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안내   종이신문보기   업소록   로그인 |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93번 아이스필드 파크웨이 고속도로
 
 
김주안 (캐나다 여류문협)

백양나무를 보아야겠다고 재스퍼 다운타운을 벗어나 피라미드 로드로 들어섰다. 십여 분 뒤, 로키의 산중에 보석처럼 박혀 있던 페트리샤 호수가 말간 얼굴을 내민다. 호수로 가는 길 양 옆에는 하늘로 치솟은 파인트리가 사열을 하듯 늘어서 있다. 두터운 적막을 거느린 호수는 인기척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적막에 균열이라도 내려는지 남편이 파문을 일구며 물수제비를 뜬다. 그것도 잠시뿐, 호수는 요지부동이다.
지구의 북반부, 추운 나라에서 떼 지어 사는 백양나무 숲에 서 본다. 아득했던 기억들이 몰려든다. 꼭 11년 전 한 스승 아래 있던 이들과 이 백양나무 숲에서 파닥이는 웃음을 웃어본 적이 있다. 스승은 바이칼호 백양나무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고 정철의 <장진주사>를 강의하면서 죽은 후에 우리는 모두 백양나무 숲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이년 전 우리 곁을 떠나신 그 스승은 지금쯤 백양나무 숲에서 무얼 하실까.
이웃하고 있는 피라미드 호수에는 거센 바람이 일고 있었다. 옷섶으로 파고드는 한기도 만만찮다. 청명한 날이면 호수 깊숙이 내려와 앉아 있을 하늘과 산과 나무들은 두터운 구름 때문에 부재다. 피라미드 호수를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펼쳐 놓은 모습이라고 하는 이가 있는데 오늘 그 그림은 어림없겠다.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세찬 바람에 이유없이 거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차창문을 급히 닫아야 했다. 돌아 나오는데 백양나무 숲에서 새끼를 가진 암사슴 한 마리가 배웅이라도 하려는 듯 다가선다. 자동차를 멈추고 잠시 곁에 서 보았다. 암사슴의 눈망울은 로키의 푸르고 깊은 호수를 닮아 있다.
길이 거기 있기에 그 길 위에 머물게 했던, 16번 옐로우헤드 하이웨이, 이제 그 길을 벗어난다. 재스퍼 다운타운을 출발하여 93번 도로,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를 맞아들였다. 재스퍼에서 레이크루이스까지 이어주는 230km에 불과한 거리다. 제 속도를 유지하여 달리면 3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절반쯤 인 크로싱까지 가는 데만 우리는 긴 오후를 다 썼다. 족히 이천 미터는 넘을 한결같은 설산들이 릴레이 경주를 하듯 끝없이 늘어서 마냥 손짓을 해댄다. 그 설산들이 걸어 놓은 마법에 취해서 가다 서다를 수없이 반복한다. 지상에서 가장 느린 길,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를 그렇게 부르고 싶다.
재스퍼를 떠나 30여분쯤 가다 만난 곳이 아더배스카 폭포였다. 빙하가 몸을 녹여 강을 만들어 내고 그 강을 따라 흐르다가 깊은 절벽을 만나면 로키의 파워풀한 폭포들이 된다. 아들은 친구가 이 폭포를 적극 추천했다며 기대를 잔뜩 부풀린다. 이 친구는 내게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겠다던 니콜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친구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솔길에 접어들기도 전에 기세 좋게 흘러내리는 아더배스카 폭포의 우렁찬 소리가 웅웅거렸다. 23m의 깊은 협곡으로 곤두박질치는 거대한 물살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정신이 먹먹해진다.
수많은 시간들이 포개어지면서 만들어낸 퇴적층, 그 퇴적층 사이로 폭포수들이 몸을 던져 협곡을 만들어냈다. 협곡은 제 살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역동적인 물살을 온몸으로 대책없이 받아내고 있다. 저리 대책 없는 삶도 있는데 내 삶에 있어서는 작은 생채기로 엄살을 떨었던 부분은 없었을까? 시간을 품고 나니 그 기억 속의 생채기들이 이제는 삶의 훈장처럼 남아 있다.
컬럼비아 대빙원에서 흘러내린 물이 강폭이 좁아지고 낙차가 생기면서 형성된 선웹터 폭포, 재스퍼에서 출발한 자동차는 아더배스카 강이 끝나는 지점에서 이 폭포를 만나고 강은 선웹터 강으로 이름표를 바꿔단다.
선웹터 폭포를 들어서기 전 한국 여행 안내책자에서는 소개되지 않은 Buck Lake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직진하는 방향 왼쪽에 위치한 곳이라 좌회전 신호를 켰다. 주차장에 차를 정지시키자 사위는 원시림에 갇혀 버린 듯 적막하다. 원시림 사이로 오솔길이 보인다. 호수로 가는 길이다. 호수 이름은 수사슴(buck)인데 남편은 곰이 나올 것 같다며 자동차 곁을 떠나지 않는다.
