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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봄이 오는 길목에서_오충근의 기자수첩
 
어느 새 2019년 한 달이 지났다. 그냥 지나간 게 아니라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 2월과 함께 추위가 찾아왔다. 영하 30도, 이번 겨울이 춥지 않고 영상의 날씨가 계속되다 보니 우리는 혹한의 땅에서 추위를 잊어버리고 살았다. 이번 겨울뿐 아니라 몇 년 째 겨울이 따뜻했다. 그래서 영하 30도가 굉장히 춥게 느껴지는데 기후가 건조한 앨버타에서 영하 30도는 별게 아니다.
12월에 이렇게 춥고 눈이 내렸으면 크리스마스 기분도 더 나고 겨울을 즐길 여유도 더 있고 혹한의 땅에 살고 있다는 걸 실감했을 텐데 2월에 추우니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이다. 절기상으로 볼 때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이 2월4일이고 2월5일이 설날이다. 2월2일은 Ground Hog Day로 봄이 일찍 올 것인가 6주를 더 기다려야 할 것인가를 영명한 설치류가 예고하는 날이다.
봄의 문턱에 서서 목을 길게 빼고 봄을 기다리고 있는데 영하 30도라니. 하기야 우리 속담에도 ‘입춘 추위에 김치 독 깨진다’라고 했다. 전에는 김장을 하면 마당을 파고 김장 독을 묻었는데 늦추위에 김장독이 얼어 깨진다는 소리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2월은 1월, 12월에 이어3번째로 추운 달이니 2월 추위도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기록에 의하면 가장 추웠던 2월은 2010년2월18일로 에드몬튼 기온이 영하 46도, 체감온도 영하 59도를 기록했다. 참고로 에드몬튼이 가장 추웠던 기록은 2009년 12월13일로 영하 46.1도였다.
2월에는 우수도 있다. 입춘 지나고 보름 후가 우수니까 2월19일 무렵이다. 우수(雨水)는 눈이 비가 되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된다는 뜻이니 날씨가 풀려 봄기운이 도는 절기다.

봄은 혁명의 계절, 변화의 계절이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 고향이 김포라 어릴 때 김포에 간 적이 많다. 김포에는 큰 아버지가 사셨는데 봄 기운이 돌면 소에 쟁기를 지우고 밭을 갈아 엎으셨다. 그 때가 2월은 아니고 3월 4월이겠지만 겨울 내내 음기를 받아 굳어지고 뻣뻣한 땅을 갈아 엎으면 봄의 양기가 땅을 부드럽고 촉촉하게 만든다.
농부들이 밭을 갈아 엎어 씨를 뿌려 일년 농사를 시작하는 걸 사회적 현상으로 재해석하면 혁명이 된다. 구태의연한 모든 것을 갈아 엎고 변혁해 새로운 열매를 맺어 수확을 하는 것이다. 2월, 영하 30도의 2월이지만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며 음기로 뻣뻣하게 얼어붙은 땅을 갈아 엎는 농부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2월에는 이런 일들이

2월에는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공식 발표는 5일에 있을 예정인데 25일 전후로 베트남 다낭에서 열릴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정상회담에서 장소는 중요하다. 회담의 상징성이 장소에 부각되기 때문이다. 2차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는 종전선언과 비핵화가 될 것이다.
베트남을 정상회담 장소로 택한 이면에는 북한이 베트남식 개방을 따를 것이라는, 베트남과 같은 대미관계를 따를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1975년 4월30일 패전을 인정한 미국의 마지막 헬기가 사이공 미 대사관에서 이륙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95년 7월 베트남과 미국은 국교 정상화의 악수를 나누었다. 북한과 미국도 종전선언에 이어 국교 정상화의 악수를 나눌 날이 멀지 않았다.
베트남 통일을 지금도 월남 패망이라고 말하는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낡은 것이 아무리 버티고 발악을 해도 결국에는 새것을 이기지 못하는 게 진리다. 베트남 통일로 제국주의가 남긴 마지막 생채기가 사라졌다. 북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종전선언은 냉전이 남긴 마지막 생채기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곪고 아팠던 생채기에서 새살이 돋아 날 것이다.
종전선언은 해방 후 여태까지 음기와 귀기로 얼어붙은 북미관계를 갈아 엎어버리는 혁명적 사건이다. 땅을 갈아 엎는데 가장 중요한 도구는 보습이다. 큰 아버지는 갈아 날이 파랗게 선 보습을 낀 쟁기를 소에 지우고 밭을 갈러 나가셨다.
언 땅을 갈아 엎는 농부의 심정으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쟁기를 잡고 소를 몰아 세계사의 한 장을 장식할 옥토를 가는 일이 성공적으로 끝나기를 기원한다. 예언자 미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가서 4장3절)

2월에는 에드몬튼 한인회 총회가 열린다.

