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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살다 간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 _ 오충근 에드몬톤 통신원
시에 통달한 이태백을 시선(詩仙)이라 한다. 그는 주선(酒仙)이라는 칭호도 갖고 있다. 술을 어떻게 마셔야 주선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인간으로 태어나 두 가지 부분에서 신선에 반열에 오른 유일한 인간이 이태백일 것이다. 바둑에는 기선(棋仙)이라고 한다. 초대 혼인보(本因坊)를 지낸 關山利一(세키야마 리이치)9단을 棋仙이라 한다. 오청원9단은 살아 있는 기성(棋聖)으로 추앙 받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초에 동해 쪽으로 여행 가서 일출을 보며 한 해를 시작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음악회로 한 해를 시작하는 것 같았다. 우연한 기회에 비엔나 필 하모니의 신년 연주회를 볼 수 있었다. 객원 지휘자를 초청해 신년 연주회를 갖는 게 관례라는데 그 해에는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신년 연주회 지휘를 했다. 첫 곡은 봄의 소리 왈츠, 마지막 곡은 라데츠키 행진곡인데 그것도 관례라 한다. 미소를 지어가면서 나비가 날아가는 듯한 유연한 동작으로 관현악단을 지휘해 나가는 걸 보며 신선이 따로 없다, 라는 걸 느꼈다. 그는 지휘자로서 신선에 반열에 올라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 음악의 문외한이라 해도 카라얀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클래식 음악 지휘자로서 독보적 존재이고 황제 같은 권위로 베르린 필 오케스트라를 30년 지휘한 클래식 음악계에 제왕 같은 존재이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카라얀 만큼 유명한 존재는 아니지만 실력만큼은 카라얀을 능가하는 지휘자이다. 1930년에 태어난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아버지는 에릭 클라이버로서 베를린 악단의 음악장을 지낸 독일 음악계의 거장이다. 에릭 클라이버는 히틀러의 나치에 반대해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5살 되던 해 아르헨티나로 망명했다. 아들의 이름도 독일 이름 칼을 스페인 이름 카를로스로 바꿔주었다. 그리고 음악공부를 시키지 않았다. 저주 받은 예술가의 삶을 아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2차대전이 끝나고 독일로 돌아왔으나 에릭 클라이버 시대는 이미 지났다. 취리히 공대에서 화학을 공부한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아버지 몰래 뮨헨 3류극장에서 음악견습생 생활로 음악을 시작해 1974년 세계적 명성을 획득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카라얀과 비교된다. 카라얀은 철저한 출세주의자로서 출세를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는 사람이다. 그는 1933년 나치에 입당 했는데 음악감독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나치 입당이 필수적이었다. 그는 나중에 그렇게 말했다. ‘그 때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나치 입당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이라도 나는 했을 것이다.’ 히틀러의 총애를 받으며 그는 승승장구 하며 독일 음악계를 휘어 잡았고 2차 대전 후에도 그는 2년 만에 복권되어 독일 음악계에 독보적 존재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히틀러를 피해 남미로 망명했던 에릭 클라이버나 히틀러 생일 전야제에 끌려가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지휘해야 했던 푸르트뱅글러는 히틀러 군악대장이 독일 음악계를 떠맡을 수는 없다 생각했으나 현실은 카라얀의 손을 들어 주었다. 돈 되는 일에 밝은 카라얀은 클래식 음악이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 레코딩과 상업성을 띈 연주회가 바로 그것으로 그는 부와 명성을 잡았다. 반면에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3류극장 견습생으로 시작해 명성을 얻은 후에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는 슈튜트 가르트 음악감독을 2년 지내고 그 후로는 무슨 감독이니 상임지휘자니 하는 걸 맡지 않았다. 카라얀이 베를린 필을 사임한 후 베를린 필은 예의를 갖춰 카를로스 클라이버에게 베를린 필을 맡아달라고 했으나 그는 거절했다. 그러나 그는 언제든지 자기가 연주하고 싶은 곡을 연주하고 싶은 곳에서 지휘하고 싶은 악단을 지휘해 연주했다. 그래서 카라얀은 그를 가리켜 ‘냉장고가 비어야만 지휘봉을 잡는 사람’ 이라 했고, 번 스타인은 그를 일러 ‘햇빛 가득한 정원에서 먹고 마시며 사랑하며 늙기를 원했던 사람’이라 했다. 카라얀과 달리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레코딩을 싫어했고 오로지 라이브만 고집했다. 단 한번의 연주로 끝나는 일회성의 엄숙함, 20세기 과학의 산물인 녹음시설, 조명시설을 갖추고 화려한 연출을 하는 카라얀과 달리 19세기 유럽 클래식 음악의 마지막 정통 지휘자가 되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도이치 그라마 폰(Deutsche Grammophon)에서 녹음한 그가 지휘한 곡이 몇 곡 있을 뿐이다. 박쥐, 마탄의 사수, 라 트라비아타 등 오페라 몇 곡 과 슈베르트, 베토벤, 브람스 교향곡 몇 편이 남아 있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은 대개 카라얀 이나 레오날드 번 스타인 걸 듣는데 카를로스 클라이버 나 푸르트뱅글러 걸 들어 보는 것도 좋다. 자유롭게 자유자재하게 살다 2004년에 죽은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죽은 지 2주 만에야 죽은 사실이 알려질 정도로 세상의 관심 받기 싫어하며 세상 밖에서 살다 갔다. 연말에 dvd를 한 개 샀다.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한 오페라 박쥐(Die Fledermaus). 작품 해설을 읽어보니 그 오페라를 유럽에서는 연말에 공연한다고 한다. 요한 스트라우스가 만든 박쥐는 12월31일에 생긴 불륜을 소재로 한 희극 오페라인데 화려한 왈츠가 장관이었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7년 1/12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6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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