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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빛 그찰나 _ 최병순 레비나 (캘거리 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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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 그리고 12가지 장점을 지닌 그녀

 
얼마전 허핑톤 포스트에. ‘당신이 책을 읽는 여성과 데이트해야 하는 이유 12가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허핑톤 포스트 기사 보기
http://www.huffingtonpost.kr/2015/05/22/story_n_7418734.html

독서를 즐기는 여성은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내며 비판적이고 균형적인 사고를 하고 호기심이 많고 세심해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 대인관계도 좋다는 등 여러가지 장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여기에 나열된 것들은 남녀를 떠나 평소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인생의 기쁨이자 장점들이다.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이들을 독려하기 위해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란 말이 유행했었다. 당시 자기 소개서나 이력서의 취미란에 ‘독서’를 써 넣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는 것이 점점 여유로워지기 시작한 어느 시점부터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필수, 매일 밥 먹듯이 독서도 항상 하는 것이지 가을만 하는 게 아니다’ ,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이다’ 등의 반박 주장들이 나왔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요즘 ‘가을은 독서의 계절’ 이런 말은 거의 없어진듯 하다. 그런데 이러는 사이 책이 있어야 할 자리를 스마트 폰이 차지해 버렸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톡 등의 탄생으로 소셜 네트워킹이 엄청난 속도로 발달하게 되면서 누구에게나 방대한 대화와 소통의 장이 온라인 상에 마련되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이나 주변의 소중한 이들과의 오프라인 대화나 소통은 오히려 더 단절되어 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게다가 각종 문명의 이기와 스마트폰이 오히려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어 가고 있다.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처가집도 못찾아 가고, 핸드폰이 없으면 번호를 기억 못해 자녀들에게 전화도 못거는 세상이 되었다. 이렇게 뇌를 쉬게 하다보니 치매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예방법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 삶속에는 다양한 취미 활동들이 있는데 삶의 폭을 넓고 풍부하게 해주며 지적 능력도 향상시켜주고 치매 예방에도 좋은 가장 좋은 취미는 단연코 독서라고 나는 주장한다. 여기에 한 가지 취미를 더 붙인다면 여행 정도랄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상 경험은 많아지지만 오히려 사고는 더 고집스럽고 단단해지고 게다가 편협해지기도 쉬운데 풍부한 독서는 중년과 노년기에도 유연하면서도 균형잡힌 사고를 도와주며, 사고의 폭과 깊이도 키울 수 있어 자연 타인과의 소통능력도 커져 더욱 풍요로운 인생을 만들 수 있다. 독서는 청소년기와 젊은 시절에만 필요한 게 아니라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인생의 중요한 영양소중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다만, 무엇을 읽을까가 중요한 화두이다.
대학입시 때 학생들의 사고능력을 테스트 하기 위해 논술시험을 도입한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다. 시험준비를 위해서 학생들은 시사에 관심도 갖고, 역사와 자연 등 관심의 폭을 넓혀가며 탐구하고, 여행을 통해 견문도 넓히고 또 인문학 서적도 접하고, 사회토론에도 참여하면서 지적 사고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정작 대다수 학생들이 준비하는 것은 딱 한가지 ‘논술 잘 쓰는 법’ 책만 읽는 것이었다. 이런 잘못된 관행은 모두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성인들도 처세술과 돈 잘 버는 법, 자녀 잘 키우는 법 등등 각종 지침서들에만 관심들을 쏟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자동차 사면 딸려오는 ‘사용자 설명서’ 수준에 불과하다. 책을 읽고자 한다면 잠시의 유행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찾지 말고, 고전 읽기를 적극 추천한다. 그중에서도 대하역사소설을 권하고 싶다. 재미도 있지만 인류의 역사를 통해 삶의 지혜와 인생에 대해 배울 수 있고 올바른 역사관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양서는 서양에도 많지만 우선은 우리와 문화 차이가 큰데다가 매끄럽지 못한 번역들이 많아 동양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읽기 부담스럽다. 그래서 동양 역사소설에서 뽑아 보자면, 중국에는 삼국지, 열국지, 초한지, 수호지가 있고, 한국에는 태백산맥, 장길산, 임꺽정(월북작가 홍명희 작품), 빙벽, 토지가 있고, 일본에는 대망이 있다.

독서가 아무리 유익하다 해도 재미가 없으면 습관들이기 어렵다. 이런 차원에서 우선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고원정의 ‘빙벽’으로 시작해 보기를 권한다. 태백산맥은 한민족 역사상 최고의 소설로 손꼽을 수 있으니 부연 설명은 필요없을 듯하고, 빙벽은 작품성도 뛰어나지만 흥미와 재미로만 따지면 태백산맥을 능가한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박진감과 숨막히는 긴장감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는 분 단위로 독자의 숨통을 조여온다. 고원정은 활자를 통해 얼만큼 화려하고 선명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지 그 극한을 보여주고 있다.

