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안내   종이신문보기   업소록   로그인 |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빨래터에서(두번째): 여사장 2006-3-4
 
1993년 9월

아침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Hello~?”
“안녕하세요? 저는 D Cleaners의 K입니다”
“네~ 안녕하셨어요?”
“지난 번에 도와주셔서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일거리를 주셔서 오히려 제가 고맙지요”
“요즘 뭘 하세요?”
“…… 그냥 놀아요……”
“그럼 저의 Depot 세탁소를 좀 봐 주시겠어요?”

K씨의 말로는 세탁소에서 일하시던 할머니가 개인 사정으로 그만 두신다고 했단다. 그래서 내가 원하면 계속 manager를 하던가, 아니면 사람을 구할 때까지 임시로 세탁소를 봐 달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무슨 일이던 할려고 했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게다가 집에서 가까워서 걸어 다닐 수도 있었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에 가계문을 열어서 좋았다. K씨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 모든 것을 자상하게 가르쳐주었다. K씨는 한국에서 양복점을 하면서 직접 옷을 재단하고 만들던 사람이어서 세탁소에는 적격인 사람이었다, 더우기 수선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었다.

쉬운 일은 없었다. 전에 세탁소 helper로 일할 때는 시간이 짧았고 주인이 항상 곁에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물어보면 됐고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주인이 책임지기 때문이 마음이 편했었다. 그런데 manager로 일하면서는 하루에 11시간씩 일하고 모든 책임을 져야하고 문제가 생기면 처리를 할려니 받는 stress가 만만치 않았다.
“책임이라는게 이런 것이구나!”
“할머니는 영어도 잘 못하시면서 어떻게 세탁소를 하셨지?”

전에 할머니랑 이야기할 때 counter에 놓아둔 명함을 손님들이 많이 가져간다면서 웃었다. 이유는 Small claim court에 고소하겠다고 으름짱을 놓으면서 가져갔단다. 할머니는 세탁소를 하면서 터득한 요령이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두손을 내저으면서 “No English!” 연발하는 것이었단다. 안면 몰수하고 “내 배째라!” 하셨단다. 그러면 하다하다 자기네들이 지쳐서 고소를 한다면서 명함을 가져갔다고 했다. 곱게 늙으신 할머니한테 어떻게 그런 뺏짱이 있었을까? 생각했었다. 처음엔 고소를 하면 어쩌나 하고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렇게 큰소리를 치고 갔어도 정작 고소를 하는 사람들은 없었노라고 하면서 웃었다.

“Where is your mom?” 가끔 손님들 중에 할머니의 소식을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할머니의 딸인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에는 미운 정과 고운 정이 있다더니, 영어가 안 통해서 어려움을 격었던 사람들도 할머니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 참 사람의 정이라는게 묘하네!”
“가계 주인이 바뀌면 매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데……”
“열심이 일하자! 남의 일이지만 돈받고 하는 일인데……”

주인인 K씨와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번씩 만났다. 아침 10시경에는 전날 저녁에 들어 온 빨래감을 가지고 갔고 저녁 5시경에는 세탁한 옷을 가져오고 낮동안에 들어 온 빨래감을 가져갔다. 거의 한달 가까이 일한 어느 날 K씨는 약간 심각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순진씨 아무래도 이 가계를 팔아야 할 것 같아요”
“그래요~?”
“이젠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두 가계 신경을 쓰는게 너무 힘들어요”
“살 사람은 있어요?”
“아직은 없어요. 광고를 내야지요”
“광고를 내시지 말고 일주일만 기다려 주실 수 있어요?”
“왜요?”
“제가 남편하고 상의해 볼께요. 저한테 파세요”

남의 집 일을 해준다는 것은 열심이 해도 신바람이 덜 나는 법이다. 가계가 잘 되면 덕보는 사람은 주인이고 manager나 helper에게는 별로 덕되는게 없었다.
‘이런 가계를 하나 가지고 있다면 좋을텐데……’ 생각했었다. K씨는 약 2 km 떨어져있는 작은 plaza에 세탁소(plant)를 인수하고 열심이 일했단다. 그런데 세탁소를 인수한지 1년 후에 자기 세탁소가 있는 plaza의 10배 크기의 plaza가 바로 옆에 생긴다는 소식을 듣었단다.
‘이게 웬 날벼락!’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근처에 경쟁업소가 생기는게 제일 무서운 일이다! K씨는 부랴부랴 Property Director를 만나서 가계자리를 하나 얻었다. 그리고 계약서에 이 plaza안에는 다른 어떤 세탁업소도 들어오지 못한다는 단서를 붙였단다. 결국은 내가 하는 세탁소는 다른 경쟁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차린 세탁소였다. K씨는 이제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도 생겼고,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가계를 한다면 경쟁하지 않고 서로 상부상조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좋은 사람이 나타나길 바라면서 가계를 팔 생각을 했단다.

나에게는 절호의 chance였다!
“여보, K씨가 가계를 팔겠데”
“그럼 당신은……”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세탁소를 사면 어때?”
“……”
“K씨한테 다른 사람을 찾기 전에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했어”
“글쎄……”
“여보~ 우리가 사자~”
“글쎄……”
“자꾸 글쎄 글쎄 하지만 말고~”
남편은 항상 신중론자였다. 너무나 재고 따지고 해서 나의 숨통을 조일 때가 있었다. 집을 살 때도 그랬었다. 화학분석이라는 직업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 버릇인 것 같았다.

