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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운명 _ 오충근 기자
한 여자만을 사랑한 남자, 한 남자의 여자가 될 수 없었던 여자
미국 경제에 대공황 이라는 짙은 먹구름이 끼고 수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고 실의에 빠져 삶의 의욕을 잃던 시절, 미국인들을 위로해주고 열광케 해주던 야구 영웅이 있었으니 조 디마지오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조 디마지오는 56게임 연속안타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진 미국의 야구영웅일 뿐더러 세계의 야구영웅이다.
좀처럼 깨질 것 같지 않던 베이브 루스의 714호 홈런 기록은 1974년 앵크 아론에 의해 경신 되었고 755호 홈런을 기록한 행크 아론의 기록도 2007년 8월7일 배리 본즈에 의해 깨어졌으나 조 디마지오가 1941년 7월16일 기록한 56게임 연속안타 기록은 67년이 지나도록 누구도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고 있다. 연속안타기록 2위는 피트 로즈의 44게임 연속안타로 무려 12개 차이다.
야구가 계속 되는 한 불멸의 기록 소유자로 남아있을 조 디마지오가 죽을 때 당연히 야구에 관해 한마디 하고 죽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그가 죽을 때 마지막 남긴 말은 야구하고 관계없는 말 이었다. 1999년 3월8일 영원한 야구의 전설이 숨을 거두기 직전 변호사에게 남긴 말은 “이제 마릴린 하고 같이 있게 되었군.”이었다. 마릴린 몬로가 죽고 37년 만이었다.
“I don’t feel bad about dying. At least, I’ll be with Marilyn.”
영원한 야구전설도 야구선수 이전에 남자였다.
이탈리아 이민2세인 조 디마지오가 마릴린 몬로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그녀가 야구복을 입고 배트를 휘두르는 사진을 보고 나서였다 한다. 이미 영화배우로서 명성을 쌓아 올린 마릴린 몬로는 백치미와 청순미를 겸비한 하룻밤 안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왠지 헤플 것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섹스 심볼이었는데 반해 조 디마지오는 수줍은 듯하면서도 자기 절제와 자기관리에 엄격한, 박수 받을 때 은퇴할 줄 아는 사리분별을 하는 남자였다.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고백한 마릴린 몬로는 연예계의 화려한 각광을 받았지만 개인적으로 불행하고 고독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배우로 성공하기 위해 이 남자 저 남자 품을 전전하고 배우로서 전성기에도 창녀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던 그녀를 순수하게 사랑한 남자가 있었다면 조 디마지오 일 것이다.
친지를 통해 마릴린 몬로를 소개받은 조 디마지오는 적극적이었다.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던 두 사람은 일 년 동안 메스컴에 온갖 화제를 뿌리다 1954년 1월 결혼했다.
그러나 그 결혼은 불행이 예고된 결혼이었다.
결혼식을 하고 마릴린 몬로의 일정에 맞춰 일본여행을 한 두 사람은 일본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곧 이어 마릴린 몬로는 한국방문을 했는데 조 디마지오는 혼자 미국으로 돌아왔고 한국방문이 이혼의 불씨로 작용하게 된다. 한 남자의 여자로 남아주길 원했던 조 디마지오의 기대와 달리 마릴린 몬로는 한 남자의 여자가 될 수 없었다. 결혼 후에도 수많은 남자들이 추파를 던져왔고 조 디마지오는 영화를 무척 싫어했으나 몬로에게는 영화가 생의 전부였고 조 디마지오는 자녀를 원했으나 이미 수많은 낙태수술로 자궁이 엉망이 된 마릴린 몬로는 임신 가능성이 없었다.
영화 ‘칠 년만의 외출’에서 지하철 통풍구 바람에 스커트가 휘날리는 장면에서 조 디마지오의 인내력은 한계에 다다랐다. 얼굴에 시퍼렇게 멍이 든 채로 그녀는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두 사람은 9개월의 짧은 결혼생활을 끝냈다.
9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 부부의 연이었지만 조 디마지오가 평생을 두고 사랑한 사람이 마릴린 몬로라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파멸시킨 사람은 케네디 형제였다.
마릴린 몬로의 세 번 째 공식적 남편인 극작가 아더 밀러와의 결혼도 행복할 수 없었다. 남편이라기 보다 선생님 같은 존재였던 아더 밀러와의 결혼은 그녀의 지적 콤플렉스를 메워주기 위한 방편이었으리라. 그러나 섹스 심벌이란 이미지는 마치 낙인 찍힌 것처럼 그녀를 따라다녔고 그 이미지를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1962년 37세의 나이로 죽었다. 침실에서 나체로 전화기를 든 채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공식적 사인은 약물중독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 뒤에는 케네디 형제가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과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의 연인이었을까? 아니면 섹스 파트너였을까?
그녀는 케네디 가문의 며느리가 될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으나 그런 행운이 그녀를 따를 리가 없었다. 그녀는 형제에게 버림 받았다.
과거 소련 언론에서 말했다. “미국은 풍선껌 과 마릴린 몬로를 빼면 이야기가 안 된다.”고
단물이 빠지면 껌을 버리듯 단물이 빠진 그녀를 형제는 미련 없이 버렸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녀에게 조 디마지오가 다시 다가왔다. 다시 만난 두 사람, 이때가 마릴린 몬로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 이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재혼을 3일 앞두고 마릴린 몬로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조 디마지오는 그녀의 장례식을 주관했다. 헐리우드 영화 관계자들과 조문을 표하겠다는 케네디 가 사람들은 참석이 거부되었다. “당신들이 아니었으면 그녀는 아직 이 세상에 있을 것” 이라고 적개심을 나타낸 채.
그들이 결혼하던 날 마릴린 몬로는 “내가 먼저 죽으면 내 무덤에 꽃을 놓아 달라.”고 했고 조 디마지오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 약속대로 그는 그녀의 무덤에 꽃을 바쳤다. 37년 동안을 한번도 잊지 않고. 그러다 37년 후에 평생을 사랑하던 여자를 따라 갔다.


기사 등록일: 200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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