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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_김대식 기자
오래 전 정동진에 들른 적이 있다. 해돋이로도 유명하니 올 새해 벽두에도 많이 붐볐을 것이다. 자그마한 시골 역사와 아주 가까운 곳에 펼쳐진 동해바다가 철썩이고 있었다.
모래 백사장 한 편에는 일명 고현정 소나무가 을씨년스럽게 겨울바람을 맞고 있었다. 드라마 ‘모래시계’와 함께 이름을 알린 촬영지다. 종영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지만 이미 상업화 개발 바람에 쓸려 드라마의 감흥도 낭만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모래시계’는 포장마차 마다 납치돼 방이 나 붙어 있었다. 최민수 핫도그, 박상원 핫바, 고현정 조개탕, 나부끼던 그 기억뿐이다. 남아 나는 게 없다. 다들 나빴다.
벌써 십여 년 전에 방영된 드라마니 기억이 새로울 것이다. 각기 다른 삶을 사는 태수, 우석, 혜린이 80년대 암울했던 시대를 통해 살아온 흔적을 담고 있다.
‘모래시계’는 바로 이들 삶을 통해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 정치적으로는 80년대 5.18 민주화 운동과 태어나선 안될 암울한 정권의 출범 등 역사적 사실과 궤를 같이 한다. 그것만으로도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검사 신분인 우석 앞에 친구이자 죄수로서 다가오는 태수의 그림자는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극에 달한다. 결국 처절했던 젊은이들의 여정은 태수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그랬었다.
드라마에는 “태수 앞에서 주먹 쓰냐?”는 당대 유행어를 낳으며 괜찮아 보이던 청년 최민수가, 어느 새 시집 갔다 온 고현정의 갔다 오기 전 앳된 모습이 있었다. 눈물로 사형을 구형하던 정의로운 검사 박상원도 그땐 식상하지 않았고, 또 얼음같이 차가운 원조 수호천사 이정재의 외사랑이 신선했다. 무엇보다 기억에 또렷한 것은 사형집행 직전, 형장에서 나눈 태수와 우석의 명대사일 것이다. “나 지금 떨고 있니?” 다들 떨었었다. “곧 끝날 거야.” 또 많이들 울었었다.

한 해를 마감할 무렵, 미국에서는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이 별세해 장엄한 국장이 치러졌고, 이라크에서는 후세인 전 대통령의 사형집행이 있었다. 사형이 확정된 지 나흘 만에 전격 교수형에 처해졌다. 수습된 시신은 그가 태어난 본향으로 돌아가, 오래 전 미군에 의해 살해된 두 아들의 무덤 가까운 곳에 눕혀졌다.
세계 통신사들이 내보낸 속보는 두 갈래로 나뉘어 졌다. ‘그의 얼굴에서 공포를 보았다’와 ‘죽음을 의연히 받아 들였다’. 입장이 달랐을 것이다. 첫 공식 화면에는 후세인이 두건 쓰기를 거부하며 순순히 목에 올가미를 받아쓰는 장면이 방영 되기도 했다. 그렇게 이라크 영욕의 군주이자 세 명의 미국 대통령에 맞서 오던 패장 후세인은 갔다.
사형은 죄값으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다. 죽여버리겠다는 법적 결정이다. 사람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담대할 수 있을 것인가? 80년에 사형을 구형 받았던 한국의 전직 대통령도 선고의 순간 최대한 당당하고 의연하려 했지만, 시선은 판결문을 읽는 판사의 입으로 가더란 후일담은 잘 알려진 일화다. 무기징역과 사형을 말할 때의 다른 입술 모양을 떠올려, 그 짧은 순간에 판사의 입이 앞으로 삐죽 나오길 간절히 바라게 되더라는 것이었다.

휴가 중이던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이 교수형에 처해지는 시간에, 다음 날 발표될 보도자료에 서명하고 잠을 청했다고 전한다.
공식 입장은 사형집행이 이라크인 스스로 행한 결정으로 그들과는 상관 없는 듯 말하고 있다. 이라크의 이라크에 의한 이라크를 위한 민주적 법 집행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정말이지 한참 비겁해 보인다. 더 큰 혼란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있지는 않은지도 걱정스럽다.
모래시계의 배경이 됐던 80년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사형집행이 알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처에서 수니파의 보복이 자행되고 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집행을 서두른 배후로는 부시의 새 이라크정책 사전 정지작업 설이 거론된다. 정설이 아니더라도, 그를 적의 손아귀에 넘겨주고 이상한 법정에 몰아세운 것은 부시정권 맞을 것이다.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신약시대 로마제국 유대총독 빌라도의 더러운 손이 떠오르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엎질러진 물에 아무리 손을 씻어봐도 피 냄새가 가시진 않을 것이다.
거기에 두 번째 동영상이 유포됐다. 한 교도관이 흔들리는 셀폰 카메라로 찍은 것이다. 무장해제된 적장을 향해 갖은 모독과 저주로 얼룩진 형장의 더럽고 치사한 모습이 공개됐다. 굴욕적인 동영상이 급속히 퍼지며, 사실 상 공개처형을 저지른 승자의 야만성에 분노와 비판이 일고 있다. 원한이 깊더라도 이래선 아니 된다. 유치하고 잔혹한 정치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부르는 젯밥일 뿐이다. 세계는 다시 크게 다른 입장 차이로 분열되어 있다

지금 한 인간의 개만도 못한 죽음을 생각해 본다. 독재자의 사형판결과 집행의 정당성과는 별도로 사형제도 자체에 대한 반대운동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 사형집행이 사실상 중단된 한국에서도, 사형수들과 함께하며 최후를 지켜 본 많은 교도관들은, 이구동성으로 인간적인 번뇌를 호소하고 있다.
모든 것 내려 놓은 빈 손으로, 가장 순수해진 순간에 누군가가 죽임을 당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증언하고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해선 안 된다는 원칙일 것이다.
사형은 전 세계 절반 넘는 국가에서 이미 구 시대의 유물로 사라져 가고 있다. 아직도 고집하는 나라로 미국, 일본 그리고 세계 최대 사형집행국 중국을 들 수 있다. 사형이 집행되는 미국의 주에서도 비인간적인 교수형은 물론 전기의자도 이미 금하고 있다. 얼마 전 제 나라 사형수에게 약물을 주입해 형을 집행 했지만, 목숨이 끊어지지 않고 바둥대자 허겁지겁 재차 약물을 주입한 정황이 외부로 알려져, 사형수를 고통 속에 숨지게 했다는 내부 비난여론에 시달리기도 했던 미국이다. 그들이 방조하고 끝내 침묵할 지 지켜볼 일이다.
올가미는 복날 개 목덜미에 들이 밀어도 비난 받아 마땅하다. 하물며 사람이다. 사람답게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 권한이 어디로부터 온 건지도 모르겠지만, 당장 사형제를 폐기하지 못할 이유가 분명하다면,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짓밟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다르다. 너무 많이 다르고, 아주 많이 나쁘다. 못 볼 걸 봤다. 새 아침이 밝았는데 웬걸, 목 둘레가 따갑고 간지럽다. 건조한 날씨 탓만은 아니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7년 1/5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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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7-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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