백양나무만큼 긴 다리를 가진 아들은 성큼성큼 걸어 내려간다. 아득하게 멀어지더니 원시림 속으로 아예 사라진다. 순간, 오솔길은 적막으로 가득 채워지고 온 우주는 텅 빈 것 같다.
얼마 후 티끌처럼 보이던 움직임이 성큼성큼 커지더니 훤칠한 윤곽을 드러내며 아들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우주가 다시 가득 차고 새로운 반가움을 마주한다. 여행은 이렇게 때때로 만나는 새로운 반가움들 때문에 울렁거리게 되나 보다.
대빙원이 가까울수록 산을 두른 안개가 점점 짙어만 간다. 처음 이 도로가 사람들을 불러들였을 때는 바로 옆까지 여름에도 빙하가 덮여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빙하라기 보다는 어지럽게 널려 있는 얼음 덩어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 얼음덩어리를 사진에 담으려 아더배스카 빙원 가까이에서 다시 자동차를 세운다. 가급적 커다란 얼음덩어리 곁으로 다가가 이리저리 포즈를 취했다.
너른 빙원에서는 어슬렁거릴 곰도 없을 텐데 남편은 이번에도 자동차 곁을 떠나지 않는다. 멀리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내 쪽에다 카메라 렌즈를 열심히 맞추는 일을 대신했다고 한다.
컬럼비아 대빙원을 오르면 어른 키만 한 바퀴를 단 설상차에 한번쯤 올라 볼 일이다. 11년 전 그곳에서 평생 늙지 않게 살 수 있다는 마법의 물을 마셨고 보조개가 쏙쏙 들어가는 캘거리 가이드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높이 만큼 깊은 이 빙하가 500년 후면 사라질 것이라는 마법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한국부터 같이 동행했던 여행사 사장은 로키에서 몬도가네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레이크루이스 샘슨몰에서 50불에 단체로 팔려온 빨간 겨울쉐터들이 한여름 눈밭을 사슴 마냥 뛰기도 했다. 지금도 그곳에 오르면 축축했던 추억들이 뛰어다닐 것만 같다.
서스캐치원을 떠나 천여 킬로미터를 넘게 달려와도 지칠 줄 모르던 하얀색 승용차가 선웹터 고개를 오를 때는 걸음이 더디어졌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웬만한 산을 하나 넘는 것이 이곳 고개라는 것을 자동차가 먼저 알아차렸다. 전망대에 올라 자동차에게 숨을 고르게 한다. 차창문을 열자 영화관 스크린처럼 거대한 설산들이 눈앞에 다가섰다.
발아래로는 에머랄드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강줄기가 뱀처럼 구불대며 상록수 사이를 건너간다. 사이러스산 암벽이 마치 우는 것처럼 보인다는 ‘눈물의 벽’이 멀리 눈에 들어온다.
로키는 어디에 눈을 두어도 인간에게 넘치는 감동이다. 이 엄청난 대자연 앞에서, 한계에 다다른 내 문장으로는, 도저히 정리할 방법을 찾을 수 없겠다.
선웹터 고개는 재스퍼 국립공원과 밴프 국립공원의 경계를 이룬다. 이 고개만 넘으면 밴프국립공원이다. 석 달 전에 한국을 떠난 딸 아이가 밴프에 머물고 있다. 밴프란 말만 들어도 가슴에 온기가 서린다.
해가 긴 북반부 나라에는 여름이 가까울수록 느린 오후를 보낸다. 재스퍼에서 점심을 한 후 어둑해서야 크로싱에 있는 숙소에 닿았으니 무려 9시간은 넘게 오후를 보낸 셈이다.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를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한다. 하지만 북반부의 긴 오후를 닮아 있어 지상에서 가장 느린 길이기도 하다.
체크인을 하기위해 오피스에 들리니 진열대에서 관광안내 책자들이 눈길을 잡아 끈다. 세상은 어디를 가나 여행자들을 오라는 곳 천지다. 여행자들도 가야할 데가 천지로 널려 있다. 문득 아들의 아들도 제 아비와 이렇듯 즐거운 여행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아들의 아들, 이 또한 새로운 반가움 중의 하나다.
그러한 울렁거리는 상상을 안은 채, 이틀째 로키의 품에서 깊은 잠에 빠져 든다.

기사 등록일: 2018-12-22
나도 한마디
 
최근 인기기사
  웨스트젯 캘거리-인천 직항 정부.. +1
  캘거리 집값 역대 최고로 상승 ..
  4월부터 오르는 최저임금, 6년..
  캐나다 임시 거주자 3년내 5%..
  헉! 우버 시간당 수익이 6.8..
  캐나다 이민자 80%, “살기에..
  앨버타, 렌트 구하기 너무 어렵..
  앨버타 데이케어 비용 하루 15..
  캐나다 영주권자, 시민권 취득 .. +1
  주유소, 충격에 대비하라 - 앨..
댓글 달린 뉴스
  넨시, “연방 NDP와 결별, .. +1
  재외동포청, 재외공관서 동포 청.. +1
  CN드림 - 캐나다 한인언론사 .. +2
  (종합)모스크바 공연장서 무차별.. +1
  캐나다 동부 여행-두 번째 일지.. +1
  캐나다 영주권자, 시민권 취득 .. +1
회사소개 | 광고 문의 | 독자투고/제보 | 서비스약관 | 고객센터 | 공지사항 | 연락처 | 회원탈퇴
ⓒ 2015 CN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