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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독립선언 100주년 _ 오충근의 기자수첩
 
백 년을 넘어서

대학교 때 ‘백 년의 고독’이란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책의 내용은 물론 저자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책을 읽었다는 기억은 난다. 100 (百)은 셀 수 없이 많은 걸 의미한다. 백성(百姓)은 문자 그대로 100가지 성, 즉 나라의 근본을 이루는 수 많은 일반 대중을 말한다.
여기에 만이 붙어 만백성이 되면 더 큰 규모의 대중을 말한다. 예수나 부처 정도는 되어야 만백성이 우러러 본다. 전에는 큰 부자를 백만장자라고 불렀다. 지금은 천만 장자 억만장자로 단위가 올라갔지만.
그래서 백 년이면 꽤 긴 세월인 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백 년이 생각보다 긴 세월은 아니었다. 영화나 소설 속의 일차대전, 일차대전 발발 100주년이 몇 년 전 지났고 작년에 일차대전 종전 100주년 행사가 있었다. 앞으로 해방 100주년, 6.25동란 100주년, 베트남 통일 100주년도 오겠지만 그때 나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 되는 해이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되는 해다. 또한 2월은 독립선언 100주년 되는 해다. 모르고 지났으니 무식이 죄다.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부터 무지와 무식을 인정해야 한다. 2.1 독립선언, 2.8 독립선언은 3.1운동, 임시정부 수립의 밑거름이 된 민족사적 독립운동이다.


대한독립선언서

대한독립선언서는 무오독립선언서라고 하는데 1919년 2월1일 만주 길림에서 발표되어 2.1 독립선언이라고도 한다. 발표문에는 39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서명을 했는데 만주, 연해주, 중국, 미국에서 실제로 조국 독립을 위해 활동한 선열들이다. 그 해 2월1일은 음력 정월 초하루로 설날이었다. 상서로운 기미년 설날 대한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는데 왜 무오독립선언서라고 할까?
음력 기준으로 기미년 정월 초하루에 발표 되었으나 선언문 작성이나 준비는 그 전부터 즉 무오년에 시작되었다. 그래서 3.1절에 발표된 기미독립선언과 구별해 무오독립선언이라고 한다.
선언서를 작성은 조소앙 선생이 맡았다. 선생의 나이 32세로 팔팔한 나이였다. 나라 빼앗긴지 9년만에 대한독립선언서가 작성되었으니 그때부터 우리의 가슴 속에 ‘대한’이 있었지 1948년 8월15일에 대한이 태어난 게 아니다. 서명한 39명의 독립지사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공화주의자가 30명으로 압도적 숫자를 차지해 대한독립은 곧 공화국으로 독립 될 것을 시사했다. 이미 100년전 독립선열들은 대한민국은 공화국이라는 국체를 가슴에 안고 있었다.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9의 독립선열들은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기미독립선언에 참여한 33인 중에는 변절자가 줄줄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으나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9명 중에는 민족을 배반하고 일제의 주구가 된 더러운 변절자는 단 한 명이다.
자료에 따르면 기미독립선언에 참가한 민족대표 33인 중 해방 후까지 생존한 사람이 절반이 넘는데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9명 중 해방 후까지 생존한 사람은 11명이다. 평균연령이 5세나 낮으면서도 생존자가 적다는 사실에서 이 분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독립운동에 헌신했는지 알 수 있다.
대한독립선언서는 “우리 대한은 완전한 자주독립과 신성한 평등복리로 우리 자손에 대대로 전하기 위하여”로 시작하여 “육탄혈전으로 독립을 완성할지어다.”로 끝을 맺는다. 독립선언서는 일본을 하늘을 거역하는 악마로 표현하고 집안이 기울어도 나라를 찾으면 삼천리 옥토가 우리의 소유가 되니 일가를 희생해서라도 나라 찾을 것을 촉구하고 있다.
대한독립선언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상대적으로 자료가 미비한 이유 중에 하나는 서명에 참여한 39명의 대부분이 의병활동이나 무장투쟁을 중심으로 독립을 쟁취하려 했는데 우리 독립운동사에서는 무장투쟁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근대국가로 발돋움한 일본과 군사력의 차이로 낮은 평가를 받기도 있지만 그보다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때문에 의도적으로 무장투쟁을 낮게 평가한다. 그러나 신성한 조국독립투쟁에 우파 좌파 따지고 공산주의 자본주의 따지는 것은 민족 분열 행위이고 독립운동을 폄하하려는 친일파들의 농간에 놀아나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2.8 독립선언

