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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奸臣)의 순정(純情) _ 오충근 기자
임백령은 해남 출신 선비인데 중종 때 과거 시험에 장원급제 했다. 임백령의 과거 급제에는 전설 같은 황당한 꿈 이야기가 있지만 하여튼 과거에 급제만 해도 온 고을이 떠들썩하게 잔치를 하는데 장원급제 했으니 대단한 일이다.
임백령은 임금이 꽂아주는 어사화를 머리에 꽂고 임금이 내리는 어사주를 마시고 임금이 주는 백마를 타고 한양성을 돌아다녔다. 이런걸 유가(遊街) 라고 한다. 춘향전에도 이 도령이 장원급제 하고 3일간 유가를 하고 암행어사를 제수 받았다. 이날만큼은 한양성 모든 사람들이 앞길이 구 만리 같은 젊은 선비의 장원급제를 부러워하고 축하 해 주었다. 특히 여자들은 남녀가 유별한 시대였지만 장독대에 혹은 대문 뒤에 숨어서 가슴 두근거리며 장원급제한 젊은 선비를 훔쳐 보았다.
어사주에 취해 말 위에서 졸던 임백령은 말이 서는 바람에 잠을 깼다. 말은 남소문(지금 장충동과 한남동 사이) 근처 어느 술집 앞에 섰고 곧 기생이 뛰어 나왔다. '장원랑께서 누추한 술집을 찾아 주시니 영광입니다.' 박주소찬 이라고 내온 술상이 시골선비 임백령에게는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산해진미였다. 임백령은 시골선비로서는 과분한 대접을 받고 그 기생과 하룻밤 정을 쌓았다. 그 기생의 이름은 옥매향 이였다.
그 후 임백령과 옥매향은 사랑 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기생을 그만 두려면 돈을 주고 기적(妓籍)에서 이름을 빼야 되는데 이제 관직생활을 시작한 임백령은 돈이 없어 옥매향과 살림을 차릴 수 없어 옥매향은 기생일을 계속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세도가인 윤임이 탁족놀이를 한다고 해 임백령도 가게 되었다. 미관말직인 임백령이 갈 자리는 아니었지만 장원급제한 경력으로 거기 초대되었다. 세도가답게 탁족놀이는 거창했다. 장안 기생이 총동원 되다시피 했는데 옥매향도 있었다. 옥매향의 미모에 반한 윤임은 옥매향을 곁에 앉히고 있었는데 술자리가 무르익자 옥매향과 임백령은 눈짓을 교환하고 자리에서 빠져 나와 숲으로 들어가 운우의 정을 나누었다. 윤임은 옥매향에게 어디 갔다 늦게 오냐고 물었다. 옥매향은 소피 핑계를 대었다. '자네도 소피 보고 왔는가?' 윤임은 임백령 에게 다그쳤다. 임백령은 묵묵부답이었다. 임백령과 옥매향의 사이를 아는 젊은 축 들은 킥킥거렸다.
다음날 임백령이 옥매향의 술집에 가니 옥매향이 없었다. 윤임이 그날로 옥매향을 첩으로 삼아 데려 갔기 때문이다. 임백령은 사랑하는 옥매향의 뒷모습이나마 보려고 윤임의 집 근처를 서성거렸다. 그러나 옥매향의 뒷모습은커녕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임백령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 옥매향도 임백령을 잊지 못해 윤임의 집을 도망치려고 몇 번이나 애를 썼으나 번번히 걸렸다.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잊지 못하는 세월이 흐르고 흘러 어느덧 26년이 지났다.
을사사화가 일어났다. 그리곤 세도가 쩡쩡하던 윤임은 윤원형 일파의 모략에 걸려 역적으로 몰렸다. 임백령은 윤임을 문초하는 추관이 되었다. 죄인을 문초하는 자리에 낯익은 여인이 오라에 묶여 들어왔다. 꿈에도 잊지 못하던 옥매향 이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 옥매향은 40이 넘는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젊은 날의 고운 자태가 남아있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보는 임백령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임백령은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 나왔다.
임백령의 동료 허자가 옥매향을 문초했다. 형식적인 문초가 끝나자 허자가 물었다. '아직도 임백령을 사랑하는가?' '이제 와서 사랑하면 뭐합니까? 그러나 아직까지 죽지 못하고 살아 있는 것은 죽기 전에 장원랑을 한번 보고 죽기 위해서 입니다.'
세월이 흘렀으나 옥매향의 가슴에는 장원급제 하던 날의 젊은 선비 임백령이 있을 뿐 이였다. 허자는 옥매향을 가마에 태워 임백령의 집으로 보냈다.
'옥매향아, 이젠 헤어지지 말자. 이젠 기생 안 해도 된다. 여기서 같이 살자.' 임백령은 옥매향을 얼싸안고 좋아했다. 세월이 흘러 젊은 날은 지나갔으나 그래도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는 정열은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너무 짧았다. 다시 만난 지 한 달도 채 안되 임백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사신으로 중국에 다녀 오던 임백령은 병에 걸려 영평에서 객사했다. 더불어 그들의 불 같았던 짧은 사랑도 끝났다.
임백령은 윤원형, 정순붕과 더불어 을사삼간으로 꼽히는 인물로서 을사사화 때 음모와 중상모략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어 간신의 반열에 오른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간신 중에 한 명이고 간교한 인품으로 소인배의 대명사로 이름을 날린 사람인데 신분제도가 뚜렷한 조선시대에 사대부와 기생이라는 신분을 뛰어넘어 순수한 사랑을 한 그런 일면이 있었으니 간신에게도 순정은 있었다 할까?

