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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8월과 일본 _오충근의 기자수첩
 
광복이 광복이 아닌 이유

한국인에게 8월은 광복의 기쁨과 국치의 슬픔이 교차되는 달이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그 해가 경술년이라서 경술국치라고 부르는데 1910년 8월29일이다. 나라를 빼앗긴 후 나라를 되찾기 위해 무력항쟁을 하기도 했고 사회개혁으로 힘을 길러 독립을 하고자 했고 교육사업이나 경제자립으로 독립을 하고자 하기도 했고 국제사회를 무대로 외교적으로 독립을 하려고 노력을 하기도 했다.
독립을 하고자 하는 방법은 달랐으나 광복까지 독립을 위해 목숨을 버려가며 개인의 영달을 희생해 고생하고 애쓴 독립지사들의 노력이 지대한데 중, 고등학교 다닐 때는 “연합국이 전쟁에 이겨 독립 시켜준 거지 우리 노력으로 독립한 게 아니다.”라고 배웠다.
한국 사회가 가치가 전도된 사회로 해방된 조국 건설에 독립운동가들은 제외되고 일제에 협력하고 민족을 팔아먹은 친일매국노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주류가 되었다. 친일 매국노들은 의도적으로 독립운동을 폄하하고 멸시함으로써 친일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한국 사회가 독립운동가들이 천대받고 친일파가 우대 받는 가치 전도의 사회인지는 군부를 보면 알 수 있다. 초대 육군총장, 군정 때 남조선 국방경비대 육군 사령관을 포함하여 4 공화국 21대 육군총장 중 독립군 출신은 국방 경비대 사령관을 지낸 송호성이 유일하고 그 외에는 모두 일본군 장교출신이거나 학병출신이다.
18대 총장 김계원은 학병으로 강제 징집된 경우이고 17대 김용배 총장은 일본군에 복무했던 사실을 두고 두고 후회했다고 전해진다. 나머지는 박정희나 백선엽처럼 일본군 복무를 영광스럽게 여기거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해방 후부터 4공화국까지 국방부 장관 중 독립운동가 출신은 초대 이범석 장관 외에는 모두 일본군 출신이거나 일본 관료 출신이란 사실이 해방된 조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군부뿐 아니라 재계, 관료조직, 경찰, 문화계 등 사회 곳곳에서 독립운동가는 배척 받고 친일파들이 득세했다. 바라기는 문재인 정부가 전도된 가치를 바로 잡는 역할을 시작해서 이제부터라도 독립운동가 집안이 우대받는 전통이 시작되면 좋겠다.


조선인 정신을 망가뜨려라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했는데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욱일승천 하는 기세에 눌려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민족주의 보수는 자포자기해 그 때부터 친일로 변절하기 시작했다. 독립의 꿈은 사라졌으니 이제부터라도 일제에 충성해 2등국민이라도 되자고 생각했고 일제는 보수 민족주의자를 친일에 이용했다.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는 그 일을 비단 옷으로 걸레를 만들었다고 표현했다.
3.1운동 이후 통치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팽이와 조센진은 때려야 말 듣는다.”는 데라우치 마사타게(寺內正毅) 총독의 무단통치, 힘으로 억누르는 통치는 민중의 반발을 야기해 만세운동을 일으켰다고 생각해 좀 더 단수 높고 교활한 통치술을 도입했다. 유화정책, 문화정책을 쓰면서 민족을 분열시키고 암울하고 퇴폐적이고 절망적인 사회분위기를 조성해 민중은 희망을 잃고 정신을 나태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일제의 교활한 통치술도 작용했지만 3.1운동이라는 큰일을 치르고 난 후의 허탈감도 작용했다. 당시 조선의 분위기는 일제의 악랄한 탄압으로 만세운동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 윤치호 말대로 “만세나 부른다고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만세운동은 그 자체로 확산되지 못하고 5월부터 열기가 식었지만 임시정부 수립하는 계기가 되어 독립의지를 만방에 알리 게 되었고 민중들에게 독립의 당위성을 심어주었고 제국주의 핍박을 받는 다른 약소민족들의 독립운동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3.1운동이 실패로 끝났다는 것은 단견이다.
1920-30년대 유행했던 노래를 보면 그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대중가요는 그 시대를 가장 정직하게 말해주는 언어다. 애절하고 처연하고 우울하고 비탄적이고 비극적인 곡조와 가사는 염세와 삶의 허무, 절망을 나타내고 있다. 윤심덕의 사의 찬미, 친일 음악가 홍난파의 봉선화, 채규엽이 부른 희망가, 이정숙의 강남달 등이 그런 노래들이다.
일제가 태평양 전쟁에 광분하던 1930년대 말 40년대 초기에 나온 친일가수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낙화유수도 그런 부류의 노래들로 남인수는 전쟁 말기 “혈서지원” “그대 와 나” 등 일제 침략전쟁에 동조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나치 돌격대가 아니라면 군가나 행진곡만 들을 수는 없지만 절망, 포기, 나태, 무력감, 퇴폐적 분위기의 노래에 젖다 보면 삶이 무기력해지고 독립심, 긍정적 사고를 잃어버리고 망가지는 건 순식간으로 일제는 조선 청년들이 희망을 잃어버리고 식민지 현실에 순응하도록 교육 시키고 사회 분위기를 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갔다.