북미회담 같은 민족적, 세계사적 사건이 중요하지만 내가 발을 딛고 사는 에드몬튼에서 벌어지는 일도 중요하다. 에드몬튼 한인회에서는 2월23일 총회를 연다.
에드몬튼 한인회(이하 한인회)는 지난 10년간 비상식, 회칙 무시, 회장의 독단 전횡, 불법 부정, 무책임이 산처럼 쌓여온 단체다. 지난 연말 선거에서 회장이 바뀌었는데 한인회 같은 작은 단체는 누가 회장이 되느냐에 따라 단체 위상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많은 한인들이 한인회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 회장은 한인회 공금 갖고 장난칠 사람은 아니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재정문제만큼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만인이 납득하게 처리할 것이다. 그러나 재정문제는 시스템으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처리되어야지 회장 개인의 품성이나 도덕성에 좌우 되어서는 안 된다.
재정문제가 시스템화 되어 누가 회장이 되던 공정하고 투명하게 집행되려면 한인회를 둘러쌓고 있는 사악하고 음험한 분위기, 음기가 겹겹으로 쌓여 자양분을 잃고 굳어진 한인회를 갈아 엎고 농부의 심정이 되어 새로운 씨앗을 뿌려야 한다.
한인회는 새로운 회장뿐 아니라 새로운 인물들, 즉 젊은 피가 필요하다. 한인회와 한인단체에 똬리 틀고 앉아 AGLC에서 나오는 돈 착복하는 부정행위를 한인사회를 위한 봉사로 착각하고 있는 구태의연한 인물들은 이제 뒤로 물러설 때가 되었고 이번 총회에는 젊고 참신한 인물들이 많이 참석해 한인회에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

2월, 앨버타 블랙 히스토리

2월은 Black history month다. 앨버타는 2017년 레이첼 노틀리 주 수상이 공식적으로 2월을 Black history month로 선포해 온타리오, B.C. 퀘벡의 뒤를 따랐다. 연방정부는 1995년 Black history month를 선포했다.
직역하면 ‘흑 역사의 달’인데 흑 역사란 자랑스럽지 않고 떳떳하지 않아 감추고 싶은 어두운 역사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런 의미도 없지 않아 있기는 있지만 그런 의미 보다는 흑인들, 아프리카나 카리브 해 연안에서 이주해온 흑인들이 캐나다 발전을 위해 희생하고 기여한 것을 인정하고 되새겨보는 달이니 “흑인의 달” 혹은 “흑인 역사의 달”에 해당된다.
말이란 게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달라져서 요즘에는 피부 색깔로 사람을 말하지 않고 지역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황인종이 아니라 동양인, 백인이 아니라 유럽인 혹은 코카시언, 흑인이 아니라 아프리칸 혹은 캐리비언이라고 부르는데 이 글에서는 ‘흑인’이라고 쓴다. 그러나 피부 색깔로 특정인종을 비하하는 의미는 아니다.
Black history month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노예의 아들로 태어난 카터 우드슨(Carter Woodson)은 아프리카-아메리칸 역사학자로 미국의 흑인 역사를 최초로 연구해 Negro History Week를 처음 시작했다. Negro History Week는 1976년 Black History Month로 확대되었다. 흑인을 비하하는 니그로라는 단어는 금기어지만 당시에는 일상적으로 쓰인 단어다.
우드슨은 미국 흑인 역사에 중요한 인물 2명의 생일이 2월임을 들어 Black History Month를 2월로 정했다. 프레드릭 더글라스는 탈출 노예로 노예해방과 민권운동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는 생일조차 불분명했으나 2월14일을 생일로 삼았다. 노예제도를 폐지한 링컨 대통령의 생일이 2월12일이다. 그래서 캐나다와 미국은 2월을 Black history month로 기념하나 영국, 아일랜드, 네덜란드는 10월을 Black history month로 기념한다.
캐나다 흑인들은 미국 흑인들처럼 조상이 노예로 팔려 오지는 않았으나 노예의 후손들이 자유를 찾아 북녘 땅으로 들어 왔다. 1800년대 중 후반 Brooks 부근에 정착한 일단의 흑인들이 앨버타 최초의 흑인들로 알려졌다.
이들은 혹독하고 척박한 앨버타 겨울과 더불어 인종주의자 K.K.K.의 박해를 피하며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2016년 통계에 의하면 앨버타에는 129,395명의 흑인이 거주해 전체 인구의 3.3%를 차지했다. 흑인들의 최초 정착지 중에 하나인 Brooks는 총 인구의 8.9%가 흑인이다.

기사 등록일: 2019-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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