뱀 다리 한 개: 왕조실록 중종 14년 기록에 임백령이 1등으로 급제해 직장(直長)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다시 검열로 천거 된 것은 전례에 없는 일이라는 사헌부의 의견이 기록 되 있다.

윤임: 중종의 처남이자 인종의 외삼촌. 조선 11대 왕 중종(이름-李懌)은 정실부인만 3명인데 첫 부인 신씨와는 왕위에 오르고 8일만에 이혼(?)을 했다. 신씨의 아버지 신수근이 연산군의 처남인데 혁명이 나서 연산군이 쫓겨나고 진성대군으로 있던 중종이 왕이 되자 신수근은 역적으로 몰렸다. 신수근은 큰 잘못은 없었으나 혁명을 반대해 역적으로 몰렸고 역적의 딸이 왕비가 된다는 있을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운 혁명 주도세력들은 나중에 보복 당할게 두려워서 신씨를 왕비로 모실 수가 없었다. 그런 정치적 이유로 신씨는 왕비가 된지 8일만에 쫓겨났다.

두 번 째 부인이 장경왕후 윤씨인데 윤씨는 인종(이름-李峼)을 낳고 8일만에 산후병으로 죽었다. 그래서 세 번 째 결혼을 했는데 세 번 째 부인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문정왕후 윤씨이다.
윤임은 장경왕후 윤씨의 오빠로 세력을 잡았는데 그를 추종하는 세력을 대윤(大尹)이라 하고 문정왕후 동생 윤원형 일파를 추종하는 세력을 소윤이라 하는데 인종은 왕위에 오른 지 일년 만에 죽고 문정왕후 아들인 명종(이름-李峘)이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는데 인종은 서모인 문정왕후가 독살 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윤원형은 명종의 외삼촌인데 명종이 왕이 되자마자 정순붕, 임백령, 허자, 진복창 등과 모의하여 을사사화를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죽었다. 윤임 과 윤원형은 왕의 외삼촌이라는 관계를 이용하여 권력을 잡아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고 특히 윤원형은 을사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조선역사의 악당의 표본이 되고 있다.

기사 등록일: 200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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