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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에 담긴 한편의 인간드라마 _ 최우일 칼럼
꾸물거리는 하늘도 그렇지만 남들은 다들 일할 시간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늘 북적대던 샤가나피 포인트가 오늘은 유난히 한산하였습니다. 한산한 골프장에 나와 있는 한가한 사람 하나, 지금 난 여유롭고 아름다운 느낌만이면 됩니다. 잠시의 자유로움으로도 나의 오늘은 날듯이 가볍습니다.
골프공을 날려 띄우는 것은 과학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가차없이 차가운 과학 속에서 인간 감정의 가치체계가 작용을 한다면? 나의 생각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고대 희랍 때부터 서양을 지배하여 온 사상적 맥락, 이성과 합리도 이제는 가치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다는 것이‘선(禪)과 모토사이클 정비기술’(Robert M. Pirsig)이 말하려는 요점입니다. 감성의 예술행위와 이성의 과학탐구라는 이분법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머리와 가슴을 별개로 생각하게 합니다. 감성과 이성 이 둘을 하나의 가치체계 안에서 본다는 것은 현대인의 혼란스런 영혼, 진리와 자신을 찾는 과정에서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 아니, 달라진 느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물질에서 심성과 정신의 세계로, 또다시 최선의 가치체계로, 누구나의 삶은 시작이나 끝이나 ‘하나’로 아름다워야 하며 이것이 바로 ‘모든 것’(全體)이고 그러므로 ‘마지막인 것’(窮極)이어야 합니다.
한가로이 나의 생각은 날개를 달고 날았습니다. 대략 이쯤까지 생각이 정리되고 보니 골프도 단지 놀이로서 만의 골프가 아닌 것입니다. 검도나 궁도처럼 물리로서가 아니라 ‘선(禪)적 골프’도 되는지는 아직은 모르겠지만, 우선은, 골프는 아름다워야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깨끗함이고 바름이며 궁극에는 선(善)함이라는 자세이어야 하니까요. 샤가니피의 6번 홀까지 오면서 골프공을 선의문제까지 멋대로 날려보내다가 나의 생각은 갑자기 멈추었습니다.
7번째 홀에서였습니다. 티 박스에서 왼 난데 없는 사람이 차례를 무시하고 공을 때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우리들 앞서 간 골퍼는 하나도 없었는데, 그러면……? 우릴 보자 그는 무안해 하였습니다. “급해서 몇 홀을 빼먹고 이 홀로 곧장 왔습니다. 얼른 치고 가게로 나가야 해서요. 죄송합니다.” 그는 무례한 새치기를 사과로 대신하였습니다. ‘우린 시간이 많은 사람들인걸요. 먼저 치십시오.” 나야말로 한가한 것 말고는 없는 사람입니다. “ 아닙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럴게 아니라 함께 치면 어떻겠습니까?” 우린 자연스레 한 조가 되었습니다.
그는 대수도 아닌 나의 골프를 적당히 추켜주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린에 올라서는 핀을 빼어주고 꼽아주는 등 귀찮은 일 맡아 하고, 가끔 뒤에 쳐진 나의 풀 키트를 끌어다 주는 친절까지도 베풀었습니다. 지나치게 점수에 집착해 하지도 않으며, 간간히 사교성 얘기를 곁들여 배려를 한껏 하였습니다. 몇 년이나 친 내 골프라는 게 형편없는 수준이어서 티샷의 반은 엉뚱한 곳에 떨어지는데도 일일이 눈 여겨 보아주고 공을 찾아주기까지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언제 다시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골프를 끝낼 때도 그는 매너가 깍듯하였습니다. 진정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실제 상황이 아니라 나의 상상일 뿐입니다. 오늘 아침 만난 이는 사실 이런 사람이 아니고 몰염치하였습니다. 처음부터 아예 상대하고 싶은 맘도 없었지만, 아마 내가 한마디나 했더라면 마구 대들 기세였습니다. 남에게 양보는 커녕 오히려 꾸물대며 우리가 무얼 잘못했는지 심술을 부리기까지 했습니다.
골프의 목표점은 홀입니다. 목표에는 기대가 있고, 기대는 실망이 될 때가 있습니다. 샷이 흔들리면서 마음이 흔들립니다. 인간성의 위기입니다. 자신을 추스르지 못하고 흩어집니다. 잘하는 남을 보며 약이 오르고, 실수는 애써 감추고 또 속이고…… 별별 추한 속마음이 죄다 들어 납니다. 잠깐의 행운에는 우쭐대기도 합니다. 그는 그저 이런 한 사람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골퍼, 어제까지도 잘 되던 것이 오늘만 안 된다고 둘러대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뭔가를 보여주며 우쭐대고 싶었던 우리 둘 앞에서 민망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삶이 흔들릴 때 사람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많은 것을 배우게도 되는데, 왜 골프에서는 그렇지 못한지 모를 일입니다. 오늘 잠시 서로 지나쳐 간 한 사람과의 아름답지 못한 관계였습니다.
뻔뻔히 새치기를 하고도 잘난 체는 혼자 다 하는 녀석을 더 참지를 못하고 아내가 끝내 내 귀에 대고 한마디 했습니다. “저런, 영 경우 없는 인간이로군” 인간이란 말에 유난히 힘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지칭 할 때 인간이라 하여 사이’간(間)’을 덧붙입니다. 인간은 그냥 존재로서가 아니라 서로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남에 대한 배려 없이 저 혼자 제멋대로인 사람을 인간이라고 폄하하는 걸 보더라도 사이’간’의 관계를 모르거나 무시하는 사람은 인간으로 치지를 않습니다. ‘사람’은 독자적 존재이지만 ‘인간’이란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린아이 ‘인간’으로 성장될, 그러나 지금은 그저 인간후보(‘a candidate for humanity’)일 뿐이다가, 결국에는 독자적 존재에서 사회라는 관계의 존재로 다듬어 집니다. 사람이란 단어는 나 하나만이 아닌 남들까지 포함하여 복수형으로 만든대도 군중밖에는 되지를 못합니다. 나의 주견이나 결심이 없이 남의 생각이나 조종과 충동에 따라 쉽사리 동요될 수 있는 그냥 사람들의 모임일 뿐입니다. 여기에는 의무나 책임과 예의가 빠지고 없습니다. 군중은 사회가 아닙니다. ‘사회는 사람과 사람들과의 관계의 총화’(A. Toynbee)라는 대단한 정의가 있기 전에 우리나라는 사람을 두고 인간이라 할 때부터 벌써 관계성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사회에서 따로 떼어 놓고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독선적이고 이기적이며 한 구성부분으로서 동료 사회에의 예의를 모르는 염치 없는 사람일 때 그는 사회적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는 것이라 보고, ‘저런 인간’이라 반의적으로 쓰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연속극을 보며 울고 웃고 아쉬워하며 분통해 합니다. 이렇게 드라마에 몰입 될 수 있는 것은 드라마가 일상에 아주 흡사하게 꾸며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드라마를 현실과 혼동하는 경우를 빼면 연속극은 분명 허구의 세계이지만, 그러나 이 골프의 세계는 곧바로 현실이고 우린 골프라는 현실 드라마에 직접 출연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들 개개인이 주연을 하며 연출을 하며 포장되지 않은 인간성을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골프는 바로 인간의 드라마이며, 그래서 어떤 경우에라도 아름다운 것 이어야만 합니다. 내가 오늘 만난 그 친구 또 다시 어디서 ‘인간’같지도 않은 공연을 되풀이 하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사 등록일: 2008-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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