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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기 _ 필름 카메라로 쓴 시 - 연작 10

 
한때 나의 책상 위에는

말이 없는 친구 하나가 있었다.


Erika Typewriter

그 조용한 기계는

내 생각이 길을 잃을 때마다

검은 리본 위에

하나씩 길을 만들어 주었다.


연애편지와 리포트,

밤늦은 일기와 서툰 논문까지

나는 독수리 타법으로 더듬더듬 말을 걸었고

그 친구는

또각또각 소리로 대답했다.


생각이 맑은 날에는

그 소리가 새처럼 가벼웠고

마음이 흐린 밤에는

키 하나 누르는 일도

서로 숨을 고르듯 느려졌다.


이제 그 친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책장 사이에서

오래된 시간처럼 조용히 앉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 젊은 날의 문장들은

어디까지나

그 친구의 또각거림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글과 사진 : 원주희 ( 캘거리 문협 )

기사 등록일: 202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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