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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에서(네번째): 화장실에 앉아있는 아이 2006-4-6
 
1994년 10월

저녁을 먹고 오래간만에 모두 식탁에 둘러 앉았다. 맏아들 진이가 Second Cup에서 Part-time으로 일하면서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앉을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가능하면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할 시간을 가질려고 애써보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할 일들이 많아졌다.
‘벌써 녀석들이 내 품을 떠날 준비를 하나?!’

이젠 모두 아빠보다 더 큰 덩치를 가진 아들들이 식탁에 쭈~욱 둘러 앉을 것을 보니 듬직했다.
‘누가 딸이 아들보다 더 좋다고 했어!? 모르는 소리들!’
‘가끔 딸이 없는게 아쉽긴 했지만 어디 듬직한 아들만하랴!’
세상에 무서울게 없었다!

“얘들아, 요즘 학교생활은 어때?” 과일을 깍으면서 내가 물었다.
“괜찮아요”
“현이는 어때? 친구들이 없어서 힘들지 않어?”
“Not bad!”
“여기서 낳아 자란 아이들이 무슨 문제가 있겠어” 남편이 한 마디 했다.
“아빠~ 모르시는 말씀!” 막내 현이가 말했다. 난 현이가 그렇게 말하는데 조금 놀랐다.
“얘~ 너희들이 무슨 문제가 있겠니… 여기서 낳았겠다. 말을 못하니, 카나다 사정을 모르니……”
“………”
“엄마 아빠는 처음 이민와서 정말 고생 많이 했다!”
“………”
“영어두 못하지, 모든 것이 생소하지, 정말 힘들었어!”
“엄마 아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요즘 부쩍 과묵해진 진이가 말했다.
“아빠, 우린 Stress가 없는 줄 알아요?” 둘째 찬이가 끼어들었다.
“Stress가 없을순 없지!”

“아빠, 여기도 못 끼고 저기도 못 껴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쪼그리고 앉아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어요?” 아무 소리하지 않고 듣고만 있던 현이가 말했다.
“뭐라구~!”
“아~니 그럼 네가 그랬었다는거니~?”
“………” 막내 현이는 씁쓰름한 미소를 짖고 있었다.
“아~니 네가 왜 화장실에 들어가서 앉아있어~!” 난 소리지르다시피 말했다.
“엄마는 이해 못해!”
“아니~…… 세상에~……”
“점심시간에 흰 애들은 흰 애들끼리, 까만 애들은 까만 애들끼리 앉아서 낄낄거리고 인도 애들은 인도 애들끼리 모여 앉아있고……”
“친구 사귀기가 그렇게 힘들었어?”
“지금은 괜찮아! 처음 두주는 힘들었어!”
“………”
“화장실이 제일 편했어!”

가슴이 꽈~악 메어져 왔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환경이 바뀐다는게 힘든 일이라는 걸 많이 듣긴 했지만 “까짓껏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되겠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 아들이 또래 Group에 끼지 못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눈물이 쏟아질려고 했다. 남편은 아이들 때문에 집을 살 때 그렇게 신경을 썼었는데, 결국은 내가 우겨서 이 집으로 이사오게 되었다. 그래서 아들 셋은 모두 친구들과 헤어져서 생판 모르는 고등학교에 다녀야 했다. 내 책임이 컸다!

난 찬이가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면, “그럴 수도 있었을꺼야!”라고 생각했을거다. 찬이는 체격도 왜소했고 내성적이었으니까…… 그러나 막내 현이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현이는 학교에서 만능 Sportsman으로 통했다. 운동이라고 하면 못하는 게 없어서 학교대항 배구, 농구, 축구, 미식축구 시합이 있으면 항상 뽑혀다녔었다. 공부도 항상 최상위권을 유지했고 성격도 좋아서 선생님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좋았었다.

그래서 현이는 8학년 졸업식에서 Valedictorian으로 뽑혀서 졸업생을 대표해서 졸업연설을 한 아이였었다. 현이가 그 많은 선생님들, 학부모, 학생들 앞에서 졸업연설을 할때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몰랐었다. 가슴이 벅차다 못해 눈물까지 찔끔거렸었다. 현이는 어디다 갔다 놓고 굴려도 아무 걱정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현이는 모든 면에서 뛰어난 아이였었다. 더우기 대인 관계어서는…… 그런 현이가 갈데가 없어서 화장실에 가서 앉아 있었다니…… 정말 난 상상을 할수없는 일이었다.

이민 1세들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 때문에 고생을 하지만 카나다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문제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게 내 실수였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려움이 있었다. 더우기 Visible minority인 한국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차별대우를 받고 어려움을 격는다는 것을 현이의 화장실 사건을 통해서 뼈저리게 느꼈다. 화장실 사건은 내게 새로운 면에 눈을 뜨게해준 계기가 되었다.

이민 1세로서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남편의 어려움도 어렴푸시 이해하게 됐다. 현이가 그렇게 힘들었었다면 진이와 찬이도 마찬가지로 힘들었을 거라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잘 참고 학교생활을 해주는 아이들이 정말 고마웠다. 15년 동안 남편이 벌어다주는 월급으로 편안히 집에서 살림하면서 아이들을 기른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새삼 느껴졌다.

세탁소에서 못된 손님들에게 골탕을 먹으면서 세상 Stress를 몽땅 혼자 짊어졌다고 생각하며 툴툴거렸던 내가 부끄러웠다! 남편이 고마웠다! 그리고 새 환경 속에서 어려움을 잘 견뎌난 세 아들들이 듬직했다!
“하나님, 저의 세 아들들 이땅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게 이끌어 주십시요”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칭찬받는 사람들 되게해 주십시요”
“하나님, 힘들고 어려움이 있을 때 어루만져주고 감싸주는 아내가, 어머니가 되게해 주십시요”

이상하게 잠이 오질 않았다. 잠든 남편을 쳐다봤다.
잠든 얼굴이 순진한 아이같았다.
벗겨진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이 사람을 만난게 나에겐 제일 큰 축복이야!’

가만이 일어나서 아들들의 방을 돌아보았다. 이불을 차고 자는 아들들의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가만이 빰에다 입을 마추었다.
‘내 품에서 고물거리던 놈들이 언제 이렇게 컸지!?
‘이놈들이 정말 내 뱃속에서 나왔단 말야!?

잠은 오지 않고 계속 눈은 말똥말똥했다.
내일 가계문을 열려면 빨리 자야할텐데……


꼬리글: 아이들이 어릴 때 남편은 정말 열심히 아이들을 데리고 축구장, 학키장을 다녔다. 혼자 버는 살림에다 자동차는 한대, 나는 운전하는 것을 이상하게 싫어 해서 남편은 택시 기사처럼 바빴다. 그래도 그렇게 애쓴 보람이 있어서 아이들은 새로운 학교생활에 빨리 적응할수 있었다.

다행히 축구장과 학키장에서 함께 부딪치며 운동을 하던 아이들을 만나서 많은 도움이 됐단다. 남자 아이들에게는 운동이 아주 중요했다. 축구와 학키덕에 우리 아이들은 대학생활을 잘 마치고 무난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각 회사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팀을 만들어 회사대항 시합을 하기도 한다. 좀 힘들더라도 자녀들에게 단체운동을 하도록 꼭 권하고 싶다.


기사 등록일: 202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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