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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충근의 기자수첩) 불모지에 핀 사회민주주의 꽃 - 다가온 총선거와 NDP
 
5월29일은 앨버타 총선거 날이다. 사전투표는23일(화요일) 부터 27일(토요일)까지다. 이번 선거에서는 UCP와 NDP가 87개 선거구 모두 후보 등록을 했다. 앨버타 녹색당은 41개 선거구에서 후보 등록을 했고 앨버타 당은 19개 선거구에서 자유당은 13개 선거구에서 후보 등록을 했다. 앨버타 공산당도 3군데 선거구에서 후보 등록을 했다.
338 캐나다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5월21일 현재 UCP가 48석 NDP가 39석 당선을 예상하고 있다. 다수당이 되려면 44석이 당선되어야 하는데 선거판을 뒤흔들 악재가 발생하지 않는다면UCP가 정권 재창출한 가능성이 상당이 높다. 이번 선거에 대해 CBC는 ‘가장 지루한 선거’ 라고 부르며 사회민주의 대 인기 영합 자유의지론자의 대결이라고 명명했다.

캐나다를 사회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캐나다 정치체제는 독재, 폭력적 급진적 혁명을 거부하고 자유 민주주의 수호, 자본주의 체제에서 소득 재분배, 복지정책, 노동친화적 정책을 구현하는 사회민주주의다. 연방 자유당은 여기에 자유주의 색채가 좀 더 가미되었고 NDP가 사회민주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정당으로 보수의 아성 앨버타에서 사회민주의 정당이 정권을 잡기도 했고 이번에 정권 재탈환에 도전한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앨버타 NDP 창당과 가시밭 길 역사
1961년에 연방 NDP가 창당되고 이듬해에는 앨버타 NDP(이하 NDP)가 창당되었다. 초대 당 대표는 닐 레이머(Neil Reimer)로 사스캐추원 출신의 노동운동가다. 그는 1950년 앨버타로 이주해 붐이 일고 있는 원유업계의 노동조합 설립을 주도했다. 타고난 노동운동가인 닐 레이머의 정력적 활동으로 1,000명도 안되던 노동조합원을 20,000명 이상으로 늘렸다.
1963년 당 대표로 선출된 그는 4%에 불과하던 지지율을 1963년 총선에서 9%로 올려 놓았고 1967년 총선에서는 지지율을 16%로 올려 놓았으나 주 의원에 단 한 명도 당선되지 못했다.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다면 주 의회에 의석을 배분 받았겠 지만 승자독식의 현행 비민주적 선거제도는 진정한 민의를 대변하지 못했다. NDP를 지지한 16%의 민의는 무시되었으니.
1968년 닐 레이머는 당 대표를 사임하고 본연의 직업인 노동운동가로 돌아갔다. 닐 레이머의 딸 잔 레이머(Jan Reimer)는 1989년부터 1995년까지 에드먼턴 시장을 역임하였으니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까?

NDP에서 최초로 주의회에 진출한 인물은 2대 당 대표에 선출된 그란트 노틀리(Grant Notley)로 1971년 총선에서 당선되었다. 창당 10년만에 첫 주의원을 배출했으니 앨버타에서 사회민주의 정당활동이 얼마나 가시밭 길의 연속인지 짐작할 수 있다.
1971년은 앨버타 정치사에서 주목할 만한 해다. 정권을 잡고 있던 사회신용당(Social Credit Party)이 인기를 잃고 진보 보수당(PC: Progressive Conservative Party)이 집권했다. 앨버타 자유당의 인기는 급속도로 식었다. 앨버타가 몹시도 싫어하는 피에르 트뤼도 총리의 연방 자유당과 연계된 앨버타 자유당이 혐오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앨버타 정치지형 변화도 NDP의 주의회 진출에 영향을 주었다. 정치지형 변화에 힘 입어 NDP 지지율은 10%를 넘겼으나 1982년 총선까지 단 한 석에 불과했다. 1982년 총선에서 레이 마틴(Ray Martin)이 당선되어 의석이 2석으로 늘어나 공식 야당이 되었고 지지율도 19%로 늘어났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할까? 1984년 그란트 노틀리 당 대표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레이 마틴이 당 대표가 되었고 그의 지휘 아래 1986 총선에서 주의원에 16석이 당선되는 쾌거를 이뤘다. 당원도 늘어나 5,000명 선에서 왔다 갔다 하던 당원이 20,0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1986 총선에서 PC는 피터 로히드 당 대표가 사임하고 돈 게티가 당 대표가 되었는데 그는 지지자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했다. 피터 로히드의 업적과 비교되어 가려진 면도 있을 것이다. 게티 정부는 집권에는 성공했으나 지지율도 의석수도 떨어졌고 반사이익을 NDP가 가져갔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이 NDP의 첫번째 성공 시대였다.
90년대 초, 다시 암흑기가 찾아왔다. 지지율은 반 토막 나고 고작 2석의 의석을 유지했다. 공식 야당 지위는 자유당에게 돌아갔고 3당, 4당으로 전락하며 겨우 명맥만 유지했다.
자유당과 연계하여 반 보수를 결성했으나 연일 화제를 몰고 다니는 랄프 클라인 주 수상의 좌충우돌 카리스마를 넘기에는 부족했다. 랄프 클라인은 대단한 포퓰리스트로 앨버타의 부채 제로를 선포하며 앨버타 주민들 남녀노소 모두에게 수표를 나눠줘 화제가 되었다. 그때 400 달러 수표 받았던 기억이 난다.

