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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애국우파의 일그러진 얼굴 _ 기자수첩
-우파의 아이콘 드골 대통령-
드골 대통령(1890-1970)은 프랑스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생애는 ‘위대한 프랑스’에 맞춰 있었다. 그가 생 시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된 동기도 “프랑스의 명예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는데 이바지 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잃어버린 영토란 ‘알사즈 로렌(Alsace-Lorraine) 지방이다. 이 한가지 사실만 봐도 드골이 얼마나 우익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알자즈 로렌 지방이 지금은 프랑스 영토지만 역사적으로 언어적으로 인구분포나 전통 관습으로 볼 때 독일 영토다. 그런데 프랑스보다 국력이 약했던 독일은 15세기 중엽 30년 전쟁으로 이 지역을 프랑스에 빼앗겼다. 역사적으로 독일은 국력, 군사력, 외교력에서 프랑스의 적수가 되지 못했는데 독일이 최초로 프랑스를 이긴 전쟁이 보불전쟁(1871년)이다.
영토 통합을 이룬 독일제국(Deutsches Kaiserreich)이 전쟁에서 프랑스를 이기자 첫 마디가 “알사스 로렌 지방 내놔”였다. 평생을 프랑스 꼭두각시로 살던 약소국 독일이 모처럼 어깨를 펴고 외친 한 맺힌 소리였다.
왕당파 출신 극우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1897)는 단편집 월요 이야기(The Monday Tales)에서 ‘마지막 수업’이라는 제목으로 알사즈 로렌 지방을 빼앗기는 아픔과 프랑스어를 잃는 슬픔을 유려하고 비감 어린 필체로 써나가 프랑스인들의 애국심을 자극하고 있다.
본말이 전도된 적반하장 격인 ‘마지막 수업’ 내용은 마치 일제가 패망하여 도망가면서 마지막 일본어 시간에 “일본어 만세”라고 쓰는 격이라 필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모름지기 우파라면 그런 국수주의적 주장을 펴야 마땅하다.
드골이 사관학교 입학하게 된 동기가 되었던 알사즈 로렌 지방은 1차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하자 프랑스가 독일에게 “그거(알사즈 로렌지방) 내놔”였다. 그랬는데 2차대전 때 히틀러는 프랑스를 점령하자마자 알사즈 로렌 지방 등기부 등본을 독일로 이전했다. 2차대전 끝나자 프랑스는 그 등기부 등본부터 다시 찾아 왔는데 알사즈 로렌 지방에 얽힌 이야기는 국토를 일본에 빼앗긴 역사적 경험이 있는 우리들로서는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우파 대통령 드골은 이념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정책까지 한국 좌파들과 공유할 내용이 전혀 없는데도 한국에서 좌파들이 그를 높이 평가 받는 이유는 그의 ‘역사청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드골은 나치 부역자들을 재판에 회부해 과거를 말끔히 청산하고 새로운 프랑스를 이끌었다. ‘역사청산’은 우파적 시각에서 이뤄졌으나 좌파도 중도파도 모두 참여해 ‘역사청산’은 좌, 우의 이념이 아니라 국가적 과제였음을 알 수 있다.
-밀려 있는 숙제 ‘역사청산’-
우파의 아이콘 드골은 단 한치의 땅도 외세가 점령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알사즈 로렌처럼 남의 땅 강제로 합병했다 원 주인이 찾아 간 것에도 원래 자기 땅 빼앗긴 것처럼 분개했다. 드골 같은 우파가 나치에 부역했던 반역자를 용서하지 않고 말끔하게 정리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자칭 우파들은 같은 이념을 가진 드골의 ‘역사청산’을 모른척하고 넘어가거나 딴 소리로 얼버무린다. 그리고 35년간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 빼앗겼던 사실을 부끄럽게 알거나 치욕으로 여기지 않고 근대화 과정으로 알거나 심지어는 신의 축복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 우파들이 ‘외세 의존’ ‘외세찬양’이라는 전혀 우파답지 않은 언행을 일삼는 것은 해방 후 ‘역사청산’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정권유지를 위해 당리당략 차원에서 친일파를 용서하고 권력기반으로 등용했다. 그 후 친일파들은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펼치면서 반대파를 용공분자로 몰아 제거 하고 테러와 폭력을 정당화 했다. 신탁/반탁 와중에서 친일파들은 반공 가면을 쓰고 한국의 주류계급이 되었다.
