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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끝 없는 전쟁_ 기자수첩
Pat Boone이라는 가수가 있다. 지금은 쭈굴쭈굴한80세 노인이지만 젊었을 때 티 한 점 없이 깨끗하게 잘생긴 미남에 설탕과자처럼 감미롭고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음색의 소유자로서 1950-60년대에 엘비스 프레스리 다음으로 싱글 디스크 판매량이 많았던 가수다.
그는 극우 기독교인으로 도리스 데이, 글렌 포드, 자자 가보르, 프리실라 프레스리(엘비스 프레스리 부인) 등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성경공부를 시키기도 했다. 대중가요 외에도 성가, 기독교 관련 노래를 많이 부른 팻분이 부른 노래 중에 영화 ‘영광의 탈출” 주제가도 있다.
영광의 탈출(원제 Exodus) 음악은 어네스트 골드가 맡았는데 이 영화를 기억하는 분들은 알겠지만 원래 가사가 없는 곡인데 이 영화를 본 펫분이 가사를 붙여 불렀고 그 후 많은 가수들이 불렀다. 이 곡이 한국인들 귀에 익은 것은 주말이면 상영했던 MBC TV 명화극장 시그널 뮤직으로 오랫동안 쓰여졌기 때문이다.
가사는 “This land is mine, god gave this land to me”로 시작되는데 가사 첫 구절만 들어도 영화제목 Exodus와 연관해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엑소도스, 영광의 탈출-
엑소도스(exodus)는 구약성경 출애굽기를 말한다. 유태인들의 지도자 모세가 이집트에서 노예로 일하는 유태인들을 이끌고 홍해인지 갈대 숲인지를 지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다 죽이고 그 땅에 눌러 앉아 사는 것이다.
유태인들의 신 야훼는 “내가 그 땅을 너희들에게 주었다. 그곳에 사는 자들을 다 죽이고 너희가 그 땅 가지라.”고 말한다. 야훼의 명령대로 유태인들은 원주민들을 죽이거나 내쫓고 그 땅에서 살았다. 그러나 신이 내려준 그 땅에서의 삶은 평온하지 못했다.
신의 이름으로 주어진 그 땅, 풍요의 상징인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은 남북으로 갈라졌고 강대국 아시리아와 바벨론에게 차례로 멸망했다. 그 후 로마의 자치령이 되었는데 로마에 항거하다 지도상에서 없어졌다.
그 때부터 나라 잃은 유랑민이 되어 전전하던 유태인들은 가는 곳마다 미움께나 받았다.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 ‘베네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태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 대한 묘사는 유럽인들의 유태인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보여준 것이다. 히틀러는 유태인과 집시를 치워야 할 청소의 대상으로 보았다.
2차대전이 끝나자 유태인들은 국제관계의 역학을 이용하여 신이 주기로 약속했던 그 땅에 몰려와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내몰고 나라를 또 세웠다. 구약성경 시대에는 야훼의 이름으로 세워졌지만 2차대전 후에는 현대판 야훼인 미국 영국 등 서방세계의 암묵적 도움으로 나라를 세운 것이다. 영화 엑소도스는 2차대전 후 이스라엘 건국과정을 영화화 한 것이다.
-비극의 시작, 제국주의의 이중적 태도-
요즘 벌어지고 있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만행으로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인들의 비극을 이해하려면 1차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유태인과 팔레스타인(아랍) 인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 지역은 1차대전 까지만 해도 오스만 터키 영토였는데 1차대전 때 오스만 터키는 오스트리아 제국, 독일과 함께 동맹국으로 영국, 프랑스와 전쟁을 하고 있었다.
오스만 터키의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영국은 메카의 수장이던 후세인왕에게 영국을 도와주면 전후 독립을 시켜주겠다고 제안한다. 그 이야기를 배경으로 데비드 린 감독이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화를 제작했다. 물론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허구다. 데비드 린 감독은 스케일이 큰 대작을 많이 만들었는데 ‘콰이 강의 다리’ ‘닥터 지바고’등이 그런 대작이다.
