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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난 목사들과 대화 하는 법’ 글 : 강현 (에드몬톤 교민)
얼마 전 한국의 한 기독교 교단 홈피에서 벌어진 종교다원주의 토론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토론이란 서로의 지혜와 경륜을 나누고 배우는 아름다운 과정인데 그 과정이 시간이 갈수록 천박해 지더니 결국 서로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 아수라장이 돼 버리고야 말았습니다. 오히려 그 교단 교회들에 소속된 평신도나 저 같은 외부 참가자들보다도 몇 분이긴 하지만, 목사나 장로 직분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잔뜩 화가 나가지고 입에 담지 못할 악담을 함부로 내뱉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분들의 분노가 나름대로의 종교적 신념과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인 줄은 압니다. 그러나 한 분야의 경륜을 지닌 목회자와 장로들이 신학적 주제와 관련된 토론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왜 이렇게 쉽게 화를 벌컥 내는 것인지 곰곰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종교란 성스럽고 초월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인간 삶의 가장 경건하고 진지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헌데 이런 종교적 경륜을 오래가진 분일수록 ‘두 눈 부릅뜬 얼간이’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다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입니다. 신자들의 마음을 다른 사상에 대한 증오와 저주로 가득 차게 만드는 종교라면 차라리 없어지는 게 백 번 나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문제가 비롯된 원인이 잘못된 종교나 목회자들의 덜 익은 품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잘못된 교리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한 종교의 사상구조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하나의 틀을 만들어 놓은 것이 교리입니다. 그 교리는 한 시대의 문화적 역사적 조건을 반영하지만 기독교나 이슬람 같이 규모가 세계적이고 역사적으로 오래된 유일신교의 교리가 가지고 있는 기본 틀은 대동소이하고 변화도 미미합니다. 말하자면 이미 권력조직화 되었는데 이렇게 권력조직화 된 교리는 교회권력에 의해 오랜 세월에 걸쳐 확대재생산 돼 왔습니다.
종교나 정치를 막론하고 모든 권력은 그 사상의 이론기반이 취약할수록 항상 자기 영역 밖에 존재하는 다른 사상에 대한 증오심을 강요하게 됩니다. 때로는 희생양을 만들어 놓고 잔혹한 마녀사냥에 나서기도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정당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상의 이론기반이 취약한 권력일수록 항상 적과 아군을 명확히 구분하고 싸움 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들이 자기와 다른 사상이나 종교를 대하는 태도는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정복 아니면 증오입니다. 한국의 상당수 개신교인들이 그렇고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이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 이들은 사상적으로 이란성 쌍생아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의 공통점은 그 신자들로 하여금 무엇엔가 항상 증오심을 가지게 한다는 것 입니다. 이런 교리는 샬롬의 참 의미인 ‘peace with justice’를 증오합니다. 종교다원주의를 사탄의 사상이라고 가르치고 본 훼퍼 같은 신학자나 아인슈타인 같은 무신론자를 증오하고 변선환 박사 같은 사람은 지옥에 가 있다는 환상이라도 보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이런 교리에 사로잡힌 신자들은 화해와 공존을 향한 새로운 신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바퀴벌레라고 부를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그런 말을 자기 실명으로 당당히 교단 게시판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이성이 마비돼 있습니다. 결국 신자들의 정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종교사상과 그 교리는 현재로서는 인류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지상가치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정의로운 상태에서의 평화적인 공존’을 근본으로부터 위협하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입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도 기독교를 출구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구하고자 하는 일부 깨어있는 신학자들의 노력은 눈물겨운 것 입니다. 비단 다원주의뿐 만이 아닙니다. ‘다마스커스 가는 길에서 죽은 예수를 만나 계시를 받았다는 사도바울의 ‘꿈 이야기’나 예수의 육체적 부활’ 따위와 같은 취약하기 짝이 없는 이론기반이 아니더라도 기독교가 종교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이들의 진지한 질문과 고민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천 년 동안 발전한 것이라고는 없는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라는 모욕적인 소리를 더 듣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한국의 종교사회학자 정진홍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 기독교의 문제는 ‘고백의 언어’와 ‘인식의 언어’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혼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적 언어가 2000 년 후의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나의 고백적 언어로 받아들여져야 할 뿐 아니라, 동서고금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의 고백적 언어로 받아들여져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 이단(heresy)이며 지옥에 가야 한다는 말이 진담으로 통용되는 집단이 있다는 것은 새삼스럽지만 현실입니다.
이 분들과 토론을 하면서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저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런 사상이 사라질 가망도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 수 없이 그 분들에게 제안을 한가지 했습니다. 서로의 품위유지를 위해 작전타임을 요청한 것입니다. 이미 보수파 목사 몇 분이 선포하신 소위 ‘영적전쟁’을 잠깐 접어 두고 우선 화를 가라앉히시라고. 저도 ‘증오범죄와의 전쟁선포’를 유보하고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겠다고. ‘박멸해야 할 마귀’ 라는 선고를 함부로 내리기 전에 왜 저 사람과 나는 생각이 이렇게도 다를까 먼저 생각하는 여유를 가져보라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쉽고 당연한 이 보편적인 사고(思考)의 양식이 그 분들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 같았습니다.
(본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_ 편집부)

기사 등록일: 200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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