맡기고 나왔다. 그 모자는 지금도 르 프로코프에 전시되어 있다.

인사정책의 공통점

흙수저 출신 지도자들은 기득권에 신세진 게 없이 오로지 실력 하나로 밑바닥부터 시작해 정상에 올랐다. 그래서 나폴레옹이나 이재명은 이념보다는 실력을 중요하게 생각해 인사정책에도 “이념”이라는 프레임을 걷어내고 실력위주로 인재를 발탁한다.

나폴레옹은 능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했다. 극우 왕당파, 온건 중도파, 극좌 공화파(자코방 산악파)까지 가리지 않았다. 브르메르 18일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나폴레옹은 자신이 제1통령이 되고 루이15세 때 대신을 지낸 구시대 인물 샤를 프랑수아 르브렁이 제2통령, 루이 16세 사형에 찬성했던 자코방 산악파 깜바세레스는 제3통령으로 권력을 나누었다. 경찰장관 푸세는 자코방 출신이고 외무장관 탈레랑은 왕당파다. 나폴레옹은 혁명은 끝났다 라는 인식을 갖고 13년에 걸친 혁명과 10년에 걸친 전쟁으로 갈라진 민심 수습을 위해 좌우를 가리지 않는 인사정책으로 국민 통합에 나섰다.

나폴레옹은 재정확보에 힘써 프랑스 국립은행을 설립해 파탄지경에 이른 재정을 복원했다. 프랑스는 3년이란 짧은 시간에 경제적으로 번영을 구가하며 혁명으로 갈라진 민심을 수습했다. 구체제 인물 등용에 반대하는 세력은 독재권력으로 제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진보와는 거리가 있는 실용주의자다. 그는 진보적 가치나 이념을 실현할 사람보다 일 잘하는 능력, 일 맡기면 성과를 낼 사람을 우선한다. 그래서 정치적 대척점에 있는 인물들까지 통합이란 명분으로 등용해 민주당 내부에서 문재인 팬덤들의 반발을 샀다. 이혜훈과 인요한이 좋은 예다. 두 사람 모두 능력만 본다면 그 자리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진영논리를 떠나 내편 네편 가리지 않는 인사정책이 극단적 대립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녹녹하지 않다. 명분과 이념에 사로잡힌 민주당 극렬 지자자들이 “대통령이 변했나?” “변절했나?” 하고 있는데 이재명 대통령은 원래 그런 사람이지 변한 게 아니다. 그러고 좌가 되었던 우가 되었던 중도가 되었던 대통령은 진영을 떠나 모든 사람을 끌어안아야 정치적 명분도 선다.

선거는 진영으로 치르지만 정치는 전체 국민을 봐야 한다. 극렬 지지층은 양날의 칼이다. 기득권의 저항이나 정치적 위기에서 대통령을 지켜주는 큰 힘이 되지만 극렬 지지층을 바라보는 정치는 양극화의 벽을 더욱 더 높이고 야당을 설득의 대상이 아닌 타도의 대상으로 보게 되므로 통합은 불가능해진다.

나폴레옹이 주는 교훈

나폴레옹은 프랑스 경제를 반석위에 올려놓고 국민 통합을 이뤘으나 결국에는 몰락했다. 실용주의 관점에서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왕당파를 불러들이고 반동 귀족들을 사면해 내편으로 만들고 교회(카톨릭)와 화해했다. 그를 지지하던 말단 군인들과 민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혁명의 산물인 공화국을 물려 받았지만 독재권을 휘두르며 황제에 올라 공화국을 제국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반대파를 설득하고 협력을 구하는 대신 탄압하고 제거했다. 그 과정에서 왕당파 기용을 반대한 혁명파는 정치적 동력을 상실했다. 그후 나폴레옹은 끊임없이 외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해 프랑스에 영광과 번영을 안겨주었으나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라는 속담대로 전쟁으로 몰락했다. 그 결과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반석 위에 올려 놓았다는 긍정적 평가와 군사 독재자, 혁명의 배신자라는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전쟁과 독재라는 폭력의 결과다.

우리 한국은 성숙한 시민정신과 확고한 민주주의 체제를 갖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의회정치 틀 안에서 끊임없이 야당과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 야당과 대화, 설득을 “전선을 흐린다.” 거나 변절이나 배신으로 몰아가는 팬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단기적 반발을 관리해야 한다. 이제는 대통령의 권위로 누르고 독재로 상대를 제어하는 시대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주의가 빛을 발하고 성공하려면 지지층만이 아닌 반대파까지 끌어안는 정책으로 많은 국민들이 공감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통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과 자유무역 협상을 시작하며 “한미 FTA는 이념이 아니라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니까 협력해 달라.”고 열린우리당에 요청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의원 50명이 반대했다. 김근태, 유시민, 천정배, 조배숙(당시에는 민주당이었다), 정봉주 등등… 정청래는 낙선해 국회의원은 아니었으나 한미 FTA 극렬 반대자였다.

한미 FTA 반대 의원들이 군사독재시절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것은 높게 평가받아야 하지만 여당이 되었으면 여당 의원 답게 국익과 민생, 국가를 위한 철학이 있어야지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나는 선(善)이고 너는 악(惡)”이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혀 투쟁만 일 삼았으니 정권 빼앗기고 수모를 당한 끝에 노무현 대통령을 잃은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지금 민주당 팬덤들도 그 당시 열린우리당과 별로 다를 바 없다.

등 따습고 배 부른 먹사니즘

프랑스 혁명은 민중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주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매우 궁핍했고 혁명, 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려야 했고 내일 먹을 빵 걱정을 해야했다. 혁명정부의 통화정책이 실패했다. 혁명정부는 몰수한 교회 재산을 담보로 아시냐 라는 화폐를 발행했는데 화폐 가치가 떨어져 휴지조각이 되었다. 물가는 초고속으로 올랐고 특권층과 교회 토지를 분배 받은 농민들은 불안한 정국 속에서 전전긍긍이었다.

나폴레옹은 법전을 발행해 농민들의 토지를 법으로 보호했다. 농민들은 나폴레옹의 든든한 지지층이 되었다. 군인과 농민들의 지지는 나폴레옹에게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국립은행 설립하고 프랑화를 발행해 빠르게 경제안정을 되찾았다. 독재권력 등장으로 자유와 권리는 제한되었지만 민중들의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었다.

이재명 정부는 이제 일년이 지났다. 그의 실용주의 중도정책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먹고 사는 문제에 가시적 성과가 보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와 산업계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경제 살리기에 집중하는 모습은 긍정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흙수저 특유의 과감한 추진력과 민생 중심의 실용주의라는 강점을 살리면서도, 열성 지지층의 과도한 영향력과 과감히 거리를 두는 '절제의 리더십'을 보여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국민통합이 시작되고 먹고 사는 문제에도 희망이 보일 것이다. 진영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사 등록일: 202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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