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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새로운 국면 전개 _ 기자수첩

-러시아군 크림 반도 점령-
우크라이나(Ukraine)의회는 빅토르 야누토비치 대통령을 대량학살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반정부 시위 때 저격부대를 동원해 시위대에 조준 사격해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의회에서 탄핵당한 그는 헬기를 타고 러시아로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맞춰 유럽연합은 캐서린 애슈턴 외교안보 고위대표를 우크라이나로 보내 경제 지원을 약속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3월1일 조용히 그러나 전격적으로 크림(Crimea)반도를 점령해 사실상 크림반도 지배에 들어갔다. 총 한방 쏘지 않고 이루어진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으로 우크라이나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 들었다.
흑해함대 소속 병력으로 알려진 15,000명 무장병력은 크림 반도 주요 간선도로와 공항, 정부청사, 통신시설에 진주했다. 이와 때를 같이 해 푸틴 대통령이 요구로 소집된 의회는 해외병력 사용을 만장일치로 가결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명령을 내릴 수 있는 헌법적 권한을 갖게 되었다.
이날 의회에서 푸틴 대통령은 성명서를 발표 “우크라이나 사태로 크림반도의 러시아 시민들과 흑해함대 군인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 임시정부는 2일 전군에 전투태세 명령을 하달하고 40세 이하 예비군에게 동원령을 내렸다.
-국제사회 의 반응-
스티븐 하퍼 연방 총리는 성명을 발표, 러시아의 크림반도 군사개입을 강력히 비난하며 러시아 주재 캐나다 대사를 소환했다. 또한 6월 소치에서 열리는 G8 예비회담에 불참 할 것을 시사했다. G8 예비회담 불참은 캐나다를 비롯해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서방 주요세계가 보조를 맞췄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푸틴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의 심각성을 전달하고 이해 당사자간 대화로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은 빅토로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우크라이나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러시아가 군사 개입할 징후를 보이자 “군사개입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경고 직후 러시아는 군사작전을 통해 크림반도를 사실상 점령했다.
버럭 오바마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통화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를 명백히 침해했다”면서 “병력을 러시아 군 기지 내로 철수 시킬 것”을 요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를 계속 침해한다면 국제사회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고립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사무총장도 성명을 발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개입은 유럽의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방세계의 고민은 러시아의 군사행동을 막을 실질적 조치가 없다는 것이다. 외교적 조치로서는 6월에 열리는 G8 예비회담 불참과 G8에서 러시아 회원박탈 정도다. 서방세계는 경제제재를 고려하고 있다. 금융제재는 러시아에 심각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 지적이다. 실제로 러시아군 크림반도 장악으로 전쟁임박설이 나돌며 러시아 증시가 10% 폭락 했다.
한편 국제사회의 비판 일변도에 직면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러시아계 주민들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크림 반도-
크림반도는 복잡한 역사를 갖고 있으나 전통적으로 러시아 영토로 1854년-1856년의 크림전쟁으로 러시아의 흑해남하정책이 저지되었다. 크림전쟁은 나이팅게일이 간호부대를 창설해 활약한 것으로 유명하다. 크림 전쟁은 근대전쟁과 현대전쟁을 나누는 분기점이 된 전쟁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러시아 영토였던 크림 반도는 1954년 흐루시쵸프 소련 서기장에 의해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92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할 때 크림 자치공화국이 되었으나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에 속해 있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다.
혁명으로 대통령이 축출되고 세워진 우크라이나 임시정부가 친서방 성향을 보이자 친 러시아 계열의 크림 자치정부는 중앙정부에 반발하며 이탈할 움직임을 보이자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는 이런 움직임을 ‘분리주의’로 규정 강경대응을 시사했다.
이번 러시아 군사작전도 크림 자치공화국의 친 러시아계 주민들의 적극적 협조가 있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전통적으로 작은 러시아로 인식해왔다. 인구 절반이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키예프 공국과 모스크바 공국은 러시아 역사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키예프 공국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중심으로 있었던 국가로 동 슬라브족이 주종을 이뤘다. 키예프 공국은 원나라의 침공을 받고 망했다.
모스크바 공국은 현재 러시아의 모체로 역시 원나라에 정복 당했었다. 원나라는 모스크바 공국을 정복하고 귀족들을 엎드리게 한 채 그 위에 상을 차려놓고 전승 축하 파티를 벌여 러시아 지배계급에 치욕을 안겨 주었다.
우크라이나는 1922년 소비에트 연합에 강제 합병되었다. 곡창지대 우크라이나는 스탈린의 인위적 기근으로 1921-1922년, 1932년-1933년 두 차례에 걸쳐 800만명-1,000만명이 죽었다. 대 기근의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탑이 에드몬톤 시청 앞에 세워져 있어 그때의 참상을 말해주고 있다. 2차대전 때는 독일의 침공을 받아 키예프 전투에서 소련군 66만명이 독일군 포로가 되었다.
-러시아 민족주의-
냉전에 의한 이념 갈등의 시대는 지났다. 한국을 제외하고는 “빨갱이 타령”하는 나라가 없는 게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대신 민족주의 갈등, 종교갈등이 지구촌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시리아 내전은 대표적인 종교 갈등이다. 12%에 불과한 소수종파 알라위파가 집권세력으로 70%가 넘는 수니파를 통치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는 소비에트 연방이 누렸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맹주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2015년까지 구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연결하는 유라시아 연합을 구상하고 있다. 강한 러시아가 중심이 되어 유럽연합처럼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거대한 통합체를 만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러시아는 좌파 우파를 막론하고 러시아 민족주의 색채가 강하다. 2008년 그루지아를 무력 침공한 적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그루지아 보다 훨씬 중요하고 비중이 높은 구 소비에트 연방의 경제 중심지이자 대표적 곡창지대다.
우크라이나를 두고 벌어지는 서방세계와 러시아의 대결, 현재는 러시아가 한발 유리하게 움직이고 있다. 1997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흑해 함대 기지를 공동운용하기로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으로 러시아는 크림 반도에 군용기 161대, 병력 25,000을 보유할 수 있다. 러시아는 “이 협정이 군사훈련과 이동을 보장해 주고 있다.”고 서방측의 비판을 받아드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주선으로 정치적 타결의 길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 메르켈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러시아는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면서 압박하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이끄는 진상조사기구, 연락기구를 설치하자는 제안에 동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았다.

기사 등록일: 201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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