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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 팽권사의 기도
팽권사는 아직도 밝지 않은 토요일 새벽에 덜컹거리는 지하철 기차를 타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교회로 향하고 있었다. 요즘들어 하루에도 몇번씩 머리가 띵~하고 뒷목이 뻤뻤해지기도 했다. 두어 달 전에 감기때문에 의사한테 갔을 때 혈압을 재보더니 혈압이 조금 높긴한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며 혈압약도 지어 주었다. 텅빈 차칸에 앉아 벌써 몇번째 주먹으로 뒷 목덜미를 치고 있었다.

“봄맞이 15일 연속 새벽 기도회” 팽권사는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회에 참석했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다. 기도회 마지막 날이어서 그런지 여느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간단한 예배가 끝나고 각자의 소원을 간구하는 기도시간이 되었다. 팽권사는 보름째 매일 똑같은 내용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아바지! 내레 늘 네기했디요? 난 다른 노틴네덜터럼 기도할 줄 모릅네다. 거저 말나가는 대루 하가쓰니까니 니핼하시라우요. 능넉의 하나님 거저 내 소원 좀 들어주~우. 힘든 부탁이 아니야요. 뭐인가 하문 우리 아들네 식구하고 나하고 한 밥상에 앉아서 밥먹으멘서 오손도손 네기하는거이 거저 내 소원이외다. 한 주일에 한번이면 얼마나 도카소? 기리티만 갸네덜두 바쁘니까니 거저 한달에 한번만이레두 도카쑤다. 우리 갸레 넷적에는 안그랬시요.어드멜가두 거저 오마니, 오마니! 우리 오마니 하멘서 거저 제 오마니라문 꺼뻑 죽던 아이드래씨요. 그런데 당개가서 쌔끼낳고 살더니 이젠 아주 딴 아래 돼쑤다래! 기리카구 또 우리 메누리 갸도 그래요. 네배당에서 보문 갸는 다른 노친네덜 한테는 쉰쉐(인사)두 잘하구 웃우멘서 네기두 잘 하멘서 와 날보문 밸퉤딘 벌거지(배터진 벌레) 보듯 하는지 모르가쑤다래! 갸하구 나하구 전생에 무슨 웬수진 일이 있습네까? 성넝님이래는거이 뭐인디 난 잘 모르디만, 거저 못하는거이 없다고 합데다. 조선땅에 있는 남산두 번쩍 들어다가 토론토 바닷물에다가 칵~ 내틸수두 있다구 목사님이 그랬는데 거저 성넝님 오세서우리 아들네 식구덜 이 늙으니 사는 아빠또에 날래 오게 좀 해주우~ 아~멘~!”

팽권사는 외로운 노인이었다. 교회에서도 늘 외톨이엇고 다른 노인들과 어울리질 못했다. 그 이유는 팽권사는 도무지 말이 없는 사람이었고 묻는 말에 대답만 하뿐 대화라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교회에 처음 나오는 사람들은 팽권사가 벙어리가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였고, 팽권사가 K집사의 어머니라는 것을 오랫동안 모르고 지내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리고 팽권사는 글을 읽을 줄 몰랐다. 성경, 찬송가는 늘 가지고 다녀도 읽을 수가 없었다. 예수가 정확하게 누구인지도 몰랐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분을 믿고 간구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고 착하게 살면 죽어서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는 것만을 굳게 믿고 있었다.

권사의 직분을 받아서 권사가 아니고 적당하게 부를만한 호칭이 없어서 주위에서 그냥 팽권사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팽권사는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서 아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내 아들, 내 아들…… 팽권사의 머리에선 아들의 얼굴이 떠나질 않았고 아들이 없는 세상은 생각조차도 해 본 일이 없었다. 6.25동란, 1.4후퇴 때, 지금의 K집사를 업고 피난 내려 오다가 비행기 폭격으로 남편과 3남2녀를 삽시간에 잃어 버리고 두 모자만 달랑 살아 남았었다.