한 걸음 더 나가보자면, 편협하지 않은 균형적인 사고를 키울 수 있는 책을 권하고 싶다. 이런 차원에서 나는 나관중의 삼국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제목은 삼국지이지만 실제 유비의 촉나라가 중심이며 내용상의 과장과 확대 수준이 미국의 패권주의를 그리는 헐리웃 영화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제갈공명과 관우에게는 신화적인 요소까지 가미해 역사의 지혜서 보다는 무협지나 액션영화 수준에 가깝다. 실제 역사속에서는 삼국중에서 촉나라의 비중은 위, 오나라보다 훨씬 작았기에 이 소설을 통해 과장된 부분을 바로 잡고자 하는 운동이 얼마전부터 학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역사를 통해 지혜와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중국 춘추전국시대 550년간을 다룬 소설 동주 열국지(풍몽룡 지음, 김구용 번역)를 강력 추천한다. 12권의 방대한 분량에 등장인물도 수백, 수천명에 달하지만, 따로 주인공을 두지 않고 역사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술했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역사서에 더 가깝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중 하나인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를 기초로 해서 선조들의 지혜와 교훈들이 담겨 있는데 교양서적으로는 물론 처세술 교본으로도 그만이다. 2200년전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을 그린 초한지도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상당히 균형잡힌 역사소설중 하나로 볼 수 있겠다.

인생에 있어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습관인 독서. 나는 감사하게도 중년인 지금도 항상 책을 가까이 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이북(E-book)도 담겨 있어, 몇분이라도 자투리 시간이 날 때면 이북을 들여다 본다. 그러다보니 낭비되는 시간이 없다. 이런 유익한 습관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의무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학창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쌓여온 독서습관 덕분인데 당시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고등학교 1학년때 쯤으로 기억된다. 아버님이 운영하시던 가게로 어느날 책 외판원이 방문해 책 전질을 소개했다. 당시 이런 외판원이 많았는데, 출판사가 문을 닫게 되어 헐값에 판매한다며 수십개의 전질에 책장까지 끼워서 파는 것이다. 시중에서는 볼 수 없는 저급한 용지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출판사가 망한 게 아니라 덤핑으로 팔기 위해 별도로 제작한 듯 싶다.
여하튼, 이렇게 해서 어느날 갑자기 우리집 거실에는 책이 가득히 꼽힌 두개의 책장이 놓이게 되었다. 그러고 몇달이 지나서, 나는 여름 방학때 심심해서 호기심에 책장에서 한 두권씩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가 결국은 푹 빠져 그때부터 독서광으로 변했다. 저급한 종이질과는 달리 책장에 꼽힌 책들은 명작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것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당시 책장에 꼽혀 있던 책들 중 두가지만 소개해 보자면 월탄 박종화의 대하역사소설 ‘자고가는 저 구름아’ 였다. 송강 정철이 전라도로 귀향가서부터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그곳에 기생 ‘강아’가 정철에게 절개를 바치는 이야기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왜군 적장에게 몸을 바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민족의식도 키웠고 강아라는 여인을 남몰래 흠모하며 지냈다. 중국 무협지인 '대평원'도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는지 모른다. 이후로도 몇번이나 다시 읽었는데 이것이 김용의 ‘영웅문 3부’ 였음을 알게 되었고, 이후 영웅문 1, 2부도 따로 구해서 모두 섭렵했다.
지금도 책장에는 나의 손때가 묻은 장편소설들이 가득한데, 책장을 들여다 볼 때마다 한번씩 더 읽고 싶은 충동에 빠지곤 하지만 가급적 감정을 누른다. 한번 시작하면 거기에 빠져 열권을 마칠 때 까지 다른 일을 소홀히 하기 쉽고 또 읽고 있는 동안은 소설과 현실이 잘 구분이 안되는 환상 속에 빠져들기도 해 한번 시작하기가 여간 부담스러운게 아니다. 그래도 1년에 한번정도는 장편소설 한 개를 골라서 다시 읽곤 한다.

고등학교때 시작된 독서 습관은 대학에 가서도 이어졌는데 소설에서 인문학쪽으로 영역을 확대시켜 나갔다. 당시 내 생활은 친구들과 술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둘중에 하나였는데 그러다보니 학업점수가 엉망이었고 결국 학사 경고를 두번이나 받았다. 이후 조금 정신을 차려 공부를 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는데 그래도 세 번째 학사 경고 만큼은 간신히 피해갔다. 이유는 단 한가지, 세 번이면 삼진아웃 - 퇴학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서의 장점에 대해 길게 나열하기는 했지만 나 자신은 솔직히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 독서 좋아한다면서 위인이 그것 밖에는 안되냐, 라고 자책하기 보다는 그나마 독서 덕분에 이 정도에 머무를 수 있었다고 위안해보며 오늘도 책을 펼친다. 이유는 단 한가지, 재미 있으니까. (발행인 김민식)


소설 '빙벽' 소개 기사 보기
http://www.cndreams.com/news/news_read.php?code1=2345&code2=5&code3=129&idx=9104&page=0

기사 등록일: 201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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