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헌법은 단순히 법률적인 것이 아니라 그 근본정신은 이른바 한민족과 영토라는 두개의 축으로 해서 형성된 문화적 역사적 전통이 구현된 것이라 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大韓民國憲法前文)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한국위키피디아에 의하면, "대한민국 헌법 전문(大韓民國憲法前文)은 대한민국 헌법의 조문 앞에 있는 공포문(公布文)이다. 헌법 제정의 역사적 과정, 목적, 헌법 제정권자, 헌법의 지도 이념이나 원리 등을 규정하고 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위의 짧은 전문에서 보면, 우리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글은 바로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가 전부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장대한 역사와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그리고 "4·19민주이념을 계승"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한국인으로 집단적으로 자각한 것은 3·1운
동이며, 이러한 3·1운동이 조직적인 형태를 띤 것이 임시정부이며, 민주주의 정신이 제대로 계승된 것이 바로
4·19 혁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전통을 1948년 건국으로 축소시켰고, 이러한 전 명박산성성주의 주장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삼일정신과 임시정부 이 두 말을 강조하게 되면 철저한 반공주의지였고 이른바 건국 초대대통령인 이승만이 민족영웅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철저한 일본인(그냥 친일분자가 아님)이었던 박정희란 자가 해체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는 헌법전문에 나타난 419정신을 뭉게버린 자일뿐 아니라 투표에 의해 정권교체를 한다는 문명사회의 민주적 원리를 망가뜨린 자입니다.
이렇다보니, 이승만과 박정희를 구출하기 위해서 반민족적 반민주적 범생이들은 친일적 전통과 반공이념으로 재무장하여 건국을 강조할 수 밖에 없고, 친일적 범죄를 희석화시키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교학사의 국사교과서가 바로 그런 덜떨어진 자들의 대표적인 형태죠.
이승만이 김구선생의 빛나는 독립운동의 역정(歷程)에 대해서 끊임없이 열등의식을 가졌듯이,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가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광복군이 되었던 장준하 선생에게 열등감에 사로잡혔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삼일정신과 독립운동전신을 잃고 건국을 외치는 람들이 한국 사회의 주류를 이룬다면, 당연히 교학사의 국사교과서 채택이 주류를 이룰테고, 일본의 극우 친한파들과 한국의 뉴라이트들이 서로 친하게 되는 사회가 올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는 것도 항상 있는 그대로 놓여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보는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구성(historical construction)에서 그 중요성이 어떻게 선택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이에게는 김구선생을 살해한 안두희가 "안두희 의사"로 둔갑하게 되는 것이죠. 반면에 김구선생은 뽈갱이가 되구요. 그들에게는 김구선생이 서거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두희가 김구를 제거한 것이 중요한 것이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건국"에 두느냐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전승에 두느냐, 단 이 한마디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보세여. 앞으로도 씽만리와 다카키 마사오를 숭배하면 할수록 대한민국의 헌법 전문의 삼일정신과 상해임시정부의 가치는 축소되고 뽈갱이로부터 구출하고 보릿고개를 넘겨준 씽만리와 다카키 마사오를 위한 건국으로 부활할 겁니다.
역사투쟁은 항상 기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삼일정신과 상해임시정부에 두느냐 건국에 두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방식도 달라집니다. 그 한 예가 바로 반공주의자며 목사 서세원 개그맨에게서 보게 됩니다.
역사가 E. H. Carr는 그의 선배 역사가 Croce의 말을 인용해서 "All history is 'contemporary history'"라고 했지만, 사실 우리는 이런 과거에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이 현재에 부활될 뿐만 아니라 그런 과거가 연속으로 경험되는 되는 그런 시점에 살고 있습니다. "건국" 한마디에 이익을 보는 자들이 판을 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죠. 그들이 우리의 현재사를 계속 진행형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져.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를 공부해야 하지만, 이런 역사의 반동들의 mindset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는 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to write history is the only way of making it." 역사를 쓰는 것이 바로 역사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교학사의 국사교과서는 바로 자신들의 친일적, 반공적, 독재적 역사를 공고히 하기 위한 역사만들기의 작업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막았지만, 김무성같은 찌라시가 여전히 역사앞에 서있는 아이러니를 경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