아들의 초청으로 토론토에 온지도 벌써 열 손가락을 다 세고도 남았다. 아들네 집에 살면서 하루도 마음 편 할 날이 없었다. 아들 내외가 싸움을 하는 이유가 직접 간접으로 거의 팽권사 때문이었다. 귀여운 손주들을 안아 주려고해도 할머니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달아나 버렸다. 아들네 식구들을 위해서 성의껏 밥상을 차려도 맛이 없다고 먹질 않았다. 집에 손님이라도 오는 날이면,아예 팽권사는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했다. 고생에 쩔은 산골노인네 같은 팽권사의 며느리가 되었다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며느리인 것같았다.

험한 세상을 살아오면서 산전 수전 다 겪고 요즘 유행하는 말로 시가전, 공중전까지 겪은 팽권사가 감을 못 잡을 리가 없었다. 지금 성업 중에 있는 큰 수퍼마켙도 처가댁의 도움으로 마련한 것이었고, 지금 살고 있는 고래등 같은 집도 처가댁의 도움으로 마련한 것이었다. 그러니 처가 식구들을 상전 받들듯 해야 했고, 며느리의 목청이 집안에서 쩌렁쩌렁 울릴만도 했다. 높은 학벌과 엄청난 재물을 함께 지닌 사돈이었기에, 팽권사로서는 감히 접근할수도 없는 높은 성벽과도 같았다.

어느 날, K집사가 팽권사를 차에 태우고 낯선 아파트로 갔다. 노인들이 많이 사는 걸 보니 이것이 말로만 듣던 노인 아파트인 모양이었다.
“여기래 어드메가? 야!” 팽권사가 묻는 말에 아들은 대답도 하지않고 승강기에서 내리더니 어느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너댓 사람이 누으면 꽉 찰 것 같은 단칸방이었다. 아들은 수심에 찬 얼굴로 팽권사를 잠깐 쳐다보더니 머리를 숙인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마니, 이젠 이곳에서 사셔야 해요. 저도 무척 생각했어요. 이렇게 하는 것이 오마니를 위하는 길이고 우리 모두를 위하는 길이예요.”
“아니? 네레 지금 덩신이 있네? 없네? 말두 할줄 모르는 늙은이래 어캐 혼자 살란 말이가? 야!”
“제가 자주 찾아 뵙구 불편없이 해드릴테니까니 곧 괜찮아 질거예요. 조금만 참고 견디세요”
아들은 까칠까칠한 팽권사의 손을 잡고 흐느껴 울었다. 팽권사도 같이 울었다. 한국사람이 아닌 외국사람들 틈에서 혼자 산다는 것이 두렵고 겁이 났지만 왜 아들이 이렇게 해야만 하는지 팽권사는 잘 알고 있었다. 본래 쾌활하고 호탕하던 팽권사의 성격이 이때부터 말수가 적어지기 시작했다.

그 먼 옛날 3.8따라지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산동네, 그 속에는 사랑타령으로 온통 도배질을 해 놓은 교회도 없었고 “주의 이름으로 서로 사랑합시다!” 목에 핏대를 세워 외쳐대던 목사도 없었고 저희들만 죄많은 세상에서 의롭게 사는 사람들인양, 두꺼운 성경과 찬송가를 옆구리에 끼거나 큼직한 가방에 넣고 다니며 거드름을 피우는 말많은 예수쟁이들도 없었다. 입에 풀칠하기가 힘들었던 그네들이었지만 그들은 어려운 이웃을 도울줄아는 훈훈한 인정이있었고, 때로는 눈물겹도록 진한 이웃의 사랑을 듬뿍 받기도 했었다.

