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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철새들 (Snow Birds) _최우일 칼럼
지금, 캐나다의 철새를 따라 남쪽으로 날아 와 있습니다. 예전에는 스키를 타느라 추위를 잊고 살았는데 요즘 와서는 겨울철에 특별히 즐기는 운동이 없다 보니 겨울이 더 춥게만 느껴지기 시작해 남쪽 행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모처럼 준비한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가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비행기표를 사고 바로 그 다음날 아내가 팔꿈치에 골절상을 입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여행을 예정대로 할 수 있을까, 우린 넷은 걱정이었습니다. 그러자 또 출발일을 몇 일 앞두고 에밀리네에게 문제가 일어 났습니다. 앤디의 장모가 쓰러져 페이스 메이커를 넣는 수술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는 에밀리네가 동행 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넷은 팜 스프링스행 비행기에 탑승을 한 후에야 비로소 여행의 실감이 들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런데 캘거리에서 팜 스프링스까지 3시간 남짓한 거리를 30분을 남겨 놓고 LA공항으로 항로를 바꾼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악천후 때문이었습니다. 예정에 없던 도시에 내려 우린 버스 편으로 팜 스프링스로 향하였습니다. 160킬로가 조금 넘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해 몇 시간이 소요되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럭저럭 콘도에 입주한 것은 저녁이 다 늦은 시각이었습니다. 첫날 골프는 취소되었고 다음날은 골프장의 실수로 예약이 잘 못 되어 다 틀렸나 보다 했다가 가까스로 해결 되기는 하였지만 이미 우리들은 상당히 지쳐버렸고 기분도 상해 있었습니다. 여기까진 그래도 괜찮은 편입니다. 우리들 셋만 남기고 갑작스레 에밀리가 캘거리로 돌아간 것입니다. 연로한 모친의 수술 경과 때문이었습니다.

뒤에 쳐진 우리 셋은 영하 삼십 몇 도 라는 캘거리의 추위소식을 전해 듣고 여기 오길 잘 한 것이라고 서로 기분을 돋우고 있었는데, 바로 그날 밤 이 건조한 사막지대에 난데없이 비가 내리고 폭풍이 불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모래가 날리고 가로수인 팜 트리들이 뿌리 채 뽑혀 쓰러진걸 보면서 밤새 얼마나 요란하였는지, 우린 이런 일도 있나 싶었습니다. 별러서 온 팜 스프링스는 우리에게 사건 많은 여행지 었습니다.

인접한 여러 도시들을 한데 묶어 그냥 팜 스프링스라고 불리는 이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노인관과도 같습니다. 골프장이나 음식점이나 어디를 가나 평균 연령이 한참 높아 육십 대는 막내 노릇 해야 하는 곳이 여기입니다. 고등학교가 있고 대학이 있어도 젊은 사람들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이 도시에서는 생산되는 것이 없어 거의 외지에서 들여와 소비를 하는 곳입니다. 도시생활에서 불가결한 물과 전기만 하더라도 늘어가는 수요를 채울 수 없는 것인가, 지역신문에서 떠드는 걸 몇 번 읽었습니다. 샌디에고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내려다 본 팜 스프링스는 불모의 산으로 빙 둘러 쌓인 분지 같은 곳에 들어앉아 무엇 하나 자체생산 없이 불안한 모양새이었습니다. 파랗게 잘 가꾸어 놓은 잔디나 가로수에다 스페인 풍의 깔끔한 건축물 안에서 별 생각 없이 소비하며 생활할 때는 알 수 없겠지만 조금만 거리를 두고 보아도 이 도시가 얼마나 위태로운가가 금방 보입니다.

한 삽만 뒤집으면 모래가 나옵니다. 이런 불모지에서 불평 한마디 없이 견디는 팜 트리는 대단합니다. 거리나 골프장이나 어디나 생명력이 질긴 식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인간들의 손길이 닿은 것들입니다. 아마 이들도 인간이 돌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을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이 지구 어느 구석에 남아는 있을까 싶습니다.

팜 트리 사이에서 샘물이 솟아났다는 데서 도시의 이름이 지어졌고, 사람이 사는 곳 어디서나처럼 물은 이곳에서도 생명줄입니다. 거리의 이름에도 물과 관련이 있는 명칭을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이 많은 양의 소비를 지하수를 퍼 올리던 부근 담수호에서 끌어오던, 이렇게 써대면 얼마나 더 지탱할 수 있을까? LA에서 오다 보면 발전용 풍차는 많이 있지만 과연 얼마나 자급 할 수 있을까? 풍차에 의존한 전기는 그래도 물과는 달라 일회성 소모가 아닌 게 여간 다행이 아닙니다.

여기 노인들의 천편일률 레퍼토리가 있습니다. 부딪히기만 하면 대뜸 어디서 왔는가, 몇 번 째인가 , 얼마나 머물 것인가, 언제나 같은 질문입니다. 차라리 써 붙이고 다니지 그러냐고 우리끼리 빈정대었습니다.

이들은 부러운 사람들입니다. 골프를 즐기며 추위를 피해 겨울을 따듯하게 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건강하고 넉넉한 사람들, 일생을 일하여 노년의 생활을 준비한 사람들입니다. 나이 들어 양로원의 창 밖만 내다보며 겨울을 견디는 노인들과는 달라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난 이런 천국에서 불편을 느낍니다.

청장년 시기를 쉼 없이 일하여 노년을 위해 저축한 것으로 지금 이들은 노년을 잘 산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만, 사실 이런 생활은 인생의 가장 큰 낭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정신적 창의와 생산 없이는 아무리 몸 편한 삶일지언정 뜻 깊은 삶일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다른 동물과는 달라 , 인간됨의 최고치는 일신의 편함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들의 처음 같은 신선함이 없다면, 팜 스프링스를 백 번을 다녀가도 얻는 게 없을 수 있읍니다. 안일은 창의적 삶의 감옥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사 등록일: 2008-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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