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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엔 드림 _최우일 칼럼
 
'씨엔드림'의 일년도 채 안된 신문판 제 1호와 최근판을 비교하면 그 급속한 성장을 한 눈에 볼 수가 있습니다. 기사내용이나 다양성, 편집, 쪽수나 배포량만 하더라도, 편집인이자 발행인인 한 개인의 애쓴 흔적이 완연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듬뿍한 성취이면서 캘거리 교민들에게 긍지임을 우리 모두가 모른 체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 만큼에서 멈추어서는 또 안 되는 것이 바로 이 신문이라는 어려운 일입니다. 편집인의 의중을 알고 나면 '씨엔드림'의 앞날이 걱정이 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의 기사를 옮겨 싣고 광고로 재정원을 확보하는 것으로만은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한살짜리 격주간 신문을 놓고서 신문의 소임 운운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신문은 한 사회 내에서나 밖으로부터의 정보교환의 수단이 됩니다. 이 수단이 최대화 되도록 하기 위해서 신문은 권위를 가져야 하는데, 이 권위란 명성과 질을 갖춘 영향력입니다.
아무런 간섭 없고, 공개적이고 자율적이면서 한편 품격을 띄우면서 자유비판을 쓰고 사회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가지며 정치/국제/경제/사회복지/문화활동/교육등 다방면에 역점을 두어 수준 있는 기사를 편집해 놓을 수 있어야 신문이 권위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다져진 권위와 품질이라면 여론 형성과 운용에 손색 없이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우선, 신문은 소식입니다. 오래된 자료에 의하면 전세계 일간지만 해도 8000개가 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거기에 주간지나 조사에 바진 작은 지역사회 신문까지 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소식지가 있을 것입니다. '신문이 없었으면 범죄도 없다'는 말은 돌려가며 보고 얘기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사회가 얼마나 어두울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신문은 또한 광고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익을 챙기고 돈벌이로만 여긴다면 더는 할 말이 없지만, 권위 있는 신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내용, 사명감 그 이 전에 하나의 신문이란 사업으로 일구어 놓아야 합니다.
신문이 진정 신문이기 위해서는 신문 사업이어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광고는 사주에게는 사업을 꾸려나가는 재정원이 되고, 여타 사업가들에게는 상품의 정보를 독자들에게 알려서 생산과 소비를 연결지우는 몫을 합니다. 한가지, 수익 광고량이 지나치게 커지고 알맹이가 줄어드는 현상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신문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신문에게는 사회의 감응도 조사 기관으로서의 소임도 있습니다. 신문을 수용하는 독자들은 하나하나 흩어진 개인들이고 한 시민으로서는 이름이 작지만 이들이 모여 큰 대중이 됩니다. 이 대중이 신문의 표적이 되고, 이들의 동정을 살피는 의무 또한 신문의 몫이 됩니다.
그러나 나의 의견으로는, 그 이상의 그 무엇보다 중요한 한 의미를 신문과 떼어 버리고 볼 수가 없습니다. 특히나 해외 교민 사회의 신문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나는 소식도 아니고 광고도 될 수 없는 한 개인일 뿐이지만, 이런 나 같은 개체끼리의 상호교섭의 총체를 사회라고 한다면, 내가 빠진 사회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한 개인에게 잡담을 허락하며 사회 연결하는 자리를 마련할 줄 아는 편집인은 신문의 사회에 대한 의무를 잘 알고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작가나 성직자나 교민사회 운용자들이나, 양식 있는 이들이 나서서 삶의 가치를 일깨우고 정서를 앙양하는 데에도 대중 통신 매체로서의 신문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아울러 가정이나 학교나 교회나 종래의 체제가 미치지 못하는 또 다른 역할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큰 것입니다.
나는 지난 일년 여를, 당체 어림도 없는 위인이지만 '씨엔드림'의 한 지면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교섭을 하며 왔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노출되지 않을 때 더욱 솔직해 질 수도 담대해 질 수도 있는 법입니다. 탈 같은 것이야 훌훌 벗어 던져야 자유스러워 질 것 같지만, 실은 탈을 뒤집어 써서 해방을 느낄 수도 있다는 데 나는 동갑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내 이름을 밝히지 않았던 이유가 이것에 있었고, 또 다른 한 편에선 마구 들어 내놓는 노출증 환자들의 전시장에 나도 덩달아 따라 나설 수 없겠다는 것도 나의 뜻이었었습니다.
그러나 더는 나를 숨기고 있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내가 숨어서 글 쓰자는 데에 발행인이 선뜻 허락하였듯이, 지금은 나를 들어내어 내 말에 당당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종용에 주저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책임의식이란 한 개인의 소견이 아무 통제 없이 나대는 것을 조정하여 주는 것이 됩니다.
신문은 어떤 형태로든 개인과 대중이 서로 교섭할 수 있도록, 그래서 수직적이거나 일방적인 횡포를 막고 횡적인 관계를 도모하는 큰 일을 떠맡습니다. 교민사회의 신문, 특히나 격주로 밖에 나오지 않는 신문이라면 소식 정보 전달이라는 신문의 일차적 소임보다는 이러한 면에 더욱 중점을 두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 까지도 생각하는 나입니다. 초속으로 재는 정보시대에 이미 쓸모없어진 구문을 다룰 일이야 무엇이겠습니까.
지난 일년 가까이 내 횡설수설의 입이 되어주고 소리가 되어준 '씨엔드림'에게 공연한 걱정을 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습니다만, 이왕 잡담이라 제목을 정하였으니 누가 꼬투리 잡을 일은 없을 것으로 안심이 됩니다.
편집자 주) 본 글은 CN드림 2003년 10/3일자 창간1주년 기념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기사 등록일: 200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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