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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부쟁이 _ 최우일 칼럼
요 몇 해 전에 ‘베이커 공원’이 시민들에게 새로 문을 열었습니다.
아직은 찾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아 한적한 공원 후미진 구석에 양귀비가 떼로 피어 있었습니다. 곳곳에 옛 집터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면 오랫동안 돌보아 주지 않아 제 멋대로들 야생상태로 돌아간 것 입니다. 야생종처럼 꽃잎이 작고 꽃대도 짧았지만 그 색깔만은 현란하였습니다. 나는 씨가 영글기를 벼르다가 채종시기를 놓치고 다 늦게 땅에 떨어진 몇 낱을 주어 두었습니다.
내가 그해 겨울을 서울에서 지내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파종시기가 지나 있었기에 서둘러 씨를 뿌렸습니다. 앞집 옆집 마당에선 화초들이 제 키를 훌쩍 자라고 꽃 몽우리가 달릴 때도 늦게 시작한 나의 양귀비는 고작 손가락만큼만 삐죽이 내밀고 있어서 이러다간 꽃을 보기는 다 틀린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내가 사는 집은 두 내외가 겨우 몸담을 만큼 밖에는 안 됩니다. 조그만 욕심 하나 더 들여놓기에도 터무니없이 협소합니다. 그나마 그 조그만 마당 한가운데서 쓸데없는 걱정의 가지만 무성하여 하늘을 덮고 있는 그늘 아래서는 싹이 나지를 못합니다. 무성의와 이기심의 그늘에는 사랑과 책임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볕이 들지 않는 박토에서 생명이 싹틔우기를 바랄 수 없는 일 입니다.
그런데 어느 여름 날 고것들이 꽃을 피워 낸 것입니다. 그러나 양귀비가 아니고 엉뚱한 ‘쑥부쟁이’이었습니다. 산간이나 길가 도랑에서 제 멋대로 자라는 그런 들풀 말입니다. 서둘러 씨앗을 거두느라 잘못 섞인 것인가, 쑥부쟁이는 뿌리로 번식하는 풀이 아니던가....? 여하튼 양귀비를 심은 자리에서 쑥부쟁이가 돋아난 것입니다. 큰 그늘의 어둠 속에서 용케 살아 나온 것입니다.
양귀비에 대면 꽃이랄 수도 없는 것이 생명력 하나는 참 질깁니다. 저따위 잡풀대신 이쁜 꽃을 사다 심자는 아내의 불만에 화원을 몇 차례 다녀오긴 했지만 저것도 애써 틔운 한 생명이라는 생각에 걸려 뽑아 버리지는 못하였습니다. 들풀이라도 제 자리에 서면 저마다 당당할 것들인데 도시로 끌려나와 비천한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화원에 있는 꽃들은 번듯한 이름 하나씩을 죄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길가나 들에서 혼자서 변변치 못한 들꽃과는 처지가 달랐습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 꽃이 어디 본래부터 이름 있었던 것 아니니 이름이야 있건 말건 그 꽃이나 그 풀들이 그 제 이름을 알고 있을 턱이 없습니다. 들꽃이 자리를 빼앗기고 천덕꾸러기가 되는가 하면 화원에서는 화초가 이름 달고 비싸게 팔려갑니다.
한 차례 현란하다 흐믈흐믈 흩어지는 양귀비와는 달리 쑥부쟁이는 몽우리들을 줄줄이 터트리며 오래두고 환한 꽃입니다. 때를 놓치면 늦게라도 저 혼자서 곧 잘 피울 것을 난 공연히 안달을 했습니다.
이해인 수녀는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에서 도종환 시인의 ‘꽃씨를 거두며’를 소개합니다. 꽃씨를 받는 순간부터 이미 한 생명에의 책임을 지는 일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만 하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일은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과 시듦, 화해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삶과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일입니다. 쑥부쟁이 같은 잡풀도 통째로 책임을 지는 일입니다.
가을이 되어 ‘꽃은 지고 잘 여문 씨앗 하나 두고’(이상문의 ‘뒷정리 잘 하는 꽃’) 가면 쑥부쟁이는 제 할 일을 한 것입니다. 새 생명을 틔우기 위한 장한 일 하나를 끝낸 것입니다꽃은 아무 꽃이나 아름답습니다. 어머니들 마음 같은 것이 꽃입니다.


편집자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7년 9/21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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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7-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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