10년 이상 고난의 행군을 하며 존재감을 유지하던 NDP는 2004년 총선에서 브라이언 메이슨 당 대표 아래 4석이 당선되었다. 브라이언 메이슨은 버스 기사 출신으로 야당 대표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때 당을 상징하는 색깔이 오렌지색으로 바뀌었다.
2008년 총선은 NDP에게 의미 있는 선거였다. 의석은 다시 2석으로 줄었으나 레이첼 노틀리가 정치에 입문하여 주 의원에 처음 당선되었다. 레이첼 노틀리는 노동법 전문 변호사로 2대 당 대표를 지낸 그란트 노틀리의 딸로 앨버타 정치사 이래 최초로 집권에 성공했다.

앨버타의 선구자들
대공황의 파도가 북미를 덮쳤을 때 앨버타도 물결에 떠밀리며 신음을 했다. 극명하게 보여주는 자본주의 병폐 아래 일단의 사회주의자들이 고통받는 노동자, 농민, 질병에 시달리는 노년들과 빈곤층의 고통을 완화해주고 사회 경제적 이익을 대변해줄 정치 조직의 필요성을 통감했다.
이들은 1932년 캘거리에서 CCF(Co-operative Commonwealth Federation)라는 정당을 설립했다. 사회주의자, 노동자, 일부 UFA의 농민들이 참여했다.
캐나다 공공의료의 아버지 토미 더글라스는 사스캐추원 CCF 대표로서 1944년 주 총선에서 승리해 북미 최초로 사회민주의 정권이 탄생했다. 토미 더글라스는 사스캐추원 주 수상으로 재임하며 캐나다 최초로 주 전역에 무료 공공의료를 실시했다. 연방정부는 토미 더글라스의 공공의료를 도입해 캐나다 전역에서 무료 공공의료를 실시했다. 캐나다에서는 어느 누구도 돈이 없어서, 가난해서 병원을 못 가는 경우는 없다.
CCF는 연방정치에도 진출해 보수당, 자유당으로 양분된 연방정치에 3당으로 역할을 했다. 그러다 2차대전을 계기로 평화주의와 전쟁참여로 분열했다. 평화주의 보다는 전쟁참여 비율이 높았다. 2차대전이 끝나고 동서 냉전이 시작되자 CCF는 공산주의라는 오해를 받았다. 연방 정치, 주 정치 모두 지지율도 떨어졌다.
당의 강령이 온건하게 바뀌었으나 여전히 지지율은 저조했다. 시민들에게 좀더 친숙하게 다가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이런 시대적 요구로 CCF는 해체되고 1961년 NDP라는 새로운 정당이 탄생해 CCF를 승계했다.

NDP의 집권
2015년 총선은 역사에 남을 선거였다. 앨버타에서 사회민주의 정당이 집권하는 기적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평생을 NDP후보에 투표했다는 어느 노인은 “언젠가는” 이라는 심정으로 계속 NDP 후보에게 투표해 왔으나 정말 집권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기적은 저절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2015년 총선을 앞두고 PC는 스스로 무너지고 있었다. 앨리슨 레드포드 당시 주 수상의 해외 출장 비리, 공금 유용 의혹 등 밀려드는 스캔들에 정신이 없었다. 5만 달러 때문에 레드포드는 주 수상을 사임했다. 그러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선출직 공무원으로서 신뢰를 잃었다는데 문제가 있다.
2009년 와일드 로즈 당 대표가 된 다니엘 스미스(현 UNP 당 대표)는 “우리도 집권할 수 있다.” 면서 몸집을 키워 나갔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레드포드 주 수상이 사임하고 짐 프렌티스가 당 대표가 되자 와일드 로즈 당 대표 다니엘 스미스가 소속 의원 8명을 이끌고 집단 탈당해 PC로 당적을 바꾸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다니엘 스미스의 집단 탈당 명분은 뚜렷했다. “짐 프렌티스 주 수상의 영도력 아래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와 원칙을 재조명 해 앨버타를 이끌어 나간다.” 그러나 이것은 유권자와 와일드 로즈에 대한 배신으로 정치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PC는 몰락했고 짐 프렌티스는 당 대표를 사임했다. 다니엘 스미스의 정치생명도 덩달아 끝났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정치 관측통들 조차도. 그리고 포퓰리스트 리버테리언(Populist Libertarian)은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돌아갔다.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돌아온 다니엘 스미스는 “공공병원 팔아 치우고 사설병원으로 대치해야 한다. 영리병원이 세워져야 의료 서비스가 좋아진다.”고 주장했다.
코로나에 대처를 잘못해 지지율이 하락해 제이슨 케니 UCP 당 대표가 사임하자 다니엘 스미스는 불사조처럼 부활해 UCP 당대표로 정치일선에 복귀하더니 주 수상이 되었다.
이념의 시대는 지났다. 사회주의도 자본주의 장점을 받아들여 유권자들에게 다가서고 자본주의도 사회주의 좋은 점을 받아들여 변화를 시도한다. 이념보다는 서민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치가 필요한 시대다.
이번 총선은 간단하다. 파이 키우기, 번영, 낮은 소득세를 원한다면 UCP를 복지, 건강한 공공의료, 노동 가치와 더 나은 교육을 원한다면 NDP를 택하면 된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시민들로부터 나오고 시민들은 선거에 참여함으로써 권력을 행사한다. (오충근 기자)





기사 등록일: 202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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