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쫙 깔린 서소문 공원은 시간이 어중간해서인지 인적이 별로 없었다. 햇살이 공원을 따스하게 하면 바람이 훼방을 놓으면서 낙엽을 쓸어가고 나무 밑동에는 쓸려 온 낙엽 뭉치들이 이리저리 흔들거리고 있었다. 벤치는 공원 한 가운데에 커다란 단풍 나무 밑에 자리 잡고 있어서 어디서나 눈에 띠었다. 제법 묵직한 낙엽 밟는 발걸음 소리가 벤치와 나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시몬 ,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아 ,시시몽 너는 좋아 죽겠냐 낙엽 뒹구는 소리가? 혼자서 이 순간을 즐기며 시 한 소절로 장난을 치고 있을 무렵 드디어 벤치 뒤에 다다랐다. "저기...." 잠시 뜸을 드린 후 시몬으로 운을 뗐다. "낙엽 밟는 소리가 좋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시를 썼더군요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라구요".
그 동안 뒤도 안 돌아 보고 계속 듣기만 하던 그 여인의 어깨가 들썩이더니 갑자기 "호호호호" 하며 크게 웃어 젖히며 돌아보는 데,바로 그 여인은 K였다 그리고 나를 더 놀라게 한 건 바로 K의 가슴이었다. 비록 가을 조끼를 입었어도 절벽이 아닌 봉긋한 가슴은 누가 봐도 탐스러웠다. K는 낙엽과 솔방울을 가지고 소위 뽕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K는 당당히 말했다 "나, 아까부터 널 기다렸어. 니가 첫 수업 마치고 복도에 나와서 담배 피는 걸 보고 저 바람둥이 오늘 또 땡땡이 치겠군 예상했고 공원을 보는 순간 저기다, 생각했지, 내가 머리를 풀고 앉아 있으면 분명히 올거야 , 아니나 달라, 바람둥이님께서 바람처럼 오시더군 그런데 기다리면서 낙엽을 가지고 만지작 거리다 보니 얘네들을 뭉쳐서 넣으면 볼록한 것이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니가 날 얼마나 놀렸으면 내가 이런 생각을 다 하겠냐? 그래서 한 번 해봤지 어때, 이제 난 절벽 아니다. 호호호"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나에게 날라 온 K의 마지막 펀치는 나를 낙엽 위로 쓰러뜨렸다.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 는 낙엽이리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J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호호호"
K는 그 날 이후 천하절벽에서 낙엽가슴으로 별명이 바뀌었고 나하고 늘 티격태격 하면서도 예비고사를 보기 까지 밋밋한 가슴 위에 낙엽 한 잎을 달고 다녔다. 마치 승리의 월계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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