“지금 우리 형편이 Business를 할 형편이 못 되잖아”
“여보~ 이젠 아이들도 자꾸 커가고, 곧 대학에 갈텐데… 나두 뭔가 해야 돼!”
“그렇긴 해”
“나도 이젠 나이가 들어가는데 남의 집에서 Helper하는 건 쉬운줄 알아~?”
“……”
“나도 내 Business를 하고 싶어~”
“……”
“이젠 세탁소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도 알고 Business를 한다면 세탁소야!”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돈이 없자나?”
“좀 빌리자구~!”

우리는 여지껏 결혼해서 살면서 은행 이외에는 돈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빌린 적이 없었다. 시아버님께서 종종 말씀하셨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가능하면 돈거래를 안 하는게 좋다. 잘못하면 사람, 돈 다 잃어 버린다”
“할수없이 돈을 빌렸을 때는 먹지 않고, 입지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빠른 시일 내에 갚아라”
“돈을 빌려줄 경우에는 못 받을 각오를 하고 그냥 준다는 생각으로 빌려주어라”

가진 것이라고는 남편 월급에서 눈질끈 감고 떼어서 모아둔 저축이 약간 있을뿐이었다. 사업자금은 거의 다 빌려야 할 형편이었다. 제일 쉬운 방법은 집을 은행에 저당잡히고 돈을 빌리는 방법이었지만 절대로 집만은 저당잡히고 싶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저당잡히고 사업자금을 빌려서 사업을 하다가 집을 잃어버리는 경우를 봤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처음 산집도 은행빚을 못 갚아서 은행에 넘어간 집이었다.
‘세탁소를 못하는 경우가 생겨도 집은 안돼!’

다행히 남편이 Credit(신용)이 좋아서 적지 않은 돈을 담보 없이 은행에서 빌릴 수 있었다. 사업자금의 절반 정도를 은행에서 빌렸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가족들에게 부탁했다. 모두들 살기 힘드는데, 십시일반이라고 조금씩 보탠 것이 나머지 절반을 메꾸었다.
“형제들이 많다는게 이럴 때 좋구나!”

주인 K씨는 맨 주먹으로 시작하는 나에게 많은 편의를 봐 주었다. 받고자 하던 권리금에서 깍아주기도 하고, 여러가지 세탁소 운영비법도 가르쳐주고, 우리 빨래를 계속해서 빨아주기로 했다. 참 좋은 사람이었다. 이제는 죽으나 사나 세탁소를 하면서 빚부터 갚아야 했다. 집 Mortgage에 세탁소를 하기 위해서 빌린 돈을 합치면 엄청난 빚을 지게된 셈이었다.

내가 한달이상 한 세탁소였기에 인수인계하는 과정은 아주 간단했다. 모든 서류에 Sign을 하고 내 가계가 된 세탁소에 남편과 함께 들어섰다.
“야~ 이게 이젠 내꺼야? 믿어지지가 않네!”
“여보, 축하 해! 당신, 이젠 여사장이네~!”
“여사장~? 그럼 당신은 뭐야?”
“나~? 난 세탁소 Helper지~!”
“여사장~? 여사장이라~ 거~ 괜찮네!”

아이들을 기르느라고 15년간 이렇다 할 직장생활을 못했었는데, 이젠 내 사업체(?)가 생겼다! 남편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여보, 당신이 일주일에 100불만 벌었으면 좋겠다!”
‘뭐~? 일주일에 100부~울? 두고 봐! 내가 앞으로 뭔가 보여줄꺼야!’
남편이 내 손을 꼬옥 쥐고 기도를 해주었다.
“…………
하나님 이곳에서 저희들이 열심이 일하게 해 주십시요.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친절하게 대하게 해 주십시요.
정성을 다해 봉사하며 섬기게 해 주십시요.
티내지 않고 주님의 사랑을 전해게 해 주십시요.
……………”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져 왔다!

‘정말 이 세탁소가 내꺼야?’
‘내가 정말 세탁소 사장(?)이야?’


꼬리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삭막한 이민의 삶속에서 K씨와 같은 분을 만날 수 있었던 것!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족들이 있다는 것!
하나님께서는 새 집으로 이사 올 때부터 이미 저에게 세탁소를 준비해 놓으셨나 봅니다!


기사 등록일: 2023-09-01
나도 한마디
 
최근 인기기사
  로또 사기로 6명 기소 - 앨버.. +4
  웨스트젯 캘거리 직항 대한항공서..
  성매매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 한..
  버스타고 밴프 가자 - 레이크 .. +5
  캘거리 의사, 허위 청구서로 2.. +1
  캘거리 고급주택 진입 가격 10..
  주정부, 전기요금 개편안 발표..
  미 달러 강세로 원화 환율 7%..
  캘거리 부동산 시장, 2024년..
  “주택정책 너무 이민자에 맞추지..
댓글 달린 뉴스
  트랜스 마운틴 파이프라인 마침내.. +1
  캐나다 동부 여행-뉴욕 - 마지.. +1
  동화작가가 읽은 책_59 《목판.. +1
  버스타고 밴프 가자 - 레이크 .. +5
  캘거리 초미의 관심사, 존 Zo.. +1
  캘거리 존 Zone 개편 공청회.. +1
회사소개 | 광고 문의 | 독자투고/제보 | 서비스약관 | 고객센터 | 공지사항 | 연락처 | 회원탈퇴
ⓒ 2015 CN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