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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성탄계절.....연재 칼럼) 남의 땅에 뿌리를 내리며 (15/20) ,, .글 : 어진이
 
글 작성일 : 2004년 5월 8일

때는 1975년 12월 장소는 캐나다 토론토

거리에는 성탄절 장식이 불을 밝히기 시작했고, 라디오에서는 끝치지 않고 캐롤이 흘러나왔다. 벌써 일을 한지도 두달이 넘었다. 연구소 일이라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흰 까운을 입고 폼나게 일하는게 그렇게 좋아 보이고 부럽더니……
‘쉽고 편하고 즐겁고 월급 많이 주는 직업이 있으면 좋을텐데……’

공장에서 일할 때는 일은 힘들었어도 일단 일이 끝나고 나면 아무 걱정이 없었다. 일한 만큼 월급을 받으면 됐다. 일이라는게 다람쥐 채바퀴 돌리듯 거의 같은 일을 반복해서 지겹기는 해도 일단 일을 끝내고 time card를 찍고나면 직장과는 끝이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월급이 작은 것과 동료들이 좀 저질이라는 것이었지만 그런대로 사람사는 냄새가 났다. 그 이외에는 신경쓸 일이 없었다. 힘이 든 일도 몇달을 일하고 나서 몸에 익숙해지면 빨리 일을 많이 해놓고 눈치껏 쉴수도 있었고 아주 편했었다.

병원에서 일할 때는 공장에 비하면 땅집고 헤엄치기였다. 한 가지 가끔 신경이 곤두서는 일은 간호사들 가운데 간혹 못~ 되먹은 에미나이들이 꼽게 노는걸 참아야 하는게 제일 힘드는 일이였다. 남의 나라에 와서 바닥부터 기자고 각오는 했으니 못 참을 것도 없었지만 막상 당하고 나면, 몇일씩 밥맛이 없었다.
‘내가 이럴려고 카나다에 왔나?’ 신세타령이 절로 나왔었다.

이젠 바라던 직장을 잡았는데…… 그것도 알아주는 연구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어디를 가던지 사람사는 데는 다 비슷 비슷했다. 연구소에서는 Dead line(마감일자)을 마추는게 아주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두달 혹은 석달씩 일정한 기간을 두고 Meeting을 해야 하는데, Meeting에서는 그 동안 해온 일을 보고하고, 앞으로 해야 할일을 알려 주어야 했다. 돈을 대는 사람들은 가능하면 빠른 시일 내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알게 모르게 압력을 가해 왔다.

그런데 일이 잘 진행될 때는 Meeting이 별로 신경이 안 쓰이는데, 시간은 자꾸 지나가고 결과는 나타나지 않으면 참 힘들었다.
‘아~ 공장에서 일할 때가 좋았는데……’
오죽하면 공장 생각이 다 났을까? 나는 그저 시키는 일만 실수없이 하면 되는 입장이었지만, 일이 끝나고 집에 와도 자꾸 뒷꼭지가 땡겼다. 주말에 친구들과 어울려도 생각은 실험실에 가 있었다.

D박사는 성탄절 휴가 전에 제약회사의 연구원들과 Meeting 날자를 잡아 놓고 있었다. 내가 일을 시작하고 두번째 하는 Meeting이었다. 처음엔 멋모르고 지나갔고 이젠 어떻게 돌아가는지 약간 감이 오니까, 더 신경이 쓰였다. 거리에는 흥겨운 성탄음악이 흐르고 백화점에는 손님들이 버글거렸다. 대부분의 동료들은 성탄절 휴가에 들떠 있었지만 우리들은 별로 즐겁지 못했다. 만들어야 할 기초 물질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물질을 만들긴 만들었지만,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 있어서는 안될 By-product (부산물)가 생겨서 속을 썩혔다.