팽권사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섭섭했던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이나 넋두리를 하는 일이 없었고 아들한테 까지 불평을 하질 않았다. 오로지 간절히 간구하면 아루어 주신다는 하나님께 틈틈이 기도하는 것이 전부였다. K집사는 어릴적부터 콩비지를 참 좋아했었다. 비지가 있는 날이면 비지로만 배를 채울 정도로 좋아했다. 그날도 멀리있는 식품점에 가서 제일 좋은 콩을 사다가 믹서에 갈아서 돼지 갈비를 넣고 만든 구수한 비지를 냄새가 날까봐 비닐봉지에 싸고 또싸고, 그리고 보자기에 쎠서 교회에서 아들에게 건네 주었다.

얼마 후에 아들네 집봐주러 갔다가 우연히 냉장고문을 열어보니 뚜껑도 열어보지 않은 채 곰팡이가 쓸어있는 콩비지를 보고 너무나 섭섭했었다. 한인 청소년 교향악단에서 깽깽이를 키는 손주들이 보고 싶어 그연주회에 한 번 데려가 달라고 아들에게 부탁했을 때 옆에 있던 며느리가
“어머니 같은 사람은 그런데 가야 알아듣지도 못해요!” 하고 말했을 때 섭섭했다. 예배당 친교실에서 아들이 다녔던 대학에서 교수 한분이 오셨을 때 말쑥하게 차려 입은 멋장이 사부인을 그 교수한테 우리 장모님이라고 인사시키시면서도 구석에 앉아있던 팽권사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아들이 섭섭했다.

교회 친교실에서 손주들이 팽권사는 본체만체 지나치면서도 사부인에게는 “거름마(그랜마), 거름마하며 달려들 때도 섭섭했다. 구역예배다, 심방이다, 새벽기도다 하며 교회 일은 열심이면서도, 팽권사가 감기몸살로 누워있을 때, 바쁘다는 이유로 한번도 들여다보지 않던 며느리가 섭섭했고, 물어보지도 않는 며느리를 감싸느라고 사설을 늘어 놓던 아들이 더 미웠었다. 주일예배가 끝나고 지하철역까지 운행하는 교회 밴추럭에 앉아있다가 아들이 산지 얼마 안되는 새하얀 색갈의 캐딜락 자동차에 사부인과 아들네 식구가 어디론가 가는 것을 보았을 때, 실날처럼 가는 팽권사의 작은 눈에 눈물이 찰랑찰랑 고였었다.

팽권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꼭 한 사람 있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영수할머니였다. 영수할머니는 팽권사보다 나이가 아래였기 때문에 팽권사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형님, 이거르 좀 잡쏴 보우다~”
“아니? 그거이 뭐인데?”
“우리 메닐아가 어제 저녁에 해서리 갲다 놓구 간거 앵이요!”
“님자 먹으라구 개온걸 내레 와 먹어”
“ 아임매! 형님꺼라구 따루~ 싸개지고 왔씀둥!”
“기래? 기리타믄 내래 먹으야디! 개 오라우~!”

영수할머니 아들도 자주 찾아 오지는 못하지만, 가끔 식구들을 데리고 와서 몇 시간씩 놀다 갔고 영수할머니도 아들네 집에 가서 몇일씩 있다가 오곤하나는 것이 여간 부럽지 않았다. 어느 화창한 봄날, 바람도 쏘일겸 팽권사는 바로 앞에 있는 공원에 산보를 나갔다가 영수할머니네 식구들을 만났다. 잔디밭에 앉아 있노라니 영수가 봉지를 하나 들고 뛰어왔다. 구멍가계에서 팝씨클을 사온 것이었다. 영수는 먼저 영수할머니에게 그리고 아빠, 엄마, 동생 영주에게 차례로 한개씩 나누어 주고 자기 몫으로 남은 한개를 들고 잠시 눈을 꺼뻑거리더니 들고 있던 팝씨클을 불쓱 팽권사에게 내밀미 “하무니~, 이거 머~거~요. 나 또 사와께요!” 하고는 구멍가게 쪽으로 달려갔다. 팝씨클을 받아든 팽권사의 눈에서는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K집사는 팽권사가 혈압으로 쓰러져 병원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갔다. 팽권사는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산소호흡기를 착용한채, 카랑카랑 쇳소리같은 가는 숨소리만 내고 있었다. 모든 기능이 정지되고 오직 심장만 약하게 뛸 뿐이라는 의사의 말이었다. “어머니~!” K집사는 시심이나 다름없는 팽권사을 쓸어안고 오열했다.

