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안내   종이신문보기   업소록   로그인 |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홍콩 시위에 침묵하는 캐나다_ 오충근의 기자수첩
 
막아도 막을 수 없는 홍콩 시위

홍콩 입법회(국회에 해당된다)의 범죄인 본토 송환법 심사에 반발해 시작된 홍콩 시위는 3개월이 다 되어도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는다. 6월9일 시작된 시위는 9월1일에도 열렸다. 당국의 진압방식이 진압봉, 최루탄, 고무탄을 사용하며 강경해지자 시위대 대응방식도 화염병이 등장하며 수위가 높아졌다. 당국은 집회 사전허가제를 실시했다.
종교행사는 사전신고 없이 열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 9워1일 시위는 기도회로 시작했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이날 시위는 12시간 계속되었다. 이날도 평화롭게 진행되던 시위는 진압경찰이 등장하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최루탄이 발사되고 시위대는 화염병으로 응수했다. 시내 곳곳에서 시위대와 진압경찰 사이에 쫓고 쫓기는 광경이 벌어졌다.
시위의 원인이 된 범죄인 본토 송환법 심사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으나 시위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왜 그럴까? 홍콩과 중국의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자면 남경조약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 물론 홍콩은 중국의 일부다.


영국과 중국의 차 무역

나폴레옹이 ‘중국은 잠자는 사자다’라고 말을 했다는데 사실 여부는 모르겠고 시장확보가 절실했던 서구 열강들이 청 나라(이하 중국)를 건드려보니 잠자는 사자가 아니라 병들어 골골하는 고양이였다. 완곡한 표현으로 ‘시장확보’이지 실상은 식민지 확보인데 19세기 당시 영국과 중국의 시장관계를 살펴보자.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차를 수입했다. 유럽에서 선풍적 인기를 누린 차(Tea)는 동양의 많은 나라들이 서구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중국은 영국에서 모직물과 면화를 수입했다. 면화는 영국 식민지 인도에서 생산된 것이다. 두 나라의 무역결제 수단은 은이었다. 그런데 단위당 가격이 차가 훨씬 비싸 영국은 늘 ‘무역적자’에 시달렸다. 트럼프가 중국에 대고 투덜거리는 바로 그 불평이다.
차 값이 한창 비쌀 때는 차 1그램이 금 1그램과 동일하게 거래된 적도 있을 만큼 고가에 거래되었다. 차 수입이 늘어나며 거래단위는 은으로 바뀌었으나 중국은 영국의 은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 이었다. 차 무역을 독점한 동인도회사 적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았고 영국 정부는 적자 해결 하려고 식민지 미국에 차를 수출하며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는데 보스톤 차 사건으로 미국 독립에 불을 지피는 결과를 가져올 만큼 차는 세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남경조약과 홍콩 할양

영국은 막대한 무역적자를 해결하려고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에 수출했다. 아편 수출이 부도덕하다는 사실은 영국 정부도 알고 있었다. 영국은 무역량이 공정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려 중국이 차 1톤을 수출하면 아편 1톤을 중국에 팔았다. 아편은 급속도로 중국에 퍼져 나가 무역적자 해결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아편이 중국 민중의 정신과 육체를 좀 먹고 큰 사회문제가 되자 중국 왕실은 아편 수입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아편 무역상과 결탁한 부패한 관리들을 통해 밀무역으로 아편이 유통되었다.
조정에서는 임칙서를 파견해 아편 밀무역 단속을 했다. 광주(광저우)에서 임칙서는 아편을 압수해 폐기 처분했다.
임칙서의 아편 압수 폐기를 계기로 영국은 전쟁을 선포했다. 이것을 1차 아편전쟁이라 한다. 제해권을 장악한 영국은 양자강 유역 요충지를 차례로 점령하며 내륙으로 진군했다. 영국의 동양함대는 천진에 나타났다. 중국 왕실은 임칙서를 해임하고 영국과 남경에서 조약을 맺었다. 조약에는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고 5개 항구를 개항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남경조약은 중국 근 현대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다. 관세는 수입국에서 정하게 되어 있는데 아편전쟁으로 개항한 5개 항에서는 중국과 영국이 합의해 관세를 책정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영국이 관세를 정했다. 그러니까 요즘 말로 ‘관세 주권’을 잃어버린 거다. 그래도 중국 왕실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편전쟁 동안 영국군은 홍콩을 점령했는데 홍콩을 영구 할양했다. 홍콩은 영국의 해외영토가 되었다. 2차 아편전쟁으로 북경조약에 의해 영국은 구룡반도를 영구 할양 받았다. 구룡반도를 영구할양 받으며 구룡반도 북쪽과 인근의 섬들을 99년동안 조차했다. 조차 지역을 신계(New Territory)라고 부른다. 홍콩과 구룡반도는 영구할양 했으니 영국이 돌려줄 필요가 없으나 신계는 99년 조차로 기한이 차면 돌려주어야 한다.
영국은 홍콩을 자유무역항으로 개방해 홍콩은 영국 제품이 동양 수출의 거점이 되었다. 홍콩에는 영국 문물이 들어오고 주민들의 생활도 영국화되었다. 영국식 민주주의와 교육 시스템이 도입되고 동양의 영국 해외 영토 중 빅토리아 문화가 가장 발달한 지역이 되었다.