왕실과 백성의 이간책

청일전쟁 노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해 조선의 운명을 정해졌다 할 수 있다. 20세기 초기는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시대로 힘 있는 자가 정의로 약소국은 제국주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운명 이외 다른 선택이 없었다. 조선반도는 열강이 모두 노리고 있었으나 두 번의 전쟁을 모두 이긴 일본이 훨씬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미국은 한술 더 떠 가쓰라-테프트 밀약에서 “러일 전쟁의 승리로 조선에 대한 지배권이 러일 전쟁의 승리의 논리적 귀결이라는 일본의 의견을 미국이 인정한다.”고 일본 손을 들어주었다.
일본은 조선을 합병할 때 용의주도했다. 예를 들자면 조선 왕실에 대한 예우를 지켰다. 고종, 순종이 명색으로는 황제였는데 황제의 권위를 인정했다. 황제국 지위는 빼앗겨 황제에서 이왕(李王)으로 강등되었으나 일본 귀족인 화족(華族)보다는 서열을 높이 쳐 주었으니 일본 황족과 화족 사이였다.
경술 국치 다음 해에 고종 탄신일에 군중들이 모여 “황제 폐하 만세”를 외쳐도 총독부는 불문에 붙이고 못 들은 체 했다. 순종이 일본에 가기 전에 함흥에 순행했다. 함흥에는 이성계 본궁이 있고 이성계 4대조 사당이 있는 조선왕조의 성지인데 순종이 함흥에 순행 할 때 황제 깃발을 앞 세우고 황제 복장을 입고 제사를 지냈다.
일본으로서는 조선 왕실과 백성을 이간 시키는 고도의 술책이었다. 왕족들은 대우를 잘 해주니 독립운동 하지 않고 편안한 현실에 안주했고 일부 왕족은 적극적으로 부역했다. 을사늑약 이후로 일본에 무력 항쟁하는 의병이 일어났는데 의병의 중심인 선비들은 근왕정신에 투철했다. 그러나 일본이 왕족을 잘 대우하고 왕족들도 이에 만족해 현실에 안주하니 이에 선비들은 왕실에 실망하기 시작했다.
독립운동가들이 조선왕조 부흥 대신 공화국을 택한 이유 중에 하나가 왕실에 대한 실망이었다. 조선왕조가 무능하고 부패하기는 했으나 왕실에 대한 충성심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3.1운동 직후 설립된 임시정부도 공화국을 택했고 조선왕조 부흥은 거론도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현실에 안주해 독립의 꿈을 버린 왕실이 새로운 국가 건설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독립운동가는 없었다.
을사늑약 후 우당 이회영 선생은 고종을 망명시켜 망명정부를 세우려고 했다. 고종을 북경으로 망명시켜 일본과 전쟁을 조칙으로 발표해 대규모 항전을 이끌 계획이었다. 용의주도하고 빈틈이 없는 우당 선생은 고종 망명계획을 한가지씩 실현해 나갔다.
고종도 망명에 찬성했다. 내무대신을 지낸 민영달도 “황제의 뜻이 그렇다면 분골쇄신 하겠다.”고 적극 동조하고 거금 5만원을 선뜻 내놓았다. 우당은 그 돈을 북경으로 보내 동생 성재(초대 부통령)에게 보내 고종이 머물 행궁을 알아보라고 하는 등 계획은 하나씩 실현되었는데 뜻밖에 고종이 서거해 고종 망명계획은 무산되었다. 그 후 우당은 의친왕을 망명 시키려 했다 무산 된 적도 있다.
망한 나라 왕과 왕족은 적에게 모욕 당하다 처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게 보통인데 일본은 조선 민중이 왕실에 대한 충성심이 지극한 것을 알고 조선 왕실이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술책으로 조선 왕실을 우대해 한가지 걱정을 덜 게 된 것이다.

기사 등록일: 2017-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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