2월8일 동경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30년만에 폭설이 쏟아졌다. 오후 2시부터 동경 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조선 유학생 학우회 총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젊은 유학생들은 긴장된 결의에 가득한 표정으로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이들은 총회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경찰, 형사들도 긴장된 표정으로 동태를 살폈다.
총회는 조선독립 청년단의 ‘독립선언식’으로 바뀌었다. 600명으로 가득 찬 강당에서 백관수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김도연이 열띤 목소리로 결의문을 외쳤다. 장내는 독립만세와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11명이 서명한 독립선언서는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100년전 2월8일 동경에서 유학생들이 선포한 2.8 독립선언의 시작이다. 선언문 작성은 조소앙 선생 지도로 이광수가 썼다고 전한다. 무오독립선언서 발표 후 조소앙 선생은 적의 심장부 동경에 나타나 유학생들의 독립선언을 지도한 것이다.
선언문에는 독립의 당위성이 명확하게 나타났으며 일본의 침략을 국내문제에 국한시키지 않고 동양의 평화를 해친다고 규정했다. 일본은 동양 평화를 해치다 1945년 패전했으니 선열들의 혜안이 놀랍다. 선언문은 최후의 일인까지 일본과 싸울 것이며 영원한 혈전에 임할 것을 선포하며 끝을 맺는다.
대한독립선언서(2.1독립선언), 2.8 독립선언, 3.1 독립운동,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독립운동은 1차대전 말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민족자결주의란 패전국 영토정리, 식민지 정리 일환에 이용된 사기행각이었으나 이에 고무된 식민지 독립운동가들은 파리강화회의에서 독립을 호소할 생각이었다.
베트남 독립의 아버지 호치민(호지명)도 파리강화회의에 왔으나 문전에서 쫓겨났다. 상해에서 결성된 신한청년당(당 대표 여운형)은 김규식 선생을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로 파견했다. 김규식 선생은 15세에 서재필의 권고로 미국에 유학, 로노크 대학을 졸업 후 프린스톤 대학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어학의 천재로 한국어, 영어, 일어, 불어, 중국어, 독어, 러시아어, 심지어 산스크리트어까지 능통하게 구사했다고 한다. 중국의 수많은 방언을 뛰어난 한자실력으로 어려움 없이 이해했다고 전해진다.
김규식 선생은 결혼 10일만에 상해에서 파리로 떠났다. 그러나 약소국 독립운동가들은 파리강화회의에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선생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크게 공감했으나 돌아온 것은 실망과 좌절이었다. 선생은 나중에 ‘아시아 혁명운동과 제국주의’에서 민주주의의 전 세계적 범용을 주장하던 미국조차 악명 높은3대 흡혈귀 국가 영국, 프랑스, 일본과 협정을 체결해 가면을 벗었다’고 비판했다.


100년이 지났는데

서울, 만주,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등 각지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른지 100년이 지났다. 100년이 지났는데 독립은커녕 남북이 분단되어 있다. 독립은 말뿐이고 일제 때 득세하던 친일세력들은 대를 이어가며 해방된 조국에서 정치, 경제, 사회, 사법, 관료조직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고 일본의 극우세력과 연합해 독립운동을 폄하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무시하며 일본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
군사독재와 야합한 친일세력은 민족화해와 통일을 훼방하며 냉전으로 얻어진 기득권 지키기에 몰두하고 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나라를 배반하고 민족을 배반한다. 그러면서 말로는 국민을 위해서라고 진실을 호도한다.
친일세력은 좀비와 같다. 조국 광복 후 가사상태에 빠졌으나 이승만의 주술로 살아났다. 사고력은 없으나 이익만 보면 꿈틀거리며 일어난다. 일본 극우세력에 아무 생각 없이 조종되어 대한민국 국익보다 일본의 국익을 위해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그런가 하면 느닷없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방황한다. 요즘에는 일장기도 들고 나타난다니 제 고향을 찾아가려나?
독립선언 100주년을 계기로 독립선열들의 가호로 좀비들을 제 고향으로 보내고 북미회담이 성사되어 분단의 아픔이 치유되고 민족이 하나가 되고 한반도에서 시작된 평화의 기운이 지구촌 방방곡곡에 퍼지기를 바란다.

기사 등록일: 2019-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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