어린시절 K집사는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머니만은 편하게 모시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추운 겨울에 손등이 터져 불긋불긋 피가 배어있는 어머니의 손등을 볼 때마다 맹세했었다.
보리밥으로도 끼니를 채울 수없었던 초등학교 시절에 소풍가던 날, 힘들게 흰 쌀을 구해서 하얀 쌀밥에다 국물이 흐르지 않게 김치를 꼭꼭 짜서 점심을 싸 주시던 어머니!
나무도시락에 김밥을 싸온 급우들이 K집사의 점심 도시락을 보고 놀려댔다는 이야기를 눈물을 글썽이며 어머니께 했을 때, K집사를 꼭 껴안으시고 소리 없이 우시던 어머니!

흐릿한 전등밑에 밤늦도록 공부하던 매일 밤 잊지 않으시고 식기전에 먹으라고 따끈따끈한 삶은 계란을 손에 줘어 주시던 어머니!
무던히도 눈이 많이 내리던 날, K집사가 명문대학 합격통지서를 들고 어머니께 달려 갔을 때, 시장바닥에서 K집사를 붙들고 기쁨에 넘쳐 엉~엉~ 소리내어 우시던 어머니!
불쌍한 이웃에게는 한없이 인정 많으셨던 어머니!
옆집 순이 엄마가 애기를 낳고 굶고 있다는 얘길 듣으시고 아끼고 아끼시던 쌈지돈을 꺼내 쌀 한말, 미역 두닢, 계란 한줄울 사서 보내시던 어머니!
병칠네가 김장을 못했다는 얘길 듣으시고 바께쓰로 김치를 담아다 주시던 어머니!

애기 업은 거지가 구걸하러 왔을 때, 밥먹여 주고 잠재워 주고 얼마의 돈까지 주어서 주어서 보내시던 어머니께 더러운 거지를 왜 방에 들이느냐고 어린 K집사가 투정을 했을 때
“내레 널 업구 피난 내리올 때, 우리 모잘 불쌍하다구 밥멕여주구 잠 재와 준 사람덜이 많았기에 우리레 이리케 둑디 안구 살아 있디 않네~? 기리니까니, 우리두 없슨 사람 을 도와 주야디~ 기리티~?” 하고 말씀하시던 어머니!
K집사의 초청을 받으시고 동네사람들을 모아놓으시고 자랑하셨다던 어머니!

“주여~! 어머님을 소생시켜 주소서! 그 동안 못다한 효도를 할 수있게 어머님을 살려 주소서! 주여~! 이 못난 아들의 수면을 10년 단축시켜 주사고 어머니의 생명을 1년만 연장시켜 주시옵소서! 주여~ 주~우~여~”

팽권사의 가슴을 눈물로 적시며 기도하는 K집사의 귀에는 하나님의 응답대신 다시 한번 재촉하는 의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에 섰던 목사도 한 마디 거들었다.
“이제 결단을 내리십시요. 주님곁으로 편안히 기실 수 있게 해드립시다. 자! 서명 하십시요”
K집사는 팽권사를 내려다 보았다. 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 한 번이라도 더 숨을 쉬어 보겠다는 욕심에서인지 힘겹게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K집사는 어렸을 적에 팽권사에게 떼를 쓰듯이 소리내어 울었다.

“엄마~아~! 엄마~아~~!”


꼬리 글: 어진이님은 제 바로 위의 형님입니다.

기사 등록일: 200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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