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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백인 우월주의의 깊은 뿌리_오충근의 기자수첩
 
역사적 진실과 왜곡, 조작

역사란 그 시대에 살지도 않았으면서 그 시대의 기록과 자료로 그 일이 왜 일어났나를 설명하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는 것이다. 자료가 풍부하면 자료를 교차검색하고 비교 분석해 사실에 가까운 결과를 도출해 내겠지만 역사적 자료라는 게 장마철 계곡 물 쏟아지듯 콸콸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니다.
또한 인간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경향이 있고 어떤 사건에 대해 전후 맥락을 잘라버리고 단편적 사실만 부각 시키다 보면 왜곡 된 역사, 조작된 역사, 잘못된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는 사실과 다른 것이 있어 각종 시비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인종주의자들의 난동
지난 8월 중순 버지니아 주 샬렛츠빌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과 신 나치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켜 1명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인종주의자, 신 나치들은 잊을만하면 한번씩 난동을 부린다. 2년 전에도 사우스 캘롤라이나 찰스턴 교회에서 인종주의자 딜런 루프가 총기를 난사해 예배중인 신자 9명이 죽고 3명이 중상을 당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남북전쟁 때 북군에 맞섰던 남부연맹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찰스턴 교회 살해범 딜런 루프는 남부연맹기를 놓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고 이번 샬렛츠빌 폭동은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철거를 놓고 일어났다.
버지니아 주지사나 살렛츠빌 시장은 인종차별의 상징인 남부연맹기, 리 장군 동상은 철거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인종주의자들과 신 나치들은 리 장군 동상 철거를 반대했다. 동상 철거 반대 시위가 난동으로 악화되어 인명피해가 발생 한 것이다.

로버트 리 장군

남부연맹을 역사적 유산으로 간직하고 남부의 자존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종주의자, 신 나치가 남부연맹을 구심점으로 삼는 사실에 대해 황당하다고 생각한다. 인종주의자들이나 신 나치, 극우파들의 추앙을 받는 리 장군은 군인으로서 능력이 뛰어나 북군 사령관직을 제안 받았으나 사양했다. 리 장군은 인종주의자도 아니었고 오히려 노예제도 폐지론자였으니 인종주의자나 신 나치들이 자신을 추앙하는 것을 알면 뒷목 잡고 나가자빠질 일이다.
리 장군이 고향 버지니아로 돌아 온 것은 남보다 뛰어난 애향심 때문이었다. 그는 연방주의자로 버지니아 연방 탈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나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고향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없다.”고 북군 합류를 거부했고 고향을 지키려 북버지니아군 사령관을 맡았다.
남북전쟁이 끝난 게 리 장군이 포토맥군에게 항복한 1865년4월9일인데 리 장군이 항복 한 것은 북버지니아군 사령관 자격으로 항복한 것이지 남부연맹 총 사령관 자격으로 항복한 것이 아니었다. 일개 지역사령관의 항복으로 양쪽 모두 “이 전쟁은 끝났다”라고 생각했으니 리 장군이 남부연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중국의 관우가 군신으로 추앙 받듯 리 장군은 남부의 자존심이자 군신 같은 존재인데 남북전쟁 때 남부연맹이 노예제도 폐지 반대 했다는 단 한가지 이유로 남부연맹 깃발이나 리 장군이 인종차별하고 히틀러 추앙하는 못 된 인간들의 결속을 다지는데 악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박근혜 탄핵 반대하는 한줌도 안 되는 무리들이 태극기 휘날리며 ‘박근혜 무죄’를 외치는 것과 닮은 꼴이다.

링컨 대통령에 대한 불편한 진실

북부는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했으니 인종차별이 덜하고 남부는 노예제도 찬성했으니 인종주의자들이 모인 집단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종차별은 법이나 제도 때문이 아니라 “편견” 때문으로 편견이 심한 곳은 노예제가 존재하는 주 보다 폐지된 주에서 더 심했다는 기록이 있다.
예를 들어 링컨 대통령의 고향인 일리노이 주를 비롯해 몇몇 북부 주에서는 해방된 흑인 노예들이 자기들 주에 와서 살지 못하도록 법을 고쳤다. 또한 북부연방에 속했지만 메릴랜드, 델라웨어, 미주리, 켄터키 주는 노예제도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북부연방이 노예제도 폐지에 호의적은 아니었고 노예에 대해 자비심이 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노예해방의 아버지 링컨이 사실은 히틀러나 트럼프에 못지 않은 인종주의자였다는 사실이다. 차이가 있다면 히틀러는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을 썼으나 링컨의 인종주의는 정치적 결과물 아래 숨어 있다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링컨 대통령은 1854년-1860년 사이에 흑인이 백인보다 열등하다는 의견을 최소 14회 밝혔다. 링컨이 대통령 된 것은 1861년인데 대통령 되기 전에는 백인과 흑인의 사회적 정치적 평등에 찬성하지 않았고 백인과 흑인 사이에 신체적 차이가 있으므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두 인종이 함께 사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링컨은 대통령 선거전에서도 탈주 노예법을 지지해 남부에서 인기가 높았다. 탈주 노예법은 도망친 노예를 본래 주인에게 돌려 보내는 법이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노예 해방 시키는 게 연방을 위한 것이라면 모든 노예를 해방 시키겠다. 그러나 노예제도 유지가 연방을 위하는 일이라면 한 명의 노예도 해방 시키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연방주의자다운 말로 전쟁 상황을 봐서 노예해방으로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생각이다. 농업 특히 면화를 생산해 영국으로 수출하는 남부로서는 주 노동력인 노예제도가 경제를 떠받드는 버팀목인데 노예해방으로 남부의 경제력을 붕괴 시켜 남부의 항복을 받겠다는 의도지 인류애에 입각해 노예를 해방하겠다는 게 아니었다.

