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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무너져도...연재 칼럼) 남의 땅에 뿌리를 내리며 (18/20) ,, .글 : 어진이
 
글 작성일 : 2004년 6월 10일

때는 1976년 4월, 장소는 캐나다 토론토


일주일이 일년같이 느껴졌다. D박사가 없으니, 할일도 없고 주위에 있는 동료들은 측은한 눈으로 쳐다보고……
아버님 말씀에 “사람은 떠난 자리가 깨끗해야 한다.” 하셨으니, 실험실을 정리하기로 했다. 주인잃은 D박사의 책상도 정리하고 사용한 실험기구들도 설거지를 해서 가지런히 정돈해 놓았다.

‘그만두라고 하면 할수없지!’
‘이 연구소와는 인연이 요것밖에 안되나 보군!’
‘그런데 순진이한텐 뭐라고 이야기하지?’
순진이와는 5월 중순으로 결혼 날자를 잡아놓고 있는 상태였다. 대단한 결혼 준비는 아니였지만, 월세 아파트도 계약을 했고, 가구도 다 봐 두었다. 양가에서도 결혼 준비에 바빴고, 순진이는 4년간 살던 언니의 집을 떠나서 자기 살림을 하게 되었다고 들떠있었다.

가족들과 순진이에게는 D박사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직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최악의 상태가 되더라도, 그때 이야기를 해서 늦지 않을거고 생각했다.
‘제기랄! 연구소에서 일한다고 목에 힘주었는데 꼴~조~오타.’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구!’
‘내가 업자(?)가 됐다는 걸 순진이가 들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결혼 몇주를 앞두고 이게 뭐야! 미치겠네!’
입맛도 없고 잠도 안오고 힘들었다. 더 힘든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가슴알이를 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게다가 직장이 멀어서 도저히 뻐스를 타고 다닐수가 없었고, 차는 있어야 했는데 “이왕에 사는 것 새차를 사서 오래 쓰자” 생각을 하고 새차를 샀으니……
정말 인생 비참해질 것 같았다. 업자가 새색씨를 데려다 놓고, 아파트 세를 낼 걱정을 해야 되고, 자동차는 손해를 보더라도 처분을 해야 할거고……
아파트는 직장 가까운데 얻는다고 시외에 얻었으니, 만약 최악의 경우 병원에서 다시 일을 하게 되면 시내로 출근을 해야 되니 그것도 걱정이였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정말 일이 꼬여도 더~럽게 꼬이네!’

전화벨이 울리는게 겁이났다.
주말을 넘기고 월요일 아침에 출근을 하자마자, Director의 비서가 전화를 했다. Director가 나를 찾는단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Director의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Director의 얼굴표정을 살폈다. 평소와 별다른게 없었다.
“어진아, 의자에 앉아.”
“감사합니다.”
“어진아, 요즘 기분이 어때?”
“괜찮습니다” ‘짜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어진아, 그 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 ‘빨리 본론만 이야기 하셔~.’
“D박사의 일은 나도 어쩔수가 없었어.”
“……” ‘본론만 말씀하시라니까!’
“네가 열심히 일한거 내가 잘 알아.”
“……” ‘미치겠네’
“우리 Department에는 네가 갈 곳이 없다.”
“……” ‘드디어 올게 왔구나!’
갑자기 눈앞이 캄캄하지면서 현기증이 났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 중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순진이의 얼굴이 머리 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Director의 말에 번쩍 정신을 차렸다.
“너 다른 Department에 갈 생각있냐?”
‘요거이 무스기 소리!’
“물론입니다!” 가슴이 콩당콩당 뛰기 시작했다.
“Department of Polymer Chemistry (고분자 화학)의 황박사 알지?”
“네 압니다”
“황박사가 사람이 필요한데, 네가 원하면 그 쪽으로 보내 줄께. 황박사도 너라면 OK레.”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야~~~ 일이 꼬이다가도 요렇게 풀릴 수도 있구나!’
Director의 사무실을 나오면서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황박사는 홍콩에서 온 중국사람이였다. 고등학교를 홍콩에서 졸업하고 Montreal에 있는 McGill University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했다. 중국사람이였지만 홍콩에서 영어로 공부하는 학교를 다녀서, 영어는 카나다에서 태어난 사람처럼 했다. 약간 살이쪄서 꼭 “비단이 장사 왕서방”을 연상케하는 사람이였다.

황박사의 실험실을 찾아 갔다.
“황박사님, 어진이입니다.”
“어서 오게. 자네 이야기는 D박사에게서 많이 들었네.”
“……”
“사실~ 자네 같은 사람이 또 있었으면 했었는데……”
“감사합니다”
“자네가 나와함께 일하게 돼서 참 기쁘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잘 해보세.”
황박사는 내 손을 굳게 쥐고 흔들었다.


꼬리글: 300명이 일하는 연구소에는 동양인이 인도계 사람을 포함해서 열명 정도 있었다. 황박사는 “비단이 장사”처럼 생겼어도 고분자 화학계에서는 알아 주는 학자였다. 나는 황박사와 4년간 같이 일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기사 등록일: 2023-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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