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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땅에 뿌리를 내리며 (열번째)
1975년 8월

그렇게 바라던 학교를 졸업했는데, 직장잡을 일이 묘연했다. 도무지 사람을 구하는데가 없었다. 함께 졸업한 카나디안 친구들도 직장을 잡은 사람이 손꼽을 정도니…. 아직 의사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나같은 건…..
‘다시 병원에 돌아가서 일을 해?’
‘그래도 공부한게 아깝잖아!’
예전에 보지 못한 불황이라고 난리다. 학교를 졸업하면 모두 다 잘 될줄 알았는데…..

날씨는 푹푹찌는데, 구둘장을 지고 빈둥거리는 내가 한심했다. 집에 있는게 너무 지겨워서, 도서관에 가기로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신문을 철해 놓은 곳에 가서 신문을 빼들었다. 일 주일치 신문이 두개의 막대기 사이에 철해져 있었다. 뒤에서 부터 직업 광고난을 훓터 내려갔다. 역시 구인광고는 별로 없었고, 더우기 화학계통의 직업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에이구~ 집어치우자!’
신문을 막 접을려고 하는데, 한쪽 귀퉁이에 유기화학 (Organic Chemistry)를 한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미시사가에 있는 연구소에서 낸 광고였다. 회사 이름도 거창하고 유기화학을 한 사람을 찾는다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했을까?

신문 날자를 보니, 이미 일 주일이 지난 신문이였다. 오늘 이력서를 준비해서 보낸다해도 3-4일은 걸릴거고….. 어쩌면 이미 서류접수를 마감했는지도 모르지…. 집에 돌아와서 부지런히 이력서를 준비했다.
‘에~라, 밑져야 본전인데…..”
이력서를 우체통에 넣었다.


1975년 9월

아무리 기디려도 소식이 없어서, ‘이젠 잊어버리자.’ 라고 생각했는데, 인터뷰를 하자는 통지가 왔다.
‘어떻게 됐길래, 한 달이 다 돼서 통지가 오는거야!’
‘이게 무슨 징조일까? 좋은건가? 나쁜건가?’
그나마 인터뷰 통지를 받았다는 것만 해도 고마울뿐이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접견실에 앉아 있었다. 웬 사람이 들어오더니 자기를 소개했다. 아주 날카롭고 똑소리 나는 인상이었다. 다른 인터뷰에서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할려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천천이 질문을 했는데, 생긴 것하고 똑같이 행동했다. 날더러 따라오란다. 딴방으로 자리를 옮겻다. 그 곳에는 칠판이 있었다. 아주 단도직입적이었다.

칠판에다 화학 반응을 쓰기 시작했다.
“이 화학 반응에서는 어떤 물질이 생길 것 같으냐?” 부터 시작해서 열두어개의 질문을 총알처럼 쏘아댔다. 정말로 저 생긴대로 놀았다. 그런데 참 신기했다! 내가 아는 것만 물어 보는게 아닌가!!!

유기화학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과목이였고, 항상 반에서 일등 자리를 꿰어찼었다. 영어가 딸리니, 영어가 좀 덜 필요한 과목인 수학과 화학에 정이 더 간건 당연했다. 나중엔 면접하는 사람이 나를 물끄럼이 쳐다보았다.
‘세상에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하는 눈치였다. 처음에 대하던 태도와는 아주 달랐다. 인터뷰는 제대로 한것 같은 데….. 정말 직장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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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에 연락이 왔다.
“와~! 이번엔 왜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오는거야?” 회사로 들어오란다. 접견실에서 기다리니, 면접을 한 사람이 활짝 웃으면서 들어왔다.
“잘 있었습니까?”
“네, 잘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시 보게 돼서 반갑습니다.”
“저두요.”
“여기서 일하시겠습니까?”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물론입니다.”
“언제 부터 하실 수 있습니까?”
‘요거이 무스그 소리!’
“내일 당장이라도 할수 있습니다.”
“그래요? 잘 됐습니다.” 내 손을 덥썩 잡았다.

면접을 한 사람이 들려 주었다. 자기가 받은 이력서가 한 60여통이 되었고, 그 중에서 5명을 골라서 인터뷰를 했는데, 신통한 사람이 없었단다. 그래서 맨 마자막에 들어 온 이력서를 보고 큰 기대없이 인터뷰를 했는데, 나처럼 대답을 잘한 사람이 없었단다.
‘내가 아는 것만 물어 보니까 그랬지!’ 속으로 중얼거렸다.

모든 서류에 sign했다.
“야~! 이젠 정말로 직장을 잡았구나!”
털털거리는 1962년도형 Mustang를 타고 QEW를 달리면서 생각했다.
‘거~ 참 기회라는게 신기하네!’
‘그 날~, 그러니까 지겨워서 도서관에 갔던 날, 만약 도서관에 안 갔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그 사람은 어떻게 내가 아는 것만 물어 봤을까?’
‘허~! 거 참 신기하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내가 정말 직장을 잡았단 말이지!!!”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운영 선생님이 작곡한 노래였다.
콧노래가 목청을 돋구어 부르는 노래로 변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갑자기 목이 메이고 시야가 흐맀해지더니, 주루루~ 눈물이 흘러 내렸다.

기사 등록일: 2004-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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