영국은 아랍 독립을 미끼로 아랍인들의 협조를 얻어 오스만 터키제국에 맞섰지만 경제사정이 말이 아니었다. 전쟁을 수행하기 힘들 정도로 경제가 기울자 영국은 미국을 끌어드릴 궁리를 했다. 전쟁을 빨리 끝내려면 미국을 끌어들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 내에 있는 유태인 그룹을 설득해야 했다.
영국은 유럽의 최대 금융재벌이자 세계 시온이스트 연맹 대표인 로드차일드에게 “영국을 도와주면 전 후 팔레스타인을 유태인에게 넘겨주겠다는 ‘런던 조약’을 체결했다. 일이 급해지니까 아랍과 유태인 모두에게 독립을 보장하는 약속을 한 것이니 두 가지 약속 중 한가지는 지켜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전쟁이 끝나자 영국은 후세인 왕과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유태인의 팔레스타인 귀환을 도왔다. 통계에 의하면 1880년대 팔레스타인 총 인구는 약 50만명으로 그 중 유태인 비율은 5%에 해당하는 2만5천명이었는데 1차대전이 끝난 후 20년이 지난 1936년에는 유태인 인구가 36%로 늘어났다.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한 유태인들은 로드차일드에서 제공하는 기술과 자본을 바탕으로 정착촌을 건설하고 협동조합, 협동농장을 세웠고 산업시설을 갖추기 시작해 2차대전이 끝나고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하자 팔레스타인 지역 유태인들은 건국을 선언했으니 곧 이스라엘이다.
이것이 중동문제의 본질로 이스라엘 건국으로 그곳에 살던 팔레스타인 인들이 삶의 터전을 잃은 것이다. 영국의 배신으로 독립의 꿈은 날라갔고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는 우리 말 속담이 그대로 적용된 사례가 바로 중동 사태다.
-세계의 화약고, 끝없는 갈등-
이스라엘 건국 후 4번의 대규모 국지전이 있었다. 이것을 중동전쟁이라고 하는데 4번의 전쟁을 이스라엘이 모두 이겼다. 4차 중동전에서는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미국의 적극적 도움으로 이길 수 있었다. 네 번에 걸친 중동전은 영국, 미국, 프랑스, 소련 등 강대국들의 대리전쟁 성격을 띠기도 했다.
전쟁을 치를수록 이스라엘 영토는 넓어졌다. 강대국들의 사주를 받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이 전쟁에 재미를 붙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변의 아랍국가들은 전면전을 통해서는 이스라엘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 비정규전으로 들어갔다. 1964년 2차 중동전을 계기로 발족한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게릴라전을 포함한 무장투쟁으로 팔레스타인 독립을 이룰 것을 선언했다.
한 때 PLO는 테러의 대명사로 낙인 찍혔다.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미국이 PLO를 테러조직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PLO는 무장투쟁 일변도에서 벗어나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자치정부가 되어 이스라엘과 서로 존재를 인정하고 공존을 시작했다.
PLO는 자치정부로서 장래 팔레스타인 영토가 될 가자지구(Gaza strip)와 요르단 강 서안지구의 통치권을 행사한다. PLO의 초대 의장은 야세르 아라파트로 2004년까지 PLO의장을 지냈다. 그의 사후 마흐무드 압바스가 PLO 의장이 되었다.
PLO는 2006년 총선을 실시했다.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해 다수당이 되었다. 하마스는 특히 가자지구에서 압도적 지지를 획득했다. 그러나 의장에는 파타당의 마흐무드 압바스가 선출되었다. 파타당은 야세르 아라파트가 1957년 조직한 단체로 아라파트의 분신과도 같은 조직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다수당이 된 하마스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민주주의의 원리가 민의에 의해 선출된 정당이 이끌어 나가는 것인데 미국과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같은 PLO 정당인 파타당 조차도 팔레스타인의 민의를 무시하는 것이다.