위대한 선언, 노예 해방

상공업과 은행, 보험이 발달한 북부에서는 1830년대 대부분의 노예가 해방된 상태였으나 농장 위주의 남부에는 200만명의 노예가 있었는데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1월1일을 기해 링컨의 연방정부는 교전상태에 있는 남부연맹의 노예를 해방한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연방이 통제하는 주의 노예는 제외되었고 연방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남부연맹에 속한 주 노예에만 해당되는 선언이었다.
선언이 집행될 수 없는 주만 대상으로 한 선언에 대해 영국의 한 보수성향 잡지는 “노예 해방 선언은 인간이 인간을 소유하는 게 정당하지 않다는 게 아니고 연방에 충성하지 않으면 인간을 소유할 수 없다는 선언”이라고 아픈 곳을 꼬집었다.
노예선언은 북부에 전쟁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남북전쟁 초기 북군이 고전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정당한 전쟁 명분이 없다는 점이었다. 남부연맹은 북군의 침략으로부터 고향을 지키고 연방으로부터 자치권을 해치는 부당한 간섭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노예해방 선언은 “남부의 노예를 해방 시키자”라는 전쟁 명분을 제공했다.

연방주의자, 보호무역주의자 링컨

링컨은 연방주의자였다. 강력한 연방정부, 주 정부의 자치권이나 이익보다 국가통치이념으로 연방전체의 이익을 중시하는 통합을 우선해 연방정부가 화폐를 발행하고 보호무역을 강화해 고율의 관세를 재원으로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해 경제개발을 계획했다.
링컨은 대통령에 당선되자 관세를 종전의 두 배로 올려 미국 보호관세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 관세는 연방정부 주 수입원으로 영국의 자유무역 압력에 대해 “200년쯤 보호무역으로 장점을 다 취한 후에 자유무역 하겠다.”고 응수했다. 마치 트럼프가 대통령 취임하자마자 자유무역을 악으로 규정하며T.P.P. 탈퇴하고 NAFTA 와 한미 자유무역 재협상 주장하는 것과 똑 같은 현상이었다.
트럼프에게 스티브 배넌이 있듯 링컨 대통령에게는 경제수석 보좌간 헨리 캐리가 있어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내놓았다.
관세는 기업 보조금과 북부의 도시 건설과 항만 철도 운하 도로 등 인프라 건설에 투자되었다. 제조업 기반이 약한 남부는 공산품을 유럽이나 북부에서 수입했는데 남북전쟁 무렵 남부는 관세의 80%를 담당했다. 남부의 돈이 관세로 둔갑해 북부로 흘러 들어 북부 도시가 번창하자 남부는 착취당한다는 느낌을 가졌다.
“북부는 온갖 종류의 관세를 남부에 부담시켜 우리를 파멸 시키지 않고 최대한 착취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장하준 교수는 남북전쟁의 원인을 노예해방과 관세문제, 두 가지를 지적하면서 노예해방 보다는 관세문제가 더 컸다고 말했다. 링컨이 선거전에서 관세를 두 배로 올리겠다고 공약하자 남부는 연방 탈퇴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남부는 영국과 유럽에 더 많은 면화를 수출하기 위해 관세철폐를 주장했다.
강력한 연방, 중앙집권적 권력집중의 방해자인 남부연맹을 상대로 승리한 링컨은 암살되었으나 링컨의 정책은 후임자에게 계승되어 통합에 걸림돌이 되는 또 다른 방해자 원주민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남부를 통합하고 원주민을 몰아내 강력해진 연방은 세계에 군림하는 제국으로 성장했으니 강한 미국, 미국의 영광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미국인들에게 링컨은 신화적 인물일 수 밖에 없다.

기사 등록일: 20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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