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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그 녀 (1/2)_ 글 : 유장원 (캘거리 문협)
 

그 날도 따스한 가을 햇살이 복도 난간을 비추고 있었다.

종로를 벗어나 서소문에 새로 지었다는 학원 건물은 꼭 형무소 같아서 창살 없는 감옥이었고 복도 난간도 가슴까지 오도록 만들어서 무슨 자살 방지 턱 같은 느낌까지 드는 그러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 난간을 통해 쉬는 시간에 가을 햇살을 즐기며 담배 한 모금 빠는 게 재수생의 유일한 낙 중에 하나였다.

아, 물론 나는 그 낙을 이미 술,당구를 비롯해 여러 개로 늘린 처지였기 때문에 그다지 감격스러워 하지 않았지만 S대를 목표로 하는 놈들에겐 아마 유일했으리라.

아무튼 그 따스한 햇살은 또다시 내 가슴에 살포시 들어와 유혹하기 시작했다.
'뭐하고 있어 이 좋은 날에, 안 나가?'
유혹이란 년(?)은 끈질기기 짝이 없어서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천하절색이 아닌 천하절벽 K양처럼 떨어질 줄 몰랐지만난 가을 햇살에는 K에게 대하 듯 냉정하게 굴 수가 없었다.

K양이 천하절벽이란 별명을 얻게 된 것은 아마 여름이 다가 오는 6월의 어느 날로 기억한다.
남녀 성비가 극심하게 기울어진 학원에서 여자들은 늘 나의 관심의 대상이긴 했지만 K는 늘 책을 가슴에 붙이며 다니고있어서 습관인가보다 했고 수업을 들을 때도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등을 약간 굽힌 상태였기 때문에 잘 관찰(?)을 할수가 없었는데 그 날은 우연히 같은 책상에 앉아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 우연이란 것도 K가 비어 있는 내 옆에 와 앉아서 된 것이기 때문에 내 쪽에서 보면 우연이지만 일부러라는 표현이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자리는 칠판에서 좀 멀리 떨어진, 이른바 위험지대-선생이 잘 지목하는 지대-에서 벗어나 있어서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하고 있었는데 느닷없는 선생의 호출이 불려졌다
"거기 끝에서 두 번째, 문에서 첫 번째, 그래 너희들,둘 다 나와 이 문제 풀어 넌 1번, K는 2번"
둘 다 놀라는 순간 그 녀는 몸을 숙이려 하고 난 일어서려고 손을 책상을 잡으며 팔을 굽히는 데 하필 그 때 K의 가슴에팔꿈치가 닿아버렸다
그런데 분명 탱탱하거나 몽글거리는 감촉이 와야 하는데 전혀 그런 느낌이 없고 무언가 허공을 가르다 딱딱한 벽을 더듬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K는 얼굴이 벌개졌고 나는 허둥지둥 나가서 머리 속이 까만 채로 문제를 풀고 들어왔지만 K는 못 풀겠다며 끝내 나가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K는 나에게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넌 내 비밀을 다 알아 버렸어 넌 내 꺼야"
세상에 뭔 비밀이 그런거다냐.
뭐 이런 X같은... 이라고 하기엔 너무 늦어버렸고 이미 K꺼가 된, 허공을 맴돌다 돌아 온 팔꿈치에게 화풀이만 하였다.

그 날 이후 난 K를 천하절벽이라 놀렸지만 K는 상관없이 날 졸졸 따라 다녔고 난 빠져 나가기 불가능하다는 공포의 학원 건물 수위를 구워 삶아 수시로 밖으로 나가 당구 수를 올리며 K로부터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사실 난 L을 좋아했었는데 공부도 잘할 뿐더러 톡 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같은 반 재돌이(?)들을 더 자극하였지만 다들 그 놈의 공부 때문에 데면데면하게 굴었고 난 접근할 찬스를 엿보고 있던 찰나에 그만 K에게 낚여 버린 것이었다.
그 날 가을 햇살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된 것도 어쩌면 K로부터의 탈출에 더 끌렸을 것이리라.

그렇게 구워삶은 수위를 다시 졸라 학원을 탈출하고 나서는 아까부터 눈 여겨 보아 온 서소문 공원에 홀로 앉아서 무언가를 하는 여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서소문 공원은 이른바 그 학원의 캠퍼스라고 불리 울 정도로 바로 코 앞에 있어서 복도 난간에서 아까부터 찍어 둔 바로 그 여인으로 향한 것이다.
홀로 가을 햇살을 받으며 벤치에서 낙엽을 조물락거리는 아름다운 긴 머리 소녀!
으아.

상상만으로도 가슴은 뛰고 발을 빨라지고 콧소리는 절로 나오고 있었다.
'누구야 도대체 이 시간에 이 곳에 혼자 앉아 있는 여자는?'
궁금증은 더욱 커졌지만 침착해야 했다.

'땡땡이 치면서까지 왔는데 이 절호의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수는 없지.'
혼자 궁시렁 대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뭐라고 첫 말을 꺼낼까 ?

(다음호에 이어서 계속)

기사 등록일: 2015-10-23
운영팀 | 2022-01-09 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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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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