홍콩 반환, 그 이후

1984년 영국과 중국은 공동협정을 체결해 영구 할양 받은 홍콩 일대를 중국에 반환하기로 약속했다. 반환 날자는 1997년 6월30일이었다. 영국은 공동협정에서 신계 조차를 2012년까지 연장하려 했으나 중국은 단호하게 반대했다. 홍콩의 배후시설은 모두 신계에 있으므로 신계를 돌려준다면 홍콩과 구룡반도는 영국에게 의미가 없다.
아편전쟁 때와 달리 중국의 국력이 신장해 영국과 협정에서 중국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니 국제관계는 ‘정의’ 보다 ‘힘’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협정 체결의 주인공 등소평은 홍콩 반환을 못 본 채 97년 2월 세상을 떠났으나 대처 수상은 반환식에 참석해 홍콩을 중국으로 인계하는 장면을 직접 보았다.
홍콩 반환을 앞두고 많은 홍콩 인들이 영국이나 영국령으로 떠났다. 캐나다에도 홍콩 인들이 몰려들었다. 홍콩인들은 밴쿠버로 대거 몰려들어 밴쿠버는 한 때 홍쿠버라고 불렀고 밴쿠버 주택 시장이 그때부터 몸살을 앓았다. 등소평은 일국양제(한 나라에 두 체제)를 약속해 홍콩은 최소 50년 간 영국식 법과 시스템을 유지하는 특별행정구가 된다고 공언했으나 대다수의 홍콩인들은 공산당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홍콩을 떠났고 떠날 수 없는 사람들만 홍콩에 남았다.
홍콩인들의 일국양제에 대한 불신은 천안문 사태를 목도하며 더욱 짙어졌다. 중국이 일국양제를 어기면 영국은 전쟁도 불사한다고 했으나 홍콩인들은 조약의 실효성을 의심했다. 홍콩이 중국 영토로 귀속되자 본토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홍콩으로 몰려들었다. 본토의 부자들도 펀법으로 홍콩 시민권을 취득하려고 몰려들어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주택난과 물가 폭등을 부채질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 공산당의 홍콩 간섭은 더욱 심해져 표현의 자유가 후퇴했고 언론인이나 지식인들이 본토 정책을 비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고문 당하고 돌아와 입을 다무는 사례가 늘어는 등 자유 탄압이 심해졌다.
본토 공산당의 탄압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홍콩인들의 의지가 범죄인 본토 송환법 발의를 계기로 대규모 시위로 표출 되었다. 또한 7년 째 권력을 공고히 하며 내부 탄압을 가속화 하고 대외적으로는 호전적 제국주의 성향을 나타내는 시진핑 국가주석에 대한 도전이다.


캐나다여 “침묵은 금이 아니다.”

홍콩에는 최소 30만명의 캐나다인이 있고 150만명의 중국계 이민자가 있다. 그러나 캐나다는 공식적으로 홍콩 사태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화웨이 재정 총 책임자 맹 완저우의 밴쿠버 억류에 대한 보복으로 체포되어 억류중인 자국민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다. 캐나다의 침묵이 중국을 더욱 대담하게 폭력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2009년-2012년까지 중국 주재 대사를 지낸 데비드 멀루니(David Mulroney)는 침묵이 가장 나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멀루니는 “때가 늦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외무장관과 총리의 의중을 알고 싶다. 무언가 행동하고 움직이는 것이 침묵보다 낫다”고 말했다.
멀루니 전 대사는 중국은 인질외교로 서방 사람들은 겁주고 위협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대가를 치르지 않고 목적달성 하기를 바라고 있다. 캐나다가 침묵하고 유럽이 침묵하면 중국은 홍콩의 자유를 유린하고도 아주 쉽게 빠져 나올 것이다.”라고 서구세계의 침묵에 일침을 가했다.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이 홍콩 시위에 대해 ‘자제’하고 있다고 긍정적 평가를 했으며 홍콩 시위대를 ‘폭도’라고 표현해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언행과 달리 미 의회는 ‘홍콩의 인권 및 민주주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의 목적은 홍콩에서 자치권이 보장되고 인권이 지켜지는지 매년 평가해 미국이 홍콩에 부여하고 있는 특별대우를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한다. 미국은 홍콩에 대해 비자발급과 법 집행, 투자를 포함한 국내법을 적용할 때 중국과 달리 특별대우를 하고 있다.
또한 이 법안은 홍콩의 민주인사나 서점 주인들을 본토로 납치해 고문해 기본 자유를 유린한 사람들을 가려내 이들의 미국 여행을 금지하고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안은 미 하원이 여름 휴가를 끝내고 노동절 이후 개원하면 처리되는데 이 법안은 홍콩 민주화 운동이 진압될 경우 중국은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미국과의 무역 관계에서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중국 정부에게 암시하고 있다. 캐나다도 중국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행동을 해야 한다.

기사 등록일: 2019-09-06
나도 한마디
 
최근 인기기사
  웨스트젯 캘거리-인천 직항 정부.. +1
  캘거리 집값 역대 최고로 상승 ..
  4월부터 오르는 최저임금, 6년..
  캐나다 임시 거주자 3년내 5%..
  헉! 우버 시간당 수익이 6.8..
  앨버타, 렌트 구하기 너무 어렵..
  캐나다 이민자 80%, “살기에..
  앨버타 데이케어 비용 하루 15..
  캐나다 영주권자, 시민권 취득 .. +1
  주유소, 충격에 대비하라 - 앨..
댓글 달린 뉴스
  넨시, “연방 NDP와 결별, .. +1
  재외동포청, 재외공관서 동포 청.. +1
  CN드림 - 캐나다 한인언론사 .. +2
  (종합)모스크바 공연장서 무차별.. +1
  캐나다 동부 여행-두 번째 일지.. +1
  캐나다 영주권자, 시민권 취득 .. +1
회사소개 | 광고 문의 | 독자투고/제보 | 서비스약관 | 고객센터 | 공지사항 | 연락처 | 회원탈퇴
ⓒ 2015 CN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