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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因緣) _이 길(에드몬톤, 수필가)
70년 초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또래의 세 명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도봉산에 올랐다. 어느 날 산행 길에 일행 중 한 명이 지팡이를 만든다고 적당한 굵기의 나무를 자르고 있을 때 중년 남자가 막아서며 호통을 쳤다. 그냥 나무라는 정도가 아니라 무안하고 민망할 정도로 야단을 쳤다. 지팡이 만드는 것을 포기한 것은 물론이고 기분이 잡쳐 일상적인 코스를 생략한 채 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았다 누웠다 하다가 내려 왔다.
산 입구에서 좀 전의 중년남자 일행 두 명과 마주쳤다. 눈길을 피하는 우리를 일부러 불러 식당으로 데려 갔다. 소주와 맥주를 곁들인 불 갈비 식사는 우리의 상한 기분을 풀고도 남았다.
일 주일 후에 그 중의 한 분이 회사로 전화를 했다. 나는 두 분과 같이 또 근사한 식사를 했다. 그 중 한 분이, 자기를 몹시 따르고 자기도 아끼던 조카가 초등학교 때 죽었는데 나와 많이 닮았다는 얘기, 얼마 전 산행 후 식사 중에 한 얘기를 다시 하며 자기를 삼촌이라 부르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그 분을 삼촌이라 부르고 다른 분은 성이 황씨라 황 삼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삼촌은 적극적이고 괄괄한 성격인데 비해 황 삼촌은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고 표정의 변화도 거의 없는 분이었다.
두 분은 강원도 고성에서도 학교에 가려면 3 키로 이상 걸어야 하는 산골에서 살다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각기 고향을 떠났다고 했다. 그 후 23년 만에 서울에서 우연히 만난 후로는 거의 매일 만나다 시피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집도 걸어서 30분 거리의 같은 우이동에 옮겨 살고 있었다.
두 분 사이에 언쟁이 있었다. 한일 국교 수립이나 삼선 개헌 정도의 큰 문제가 아니라 박통(朴統)의 청와대 일상 중 일부를 아부성으로 쓴 어느 신문 기사가 발단이 되었다. 박통이 정원사에게 이 나무는 어떻게 가지를 치고 저 나무는 무슨 비료를 일 주일 간격으로 주라 했다는 기사였다. 삼촌은 참 자상하다고 칭찬했고 황 삼촌은 그런 것은 정원사에게 맡겨야지 그렇게 하면 면 서기감도 안 된다고 비틀었다.
두 분 우정의 깊이로 보아 한 번 부딪쳤다 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강제로 입을 막아 그렇지 좀 얘기 거리가 많은 정권이 아니었는가. 삼촌은 언제나 박통을 두둔하는 쪽이었고 황 삼촌은 비판하는 쪽이었다. 어떤 때는 억지로 시비를 위한 시비를 하는 듯도 했다. 시간이 가면서 감정의 골이 깊이 파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친박과 반박이 굳어진 것으로 알았는데 이변이 생겼다. 유신이 선포되며 입장이 바뀐 것이다. 삼촌은 왕국을 세울 셈이라며 배신감을 참지 못했고 황 삼촌은 해방 직후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떠올리며 후계자를 정하지 않았음은 박통의 잘못이지만 지금 물러나면 죽도 밥도 아니니 10년은 현상대로 유지해야 무언가를 이룰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삿대질을 하는 것은 옛일이고 책상을 치며 육두문자를 쏟아내는 것은 예삿일이 되었다. 건널 수 없는 골짜기가 생겼고 곪은 상처는 치유 불능상태가 되었다. 다시 화합시키려는 내 노력은 언제나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 깊던 우정이 이렇게 되는 수도 있구나’ 를 생각하는 중에 두 분은 왕래는커녕 전화 한 번 안 하며 일 년여가 지났을 때 갑자기 황 삼촌이 세상을 떠났다. 삼촌 집에 둘렀더니 "그 새끼 진작 뒈졌어야 했어."가 첫 말이었다. 안 가겠다고 버티는 것을 억지로 끌다시피 하여 문상을 갔다. 손님 안내 등 상가 일을 도우며 얼핏 얼핏 보니 삼촌은 마당 한 구석에서 땅을 보았다 하늘을 보았다 하며 앉아 있었다. 삼촌은 황 삼촌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열흘 후에 삼촌 집에 갔다. 온 몸에 기가 빠진 듯도 하고 몸도 마르고 눈의 초점도 흐려 있는 것 같았다.
"좋은 놈이었는데. 참 좋은 놈이었는데......" 평소와 달리 말에 힘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 나도 어려웠지만 그 놈은 유난히 가난했어. 하루에 보리 죽 한 끼도 못 먹는 놈이 공부는 잘 했지. 나는 그 놈 때문에 2등의 벽을 깰 수가 없었어. 상식이 풍부하고 앞을 보는 식견은 감탄할 정도였지. 아이들도 잘 키웠고 돈도 나보다 많아. 일대일로 만나면 내가 한 수 위인데 객관적으로 보면 항상 내가 지고 있었어. 그 때 박통이 우리 사이에 끼어 들었지. 둘 다 80은 넘길 줄 알았는데 그 놈은 환갑도 못 넘겼어. 뼈 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태우고 갔으니 참 무심한 놈이야. 내가 죽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장례식에도 가지 못했어." 결국은 통곡으로 이어졌다.
내가 사우디 지사에 나가 있는 동안 삼촌도 세상을 뜨셨으니 친구를 회상하며 몸부림치면서 한 시간이 넘게 통곡하던 모습이 내가 본 삼촌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그 것도 20년 전의 일이니 가끔 두 분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를 뿐이다.
두 분의 만남과 헤어짐을 생각하면 대단한 인연이고 기막힌 인연이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불교에서는 6도 환생과 함께 전생의 비중을 높이 둔다. 현생에 옷깃이 한 번 스쳐도 전생에 3생의 인연이 있다고 한다. 인간으로만 환생하는 것이 아닐 것이니 3생의 인연이 있었다 함은 대단한 인연이다. 겉보기에도 상당히 부러운 인간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불교 식으로 보면 전생에 좋은 관계였을 것이니 더욱 소중히 여기고 아껴야 될 것이다. 반면에 사자에게 잡혀 먹힌 사슴처럼 철천지원수로 지내는 관계도 본다. 아마 전생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생에서 이어진 그 끈질긴 악연을 현생에서 끊는다는 생각으로 화합하면 앞으로 몇 생에 걸쳐 반복될 악연이 끊어지는 일이 될 지도 모른다.
힌두교에서는 840만 번에 한 번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840번이 아니고 840만 번이다. 840부터는 동그라미 치기가 미안하고 무섭도록 긴 여정이다. 불 속에 뛰어드는 불나비도 그 생의 수를 채우려는 몸부림인지 모른다. 가족과 인척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현생에서 인간으로 만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인연이 된다.
지금 지구상에 살고 있는 60억 세계 인구 중에 죽을 때까지 몇 명이나 만나며 사는가를 생각하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더 소중하게 보인다. 몇 년 후면 어떤 이유로든 헤어질지 모르는 사람들이 죽자 살자 싸우는 모습도 본다. 두 삼촌처럼 어떤 콤플렉스로 인해 내가 너보다 한 단계 위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싸우다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며 통곡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두 삼촌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지금 내 주위의 사람들과 어떤 인연 중에 있으며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크게는 둘, 어찌 보면 몇 개로 갈라져 있는 에드몬톤 교민 사회를 어쩔 수 없이 돌아보게 된다.(*)

기사 등록일: 200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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