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에 ‘신호’ 보내는 미 이민단속국…이민자들 “우릴 적으로 본다”
채용 홍보에 백인우월주의 코드 논란…총격 이후 미 전역서 ‘ICE 퇴출’ 시위 확산
1월 12일 월요일, 미니애폴리스의 비숍 위플 연방 건물 앞에서 이민세관집행국(ICE) 요원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 스프레이를 발사하고 있다. ICE는 인종 프로파일링을 통해 이민 용의자를 단속하고 과도한 무력을 사용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사진출처=AP 통신)
(안영민 기자)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최근 채용 홍보물이 극우·백인우월주의 진영의 언어와 상징을 차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민자들과 인권단체는 “정부 기관이 우리를 범죄자이자 적으로 규정하는 메시지를 공공연히 보내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제의 게시물들은 겉으로 보면 트럼프 행정부 특유의 과격한 애국주의 이미지처럼 보인다. 그러나 극우주의를 오랫동안 추적해온 전문가들에겐 익숙한 ‘암호’들이 숨어 있다는 게 공통된 평가다. 남부빈곤법률센터의 해나 게이스 연구원은 “백인민족주의·네오나치 운동을 연구해온 사람이라면 즉각 알아볼 표현들”이라며 “정부 기관에서 나온다는 점이 특히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ICE는 지난해 여름 ‘아름다운 법안(Big Beautiful Bill)’ 통과로 80억 달러의 예산을 확보한 뒤 대규모 인력 확충에 나섰다. 목표는 연간 100만 명 추방. 그 과정에서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공격적인 채용 캠페인이 본격화됐다.
∎ ‘우연’으로 보기 힘든 반복
지난해 8월 ICE가 올린 ‘어느 길로 갈 것인가, 미국 남성’이라는 문구는 극우 인플루언서들이 사용하는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서구 남성” 밈과 거의 동일했다. 이 표현은 1970년대 네오나치 출판사가 낸 반유대주의 서적 제목에서 유래한 것으로, 백인우월주의자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소비돼 왔다.
10월에는 국토안보부가 조지 워싱턴 이미지를 배경으로 “미국은 미국인을 위한 나라(America for Americans)”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이 구호는 20세기 초 외국인 혐오 연설과 쿠클럭스클랜(KKK)이 사용했던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 인기 게임 ‘헤일로’의 이미지를 빌려 “홍수를 파괴하라”는 문구를 올렸는데, 극우 진영에서 유색인 이민자를 비인간화할 때 쓰는 은유와 겹친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정타는 최근 게시물이었다. “우리는 다시 우리의 집을 되찾을 것이다”라는 문구와 함께 백인민족주의 진영에서만 유통되는 노래가 삽입됐다. 극단주의 연구기관들은 이 노래가 외국인에 의한 ‘대체’ 공포를 노골적으로 노래한다고 분석한다. 한 프라우드 보이즈(Proud Boys) 지부는 해당 게시물을 공유하며 “메시지 받았다”고 적었다.
ICE는 지난해 약 22만 건의 지원서를 받았고 1만2000명을 신규 채용했다. “이 홍보가 누구를 끌어들이는지 우려스럽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 총격과 시위…“ICE는 우리 동네를 떠나라”
이 같은 논란은 최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벌어진 연방 요원의 총격 사건 이후 더욱 증폭됐다. 영상에는 연방 요원이 한 남성을 밀치고 여러 명이 둘러싸 제압하는 장면이 담겼다. 혼란 속에서 총성이 울렸고, 남성은 거리 위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현지 경찰청장은 “연방 기관도 시민을 대할 때 절제와 인간성을 지켜야 한다”며 진정한 대응을 촉구했다. 주 정부도 “연방 당국을 신뢰할 수 없다”며 독자 수사를 선언했다. 일각에선 연방 요원들이 주 수사기관의 현장 접근을 막았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사건 직후 뉴욕·워싱턴·로스앤젤레스 등 미 전역에서 시위가 확산됐다. 미니애폴리스에서는 영하 20도에 가까운 혹한 속에서도 수백 명이 현장에 모여 “ICE 지금 당장 나가라”, “ICE 감시는 범죄가 아니다”를 외쳤다. 분노한 군중이 연방 요원들에게 욕설을 퍼붓자, 한 요원은 “부우후”라며 조롱하듯 응수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밤이 되자 시민들은 현장에 추모 공간을 만들고 조용히 희생자를 기렸다. 인근 가게들은 시위대에게 물과 커피를 제공했다.
교외에서 왔다는 시민 케일럽 스파이크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매일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며 “우리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이 너무 잘못됐고 역겹다”고 말했다.
국토안보부는 극우 코드 사용 의혹을 부인하며 “불법 이민자 유입을 막겠다는 의미”라고 해명했지만, 이민자 사회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 이민자는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라 이웃”이라며 “정부가 극단주의자들에게 손짓하는 듯한 메시지를 보내는 한, 공포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