미국, 이스라엘을 비롯한 대부분 서방세계가 하마스를 정당으로 인정하지 않고 테러단체로 지목하는 이유는 그들의 무분별한 폭력성에 있다. 하마스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테러를 저질러 심지어 장 보러 가는 여자들까지 테러 대상으로 삼았다.
그런데 하마스가 급진적 폭력단체가 된 것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지정학상 태생적 한계도 있지만 이스라엘의 폭력적 만행 때문이기도 하다. 빌 클린턴 대통령 중재로 PLO와 이스라엘은 오슬로에서 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모두가 협정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협정의 주체인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 총리는 극우파에게 암살 당했고 극우강경파가 그 자리를 이었다.
그 후 이스라엘은 협정을 무시하고 PLO 정부청사를 포격해 쑥대밭으로 만들고 전기마저 끊어진 아라파트는 촛불을 켜놓고 집무를 해야 했다. 이 사건은 팔레스타인 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어 하마스 같은 폭력집단을 지지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가자지구, 비극은 언제까지-
가자지구는 육지로는 이집트, 이스라엘과 맞대고 있고 해안은 지중해와 연결된다. 가자지구는 독립국가 영토가 아니므로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국적이 없다. 주민들의 99.8%가 팔레스타인 인으로 이스라엘에 쫓겨 이곳으로 이주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지구를 고립시키려고 장벽을 쌓고 이스라엘 정착민을 철수 시켰다. 그리고 지중해를 봉쇄해 키프로스를 통해 들어오는 구조선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어떤 물품도 반입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물도 반입이 안 된다.
가자지구에서는 2008년, 2012년에 이어 이번에도 대규모 무력충돌이 있었다. 7월 중순부터 시작된 이번 무력충돌에도 가자지구 민간인 1,850명이 희생되었고 만 명 가까운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스라엘 은 민간인 3명 군인 64명, 총 67명이 희생되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어제 8월4일 72시간의 휴전에 합의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공격용 땅굴 32개를 파괴했고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서 철수 했는데 이스라엘이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무고한 민간인 희생으로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는다는 면에서 장기적으로 볼 때는 손해를 보았다. 2010년에도 구호선을 공격해 9명이 사망해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8명의 사망자를 낸 터키는 이스라엘과 단교를 선언했다. 그 후 이스라엘의 사과로 양국 관계가 정상화 되었지만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다르다.
이번 72시간 휴전을 계기로 장기휴전에 이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서 여론이 나빠지는 것이 신경에 거슬릴 것이다. 큰형님 미국이 전폭적으로 지지해주고 있지만 러시아, 차이나, 유럽국가들의 차가운 눈초리를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전비도 큰 부담이다. 하마스가 날리는 몇 백 불짜리 포탄을 수만 불짜리(5만불-9만불) 아이언돔으로 요격한다는 것이 이스라엘로서는 속이 쓰릴 것이다. 이집트와 튀니지에서 친미정권이 물러간 것도 부담이 되는 상황이다. 4차 중동전 때 이스라엘을 괴멸 직전까지 몰아 붙었던 이집트 군은 그 후 친미정권 무라바크 대통령 시절 미국에서 구입한 신무기와 서구식 군사훈련으로 면모를 일신해 세계군사력 14위에 올라 있다.
하마스도 무력항쟁을 고집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다. 가자지구는 이집트 국경을 통한 물자 반입이 유일한 생명줄 인데 무슬림 형제단 집권 때 와는 달리 엘시시 대통령 집권 후 지원이 예전 같지 않다. 또한 무차별한 테러행위로 같은 무슬림인 알 자지라 통신도 매우 비판적이다.
그러나 중동 분쟁이 근본적으로 민족간 갈등이라는 점에서 항구적 평화가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있다. 지구촌은 냉전이라는 이념 갈등을 겪은 후 종교 갈등, 민족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290명의 승객을 단숨에 날려버린 우크라이나(Ukraine) 민항기 격추 사건도 민족 갈등인데 누룩처럼 번지는 풀기 어려운 민족갈등을 딛고 중동이 항구적 평화를 마련할 것인지.

기사 등록일: 2014-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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