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난민 영주권 대기기간 104개월로 폭증 - 신청자 5만3천 명 ‘서류 적체’…정부, “투명성 위한 조치” 해명에도 불신 확산
(사진출처=Immigration.ca)
(안영민 기자) 시리아 출신 난민 아마니 칸조는 지난 2022년 6월 캐나다에서 망명을 승인받고 한 달 뒤 영주권을 신청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몬트리올에서 홀로 기다리고 있다. 최근 확인한 결과, 영주권 처리 예상 기간이 불과 한 달 만에 49개월에서 104개월(8년 7개월)로 급등한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8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니 말도 안 돼요. 안전을 찾아 캐나다로 왔지만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에서 아무 계획도 세울 수 없어요.” 칸조는 터키에 남아 있는 약혼자와 떨어져 지내며 “여전히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캐나다 이민부(IRCC)가 최근 도입한 ‘영주권 신청 처리 현황 공개 도구’에 따르면, 현재 난민 보호 신분으로 영주권을 신청한 사람은 약 5만3,700명에 달한다. 퀘벡주에서는 대기 기간이 104개월, 나머지 지역도 99개월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칸조는 대기자 중 약 8,500번째로, 앞으로 16개월을 더 기다려야 할 전망이다.
영주권 신청 처리 현황의 공개는 이민부가 각 프로그램별 연간 수용 한도, 신청자 수, 행정 역량 등을 반영해 보다 “현실적이고 예측 가능한 정보 제공”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며 시행한 조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새 법안 ‘C-12’가 조만간 대규모 신청 취소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토론토의 이민 전문 변호사 제이나브 지아이는 “정부가 처리 시간을 급격히 늘려서 공개한 것은 여론을 미리 준비시키려는 신호”라며 “조만간 대규모 신청 취소나 제한 조치가 뒤따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C-12 법안은 공익을 이유로 비자·허가서 등 이민 관련 서류의 접수·심사·승인을 일시 중단하거나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정부에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민부는 이에 대해 “이민 제도의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며 “불확실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한 장치”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캘거리의 이민 컨설턴트 알파들 핫탑은 “인도주의 프로그램, 창업비자, 자영업 비자 등 다른 이민 카테고리도 모두 10년 이상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며 “이 수치가 발표된 시점이 지나치게 늦었고, 새 이민 계획 발표와 맞물린 점이 의도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조치는 신규 신청자에게는 참고가 되겠지만, 이미 대기 중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영주권 승인 수가 줄어드는 반면 신청자는 계속 늘고 있어 향후 거절률이 급격히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난민 보호 신분 신청자의 경우, 본인이 선택해 온 길이 아닌 만큼 수용 규모를 더 줄이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한다. 지아이 변호사는 “이민은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사람, 가족, 그리고 신뢰의 문제”라며 “캐나다가 희망과 미래를 약속해 놓고 수년간 기다리게 한 끝에 신청을 취소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민부에 따르면, 8월 31일 기준으로 총 220만 건의 이민 신청이 진행 중이며, 이 중 약 96만 건이 기준 처리 기간을 초과한 적체 상태다. 영주권 신청의 52%, 임시 체류 신청의 42%가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민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투명성을 명분으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며 “지금의 대기 상황은 단순한 행정 문제를 넘어, 캐나다 이민 시스템의 신뢰 그 자체가 걸린 문제”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