한국사회에서는 내 가족 중에 누군가 ‘친일파’로 지목 되면 펄쩍 뛰며 부인한다. 사자 명예훼손으로 법정 소송도 불사한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박정희를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자 박지만이 소송을 걸었다. 이것은 친일행위가 부끄럽고 불명예스럽고 떳떳하지 못하고 창피한 행위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친일파 척결이라는 ‘역사청산’을 하지 못한다. 청산의 대상이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언론, 문화, 교육, 종교, 관료조직의 핵심세력이기 때문이다. ‘역사청산’을 하지 못해 해방 후 70년이 지나도록 친일 논쟁이 벌어져 국민통합을 해치고 있고 국론분열의 원인이 되어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
일본도 우리를 비웃으며 식민통치의 당위성을 주장하거나 식민통치가 조선을 발전 시켰다고 강변하고 있고 일부는 그런 일본 주장에 동조하며 식민통치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가치혼돈을 일으키게 하고 있으니 우리 민족은 해야 할 숙제를 하지 못해 벌 서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총리로 지명된 문창극씨의 발언이 화제를 몰고 온 것도 역사청산이라는 숙제를 못 했기 때문으로 총리 지명자 입에서 일제의 식민통치를 찬양하는듯한 발언이 나온다는 것은 전 국민이 부끄러워야 할 일이다.
-문창극씨의 발언-
이번에 논란의 중심에 선 문창극씨의 친일 발언은 공공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고 그가 다니는 교회 마리아 여전도회에서 강연하는 자리에서 있었으니 개인신분으로 행한 강연이다. 1시간 5분에 걸쳐 진행된 강연의 제목도 “나라를 위해 기도하자”는 것이었으니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고 권장할 일이다.
그러나 그가 예화로 든 것은 식민지 찬양론,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조선 민중이 게으르고 미개하다는 외국 선교사들의 조선관, 윤치호의 조선왕실 비판 등으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 통치 하면서 내세웠던 논리들이다. 그는 강연에서 조선인들이 게으른 DNA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16세기 청나라에 온 마테오 리치를 비롯해 동양에 온 서양 선교사들은 서양 우월주의적 시각에서 동양을 보았다. 조선, 청나라, 일본을 보는 시각이 거기서 거기로 ‘게으르고 더럽고 비양심적이고 부정직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무지하고, 그리고 개인의 능력과 가치의 자각에서 오는 자존심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쓰고 있다. 명치유신 이전의 일본도 서양인들이 보기에는 야만과 미개 그 자체였다.
그러나 동양에 장기적으로 머문 선교사들은 시각이 달라져 조선을 8년간 12번 여행한 게일(Gale)은 조선인들은 정직하고 신뢰할 만하고, 질서가 정연하며, 신용을 중시하여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등 서양인보다 우수하다고 쓰고 있다.
문창극씨는 강연에서 ‘윤치호 일기’ 예를 들면서 조선인의 나태성과 조선왕조의 무능 부패를 일제 식민지 찬양 논리로 인용 했는데 ‘윤치호 일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윤치호가 나중에 친일파로 변신해 후세에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그 당시에는 진정으로 조선의 부국강병을 바랐다.
그는 상해에 망명 당시 동학 혁명 소식을 듣고 동학 혁명이 성공해 무능 부패한 조선왕조를 뒤엎고 근대화한 조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동학 혁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문창극씨는 ‘조선인들이 게으른 DNA가 있다’고 발언한 것이 “조선시대 계급사회의 한계와 위정자들과 양반들의 행태와 처신을 지적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그런 지적을 하려면 조선 민중이 양반들과 지배계급의 횡포와 수탈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던 동학혁명에 대한 윤치호의 지지를 인용했어야 했다. “계급사회의 한계와 위정자 양반들의 수탈과 횡포를 벗어나기 위해 동학 혁명이 시작되었다”고.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있으니 일제 식민지를 찬양하던 김일성을 찬양하던 히틀러를 찬양하던 그것은 개인의 자유영역이지만 총리라는 고위 공직을 맡을 사람의 역사관이 식민사관에 머물러 있다면 자신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나 그 공직을 맡지 않는 것이 타당한 일이다.
-애국 우익이 가야 할 길-
진정한 우익이라면 프랑스 드골 대통령처럼 외세 침입을 단호히 배격해야 하고 오로지 국가의 명예와 위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나치의 역사청산은 가차없이 진행했지만 프랑스 식민통치에 대한 역사청산이나 자기반성은 없었으니 역시 우익다운 행동이었다.
이런 국수주의적 사고가 화합과 공존, 평화라는 시대적 담론에 역행하지만 한국의 우익이 우익다운 길을 가려면 스스로가 자기 반성을 통해 식민지 통치를 부끄럽게 여기고 친일행각을 통절히 반성하는 것이다.
역사청산은 민족주의 우파들이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과제였으나 “친일”이라는 원죄 속에 갇혀 있어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좌파들이 역사청산을 들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 역사청산을 두고 소모적 논쟁을 하거나 국력 소비를 할 것이 아니다.
‘역사청산’은 좌, 우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민족적 차원의 문제로 ‘역사청산’만큼은 당리당략이나 정파적 이익을 떠나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내년이면 해방70주년이다.
70년이 지나도록 식민통치를 찬양하는 일그러진 모습의 절름발이 우파 대신 국가와 민족의 명예와 위신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우파는 한국 현실에서 정녕 불가능한 것일까?

기사 등록일: 201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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