약에 쓰이는 기초물질은 순도가 참 중요했다. 적어도 순도가 95%는 돼야했다. 그런데 Flask 속에 만들어 놓은 물질 중에 30%의 부산물이 생성되었고 아무리 정제를 해도 불순물이 15%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우리들이 원하는 물질과 비슷한 놈이 부산물로 생성이 되면 분리하는 과정이 아주 힘들었다. 불순물이 약에 사용되면, 어떤 때는 엉뚱한 일을 저지르기 때문에 가능한한 불순물을 줄여야 했다. 만약에 불순물을 5% 이하로 줄이지 못하면, 모든 일은 헛수고가 됐다. 그리고 다른 경로로 만들 생각을 해야 했다. 말이 다시 시작이지, 시간과 돈과 노력! 그 손해는 막대했다.
‘어쩌면 좋지?’
D박사의 얼굴은 Meeting 날자가 다가 올수록 굳어져만 갔다.

상대방 제약회사의 Chemist들도 만만치 않은 사람들 같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들도 우리한테서 기초물질을 받아야 약을 만드는데, 일이 잘 되지 않으면 그들도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니 결국은 우리들을 다구치게 될테고…… 심난했다. D박사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거 못 만들어 내면, 우린 이거야!” 하면서 손가락으로 목을 자르던 시늉을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D박사는 Meeting을 하려 갔고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D박사가 돌아 오기를 기다렸다. 알고보니 내가 직장을 잡게 된 것도 일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일은 진전이 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일손을 늘려서라도 일이 되게끔 하자”라고 결정을 내렸단다. 재정적인 보조는 제약회사에서 하기로 하고 나를 채용한 것이었다. 그러니 D박사는 입장이 더 난처해질 수밖에……

동료들은 D박사의 성질이 고약한 것을 알고 일이 잘되지 않았으니, Meeting 후 그 성질에 무슨 행동을 할지, 기대(?)를 하는 것 같았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어진아, 너 참~ 안됐다!’ 말은 안 했어도, 동료들의 눈빛이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무척 좋아 했지만, 요즘은 그럴 사정이 못됐다. 성탄 캐롤을 흥얼거려본게 옛날 일 같았다.
‘제기랄, 남들은 성탄절이라고 들떠있는데, 내 신세는 왜 이 모양인고…’
‘D박사는 어떻게 나올까?’
‘에이썅~! 때려치우고 병원으로 돌아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올랐다.

Meeting에서 돌아온 D박사의 얼굴은 석고상 같았다. 사정 사정해서 3월 말까지 다시 말미를 얻었다고 했다. Meeting에서 사정을 하고 있는 D박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난 큰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아무 소리도 못하고 듣고만 있었다.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그렇게 고생을 해서 얻은 직장인데, 일이 잘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진아, 너 얼굴이 왜 그래? Smile!”
D박사는 억지로 웃을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성질이 개같다던 D박사는 이상할 정도로 내게는 잘했다. 그게 동료들에게는 더 이상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어진아, 최선을 다 했잖아!”
“……”
“우리가 열심히 했는데도 안되는걸 어떻게…”
“……”
나도 무슨 말인가 해야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 오늘 집에 일찍 갈께!”
D박사는 내 등을 툭툭두드리고는 돌아섰다. 복도 끝으로 사라지는 D박사의 어깨가 축~ 늘어져 보였다. 누군가의 실험실에선, 신나는 성탄 음악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이쁜이: 여긴 비가 내려요.
D박사 어깨처럼 제 어깨도 축~~쳐집니다.
사람은 상대적이라고 하잖아요?
어진님께서 매사에 열심히 긍적적으로 임하시니 그 근엄한 D박사님도 어진님한테만은 스마일~ 하셨을 겁니다.^^
토론토가 비빕밥 같다던 표현 참 작절 했었습니다. ^^
덕분에 저 완존~히 토론토로 굳혔답니다.
아마 바로는 못 갈것 같습니다만 결국은 토론토 로...
이번 글도 잘 읽었습니다.



기사 등록일: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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